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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강정평화대행진.
 2013 강정평화대행진.
ⓒ 조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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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행진이었다.

7월 29일부터 8월 3일까지 제주에서 '강정평화대행진'을 함께 걸었고, 같이 웃었고, 같이 땀 흘린 1천여 명의 '이상한(!)'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에게 '강정'이란 마을 이름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평범한 제주도의 한 마을이 이토록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함께 모이자, 함께 걷자, 함께 외치자... 강정에 평화를!'

전국 각지(미국에서도 왔으니 전 세계인가?)에서 여러 사람들이 모였다. 정말 덥고도 여름날을 보냈다. 옷은 땀에 젖고, 발은 퉁퉁 부었으며, 목소리는 점차 쉰 목소리로 변해갔다. 그러나 행진에 참여한 1000여 명의 사람들은 항상 웃었다. 어떻게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80세 노인부터 7살 어린애까지 남녀노소, 주교부터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까지 함께 웃으면서 같이 밥 먹고, 같이 춤추는 일이 흔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자기 돈과 시간을 들여가면서 고생하겠다는 사람들이 수천 명('강정평화대행진'에 작년 2012년에는 약 3천여 명이 참가했고, 올해는 1천여 명이 참가했다)이나 되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그 이상한 일이 실제로 우리 눈앞에서 일어났다. 이런 이상한 행진대열을 바라보는 제주사람들의 시각은 어떠했을까?

행진 도중 우리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주관적 판단이다. 사람은 원래 자기 좋은 족으로 해석하지 마련이다!) 그러나 격렬하게 반발하는 분들도 있었다. 한적한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를 향해 "이 미친*들..."이라고 얘기하는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다가가서 정중히 여쭤보았다. 왜 그러시냐고?

그 분의 말은 "나라는 누가 지키냐?"였고, 내 대답은 "제가 지킬테니, 같이 군대 가실래요?"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부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슬며시 옷을 잡고 그만하라고 말린다. (전쟁나면 진짜로 군대 가실려나? 난 내 고향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총을 들 각오가 되어있는데...)

 2013 강정평화대행진.
 2013 강정평화대행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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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분은 지나가던 차를 세우고 이렇게 외쳤다.

"북한에 가서 살아라. 이 빨갱이 새*들!"

이 분은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쌩하니 달려가 버리셨다. (아! 차분히 대답해드릴 수 있었는데... 왜 그리 급하시나?) 예전에 해군기지 반대 전단을 돌리는 한 후배에게 어떤 할아버지가 뚱한 표정으로 "군대는 갔다 왔나?"라고 물었다.

"네. 육사 갔다 왔습니다!(실제보다 어려보이는 이 후배는 육사 교관이었다.)"
"어.. 어.. 수고하네."

나는 이런 질문과 반응이야말로 정말 이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왜 강정에 만들고자 하는 해군기지를 반대하면 욕하는 것인가? 왜 군에서 하는 사업을 반대하면 빨갱이로 욕하는 것인가? 더 이상한 것은 떠들썩하게 웃으면서 걸어가는 사람들이 왜 이토록 미운 걸까? 해군기지 찬성한다는 것과 반대한다는 것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난 아직도 박정희가 주장하던 '한국적 민주주의'가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 못하고 있다. 이 어처구니없는 증오와 미움의 시작은 무엇이고, 해결방법은 없는가?

난 지금도 분명하게 주장한다. 강정에 세워지는 제주해군기지가 진정으로 자주국방에 도움이 되는 이유를 한가지만이라도 국민에게 설명할 수 있다면 개인적으로 이 싸움을 접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우리 돈으로 건설해주는 미 항모 전단의 전술적 작전기지가 어떻게 자주국방이란 말인가? 졸속 설계로 인하여 초계함급 군함 한척 제대로 상주시키지 못하는 항구가 무슨 기지인가? 주민들의 반대를 진압하기 위해 2008년부터 연인원 18만 명의 경찰인력을 동원하는 국가권력은 대체 무엇을 하는 짓이란 말인가? 하다하다 못해 전체 건설예산의 단 4%만 크루즈접안시설에 사용하는 군사기지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는 요상한 이름을 붙이면 해군기지가 아닌가? 설계변경을 하지 못해 공사비 누적으로 하도급업체가 부도가 나도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또 뭔가?

 꽃잎 휘날리는 4월 강정마을에 진입하는 육지경찰.
 꽃잎 휘날리는 4월 강정마을에 진입하는 육지경찰.
ⓒ 조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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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다. 공사현장에서 일해야만이 먹고 살 수 있는 공사업체 직원들, 정년을 앞두고 자리걱정에 머리 빠지는 해군 장교들, 윗사람 눈치 보느라 자존심은 자기 마누라에게나 부리는 공무원들도 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잘못된 건 잘못된 것이라고 얘기해야 하지 않는가? 잘못된 사업이라 생각해서 반대한다고 주장하면 경찰병력으로 진압해버리면 그만인가? '다치기 전에 가만있어. 그냥 입 다물고 있으면 편해.' 이거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난 용기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최소한 비겁해지고 싶지는 않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협조하고 떡고물 받아먹자는 사람이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란 양심이 있는 존재이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눈빛이 선한 사람을 싫어한다.

눈빛이 선한 사람이라면 자기 욕심을 들켜버릴 것 같아서 싫어한다는 설도 있고, 자신이 가진 무의식적인 양심이 거부반응을 일으킨다는 설도 있지만, 자기 욕심을 버린 사람 앞에서는 무언인지 모를 부끄러움을 생겨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사람으로서 양심이 있다면 70년 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메말라가는 제주의 땅을, 노래하면서 걸어가는 사람들의 선한 눈빛을 제대로 봐야 한다.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무슨 생각이 있기에 저토록 당당하단 말인가?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열망이 있기에 저토록 끈질기단 말인가?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무슨 열정이 있기에 저토록 웃는다는 말인가?

 2013 강정평화대행진.
 2013 강정평화대행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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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편견을 버리고 이 사람들을 보자.

해군기지 반대, 강정에 평화를 외치면서 길을 걷기 시작한지 6년이 흘렀다. 초등학교 6학년이 대학생이 되었다. 몇 분은 어르신은 운명을 달리하셨다. 업무방해로 벌금만 6억 원이 넘었고, 50여 명의 구속자(지금도 4분이 구속 중이다!) 와 400여 명의 연행자가 발생한 싸움이다. 도지사가 2번 바뀌고, 대통령이 3번 바뀌어도 계속해서 길을 걷고 있다.

다시 한 번 묻는다. 매일 매일의 일상에 증오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겨나도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대한민국 참 좋아졌다. 옛날 같으면 총으로 싹 쓸어버린다는 생각이 드는가? 한 번 그런 경험을 했는데 두 번 못할 것 같은가라는 생각이 드는가? 왜 이 사람들은 이렇게 걷고 있는가?

대학교수, 변호사, 학교선생, 영화감독, 시인, 목사님, 신부님, 수녀님, 대기업체 간부, 의사, 대학생, 중학생, 그리고 나 같은 40대 '놈팽이'까지.

우리는 살고 싶은 것이다. 사람답게 살고자 길을 걷는 것이다. 당신들을 생명을 죽여도, 우리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길을 걷는 것이다. 난 살고 싶다. 이 사람들과 같이. 그리고 평온한 강정 구럼비 앞바다에서 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보름달이 뜨는 범섬 앞 돌고래를 보면서 살고 싶다.

7월 28일 전야제로 시작한 강정평화대행진의 여정의 마지막 무렵 제주시 탑동 광장에서 6박 7일의 여정을 담은 영상이 상영될 때, 행사 진행을 맡고 있던 한 여자 후배의 눈가에 촉촉한 이슬이 맺혀 있었다.

 2013 강정평화대행진.
 2013 강정평화대행진.
ⓒ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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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토록 강하게만 보였던 끝내 그이는 눈물을 보였던 것일까? 끝내 눈물을 보였던 그이는 '강정평화대행진'동안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느꼈던 것일까? 그토록 무덥기만 했던 여름 가뭄 끝에 한줄기 소나기가 행진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탑동광장 무대 위로 걸린 무지개는 내 가슴 속에서도 무엇인가 뭉클하게 만드는 이상한 현상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내년에는 이런 이상한 행진을 만나고 싶지 않다. 이 행진의 목적은 잘못된 행위를 그냥 보고만 있지 말자는 행동이 아닌가? 이 또한 이상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헤드라인 제주에도 같이 실렸습니다



#강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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