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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필자는 현재 부산 안창마을의 오랜 주민이다. 2007년 부산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하나로 벽화 그리기 사업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 필자가 거주하는 지금의 안창마을 역시 벽화마을로 조성되었다. 아직 그리 인지도 있는 마을도 아니고, 벽화마을이 된 지 불과 몇 년 안 된 시점이지만 때때로 관광객들이 눈에 들어올 정도로 마을을 찾는 타지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그 지역 사람들에게 잘된 일이라 축하해줄 수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지역주민으로서는 이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런 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주길 바라며 이제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겠다.

첫번째로 지역주민의 관광객들로부터 받는 생활공간 침해문제이다. 얼마 전 우연히 내가 사는 마을에 대하여 검색을 해 본 적이 있다. 그 결과는 나에게 상당한 불쾌감을 던져주었다. 마을 벽화의 모습들이 줄지어 있었던 관광객의 블로그 게시물에 뜬금없이 필자의 집으로 향하는 길목의 사진이 찍혀 있었다.

처음에 느꼈던 감정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이가 집 근처의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적으로 게시해 놓았을 때의 기분은 이어서 묘한 불안감까지 느끼게 하였다. '안창마을'이란 벽화마을의 주민이긴 하지만, 필자의 집으로 가는 길목은 벽화와는 전혀 무관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차가 다니는 넓은 거리나 버스정류장, 상가와 같은 다소 대외적으로 공개된 공간에 벽화 사업을 시행하였고, 이 길을 포함한 마을 안쪽에 사는 모든 주민의 집이나 골목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지도 아니므로 '왜 이렇게 안쪽까지 와서 사진을 찍는 건가'라는 껄끄러운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마을 전체적으로 고연령의 어르신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특징이 있어 일부 관광객들은 마치 시골을 구경한다는 마음과 정겨움을 느낀다는 명목으로 넓은 길가가 아닌 벽화도 없는 골목 구석 안쪽에 자리 잡은 일반가정집과 빨랫줄이나 속옷가지까지 모조리 자신의 카메라에 담아 인터넷에 올린다.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러한 풍경이기 때문에 이곳을 방문했고, 이러한 사진 역시 정겨운 시골의 모습처럼 느껴졌다며 멘트를 덧붙이며 사람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은 당사자가 아니어서 할 수 있는 일종의 '막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록 관광과 관련해 벽화들이 이 마을에 칠해져 있고, 본인들은 나쁜 의도 없이 자신들의 추억을 타인들과 공유한 것이다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어르신들이라고 해서, 시골과 같다 해서 타인의 개인 공간까지 멋대로 찍고 공유하는 일을 자신들의 추억이라 합리화하는 것은 '행패'에 가깝다. 입장을 바꾸어 누군가가 자신의 공간에 침입해 허락도 없이 촬영하고 불특정 다수의 사람과 공유한다면 지금 필자가 느낀 불쾌감이 마냥 억지가 아님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두 번째로 그 벽화사업에 대한 관리마저 매우 미흡하고, 그로 인해 실망한 관광객들의 목소리 역시 주민들이 듣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 안창마을은 '벽화마을'이란 이름이 민망할 만큼 벽화의 수도 작고 그나마 있는 벽화도 많은 곳이 훼손되어 있고 칠이 벗겨져 재도색이 필요한 실정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정을 잘 모른 채 '벽화마을'이란 이름을 듣고 오는 관광객들은 본인들이 생각했던 이미지와 다른 마을의 모습에 실망한다. 벽화사업 관계자인 한 공무원은 이러한 벽화사업 방치 실태에 대해 "현행파악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벽화 사업을 추진한 부서가 각각 다르고 민간에서 추진한 경우가 많아 예산 확보가 어렵다"라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이러한 말과는 다르게 기사나 부산 여행 책자를 통해 벽화마을 홍보를 하는 이들의 행동은 해당 주민들에게 부담을 더 주기만 했다. 안창벽화마을 관련 기사 중 이런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었다.

벽화사진을 찍기 위해 동구 산복도로를 찾은 정모양(34)이 "벽화를 보러 왔는데 토사에 더럽혀져 있고 녹물이 묻은 벽화가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면서 "저대로 방치된다면 도심 흉물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누구나 자신이 사는 공간을 이렇게 말한다면 불쾌감을 느끼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그럼에도 이런 실망한 관광객들을 원망만 할 수 없는 이유는 이들 역시 자신의 기대와는 다른 실상에 실망하고 피해를 봤기 때문이다. 이처럼 벽화마을의 주민들은 죄 없이 실망과 원성을 받으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원망이나 책임을 묻기 힘든 불합리한 상황에 갇혀 있다.

이 글은 물론 마을에 아무도 방문하지 말라거나 벽화를 그리기 위해 애쓴 분들의 노력을 헛되게 하려 쓰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필자 역시 악의없는 순수한 마음으로 먼 곳까지 방문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을 환영해주고 싶고 이 마을에 대해 없었던 자부심도 느끼게 해주어 감사한 마음을 가질 때도 많다.

그러나 일을 벌이고 무관심하게 내버려두는 이들과 때때로 그 정도를 넘는 사람들이 있어 당사자 지역주민의 입장으로 더는 이 피해를 이어가고 싶지 않은 바람으로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지금도 부산시는 제2의 감천문화마을을 조성하겠다며 벽화마을 조성에 힘쓰고 있으나 정작 이 마을뿐만 아니라 다른 벽화마을의 주민들은 관광객이 만들어낸 소음과 사생활 침해, 벽화사업 후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실태로 인해 불편함을 겪는 이들이 많다.

그들이 만약 단지 산골인 이 마을에 사람들의 발길이 닿게 하였다는 무례한 생색내기를 하려 한다면, 그것이 '벽화'라는 많은 이들의 아름다운 봉사와 노력을 '안 하니만 못한' 노동으로 깎아내리는 행위임을 잊어선 안 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지역주민과 관광객 서로를 이해하는 데 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벽화마을 주민들과 방문하는 낯선 손님들이 서로 예의를 지키며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날이 어서 하루빨리 오기를 희망한다.


태그:#안창마을, #벽화마을조성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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