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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3일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 묘소에서는 열사 43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전태일 재단이 주관하는 연례행사였다. 전태일 생전에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전태일과 바보회, 삼동회 등의 활동을 같이했던 친구들을 비롯하여, 민주노총, 한국노총을 대표하는 노동계 인사들, 민주당, 정의당 등 정치인들, 여러 민주시민단체 인사들 등 100여 명이 모였다. 늘 보이던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머리칼이 희끗희끗해졌는데 전태일 분신할 때와 같은 젊은 또래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게 첫추위가 전태일 기일 때쯤부터 시작하는데 올해도 제법 차가운 바람이 묘역을 흔들고, 삼삼오오 모인 분들은 뜻 모를 웃음을 띠우며 의례적인 인사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엉거주춤 식은 시작됐는데 첫 추모사로 이한열 열사 어머니인 유가협 대표 배은심 여사가 불려나왔다.

"우리가 매년 이 자리에 모여 의례적인 인사나 나누고 연례행사로 추모식이나 하고 헤어진다면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전태일이 자기 목숨을 바쳐 바꿔보려고 했던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박근혜 시대가 되면서 다시 유신이 살아나고 노동자, 민중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는 노동권 밖으로 쫓겨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생존권마저 빼앗기고 스스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니 학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렇게 버릇처럼 모여 서로 좋은 말들만 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전태일 열사와 그 뒤에 계신 이소선 어머니의 모습을 다시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 그분들이 우리들에게 들려주는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노동자는 무조건 단결해야 해요. 우리는 하나가 돼야 해요.' 유언으로 남기고 간 이 말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듯했다.

이어서 투쟁사업장인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위원장이 나와 투쟁보고를 하며 최근 삼성전자서비스의 비인간적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른세 살 최종범 열사의 유서를 울면서 읽어 내려갔다. 삼성전자의 협력업체인 삼성전자서비스는 삼성전자의 위장 도급 회사로, 교묘히 관련  법을 악용하거나 어기며 노동자를 비정규직화하여, 노동권은 말할 것도 없고 생존권을 박탈하고 있었다. 

"그동안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배고파 못 살았고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전태일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저항하지 않으면 밀리고 싸우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2013년 11월에 돌아가신 이 시대 전태일의 유서를 들으며 우리는 혼란에 빠졌다. 어떻게 43년 전 상황과 그렇게도 비슷한지, 그 동안 우리는 무얼 했는지 참담할 뿐이었다. 이런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았지만 답답할 뿐이었다.

이러한 때 우리 시대의 큰 스승 백기완 선생님은 외치신다. 이 땅 곳곳의 투쟁 현장에서 피를 토하고 계신다. 저항하지 않으면 밀리고 싸우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모두 떨쳐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서돌이 돼야한다. 칠흑 어둠을 밝히는 불씨, 도리깨로 맞으면 더욱 퍼지며 타오르는 불씨, 온 세상이 하얗게 눈 속에 쌓여도 눈 속에서도 더욱 빛나는 불씨, 온 세상을 다시 환하게 활활 태울 불씨가 돼야 한다고 외치고 계신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나서야 한다'는 말은 세상이 절망 속에 있으면 우리 각자가 희망의 불씨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자기의 무기를 들고 떨쳐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우리 민중의 벗이요, 지도자인 백기완 선생님께서 시를 들고 나섰다. 그가 우리 시대의 위대한 얘기꾼이요, 시인임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몇 년 전에는 '노래에 얽힌 인생 이야기'로, 작년에는 '민중미학 특강'으로 우리에게  민중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11월 29일(금) 오후 7시, 조계사 전통문화공연장에서 이어지는 '죽음을 넘어서는 민중의 쇳소리, 백기완의 비나리 시 낭송의 밤 행사는 그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백기완 선생님이 삶 전체를 걸고 뚜벅뚜벅 걸어오고 계신 '노나메기 세상'으로의 길이다.  여기에 이 시대 진보라 자처하는 문화 예술계 인사들과 싸우는 노동자들이 함께하고 있다.

우리도 백기완 선생님을 따라서 스스로 서돌이 되어 이 캄캄한 밤을 깨우는 한 가닥 빛이 되어 보자. 그날, 절망의 박근혜 정부 1년을 맞아 나서는 우리 모두의 자리를 희망의 기운으로 가득 채워보자.

11월 29일 열리는 백기완 선생의 시낭송회 웹자보.
 11월 29일 열리는 백기완 선생의 시낭송회 웹자보.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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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수호 기자는 전 민주노총 위원장입니다.



태그:#백기완, #비나리, #박근혜,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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