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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

영화 <말아톤>에 나오는 대사다. 많은 이를 울렸던 이 한 마디는 특히 장애아를 둔 부모에게 가슴 아픈 말이었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아픔을 잘 그려냈던 영화였고 동시에 장애인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사회의 편견과 무시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적성을 찾아 꿈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장애아와 부모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계사년 새해 꿈을 이룬 한 소녀가 있다.

올해 대학 신입생이 되는 13학번 이하원(가명, 20)양. 남들 다 가는 대학이 무슨 대수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혜원 양과 가족들에겐 그 무엇보다 뜻 깊게 다가올 2013년이다. 오랜 시련을 이겨낸 혜원양은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새내기 대학생이다.

세균성 뇌수막염 [meningitis]
세균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뇌수막염으로 일반적으로 헤모필루스 b형 인플루엔자균에 의한 것이 가장 많고, 폐렴 구균, 수막 구균의 순으로 많이 발생된다. 1개월에서 1년 사이의 영아에서 빈도가 제일 높으며 일단 발병하면 사망률이 5~10% 이고, 20~30%는 청각 장애나 혼수 상태 등의 후유증을 겪는다.

세균성 뇌수막염인 경우 합병증의 발생빈도가 매우 높고 후유증으로 인한 장애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조기 치료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세균성 뇌수막염을 치료후에도 흔히 신경학적 후유증이 남을 수 있으므로 정기적인 청력검사와 행동 장애 등에 대한 주의깊은 관찰이 필요하다.

흔한 합병증으로 경련, 뇌압상승, 쇼크, 뇌경색, 뇌수두종, 난청, 항이뇨 호르몬의 분비 이상 증후군 등 이 올 수 있으며, 드문 경우로 경막하 농양, 뇌농양, 뇌신경손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또한 치료 4일이후에 경련, 혼수, 등이 나타나는 영아에게는 장기적인 신경학적 후유증을 갖는 경향이 있다. 신경학적 후유증은 청각손실, 정신지체, 경련, 언어획득 지연, 시각장애 및 행동학적문제 등이 있다.
혜원양에게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던 건 아니다. 혜원양의 부모가 새 생명의 기쁨을 안고 병원을 나서 집으로 돌아온 8일 후. 딸은 갑자기 고열 증상을 보였다. 동네의 작은 병원으로 데려갔을 때만 해도 의사는 가벼운 감기라고 했다. 별일 아니겠거니 생각하고 며칠을 보냈는데 한밤중에 딸이 갑자기 경기를 심하게 일으켰다. 놀란 부모는 서둘러 대학 병원으로 갔고, 그곳에서 나온 병명은 '세균성 뇌수막염'이었다.

조기 치료가 중요한 병이기에 초기 오진은 심각한 타격이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난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이미 세균 감염으로 인하여 뇌 세포도 많이 죽었고 시신경에도 약간의 충격이 갔다. 그렇게 아이는 오랜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혜원양은 현재까지 20년 가까이 경기를 억제하는 약을 매일 먹고 있다. 인지 능력은 초등 저학년 정도. 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하다는 게 병원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가족이 없어도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성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도 딸에게 적성을 찾게 해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좋아하는 것이 잘하는 것보다 중요했다.

힘든 시간이었다. 저학년 때는 괜찮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진도를 따라가기 버거웠다. 친구들도 사춘기에 이르면서 철없이 행동하기도 했다. '다름'이 '틀림'으로 여겨지는 나날이었다.

점점 어려워지는 교과 과정은 부모와 아이에게 고통이었다. 아이는 학교에 흥미가 떨어지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했다. 주변에서 가장 가슴 아프게 여긴 것은 이해하기 힘든 수업에 하루 종일 앉아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부모 입장에서는 딸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주어야 했다. 오랜 시간 발품을 팔고 여러 분야를 도전해보았다.

그렇게 힘들게 찾아낸 것이 바로 수공예 재능이었다. 오히려 다른 아이들보다도 더 뛰어났다. 서예와 종이접기에서 탁월한 솜씨를 보였고 특히 서예는 입시 특기생을 노릴 만한 수준이었다. 혜원양의 사정을 아는 서예 강사도 대학 진학을 돕기 위해 힘썼다. 많은 사람들의 격려·사랑과 도움 덕에 입시에 성공해 **대학교 조형문화과에 합격했다. 이제 13학번 예비 새내기다.

혜원양이 지금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어머니 김주연씨였다. 김 씨는 재발의 위험이나 주위의 편견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딸이 받은 상처가 가장 가슴 아팠다고 말한다. 유창한 말로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지 못해서 그렇지 가슴 깊은 곳에 쌓인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는 늘 딸과 함께 했고 딸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며 감싸 안았다. 공부도 종이접기도 서예도 항상 함께 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다 훌륭하지만 김주연씨의 각별한 노력과 사랑은 절망 속에서 아이를 건져내어 희망의 자리에 앉게 했다.

뇌수막염뿐 아니라 주변에는 다양한 종류의 장애를 겪고 있는 아이가 많다. 그 부모들 모두 장애 아동에게 '말아톤'처럼 적성을 찾아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영화나 소설처럼 자립에 성공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가족 모두가 노력해도 각자 마음의 상처만 남긴 채 실패한 경우가 대다수이다.

문제는 마음 가짐이 아니라 사회 구조에 있다. 경제적인 문제와 주변 시설 여건 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장애아동 부모는 주장한다. 정부의 지원이 없어 특수 기관에 보내거나 다른 시설에 맡길 때 상당한 금액이 필요하다.

일반 아동 육아에도 많은 금액이 들어가는 요즘 시대에 그 금액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돈이 있어도 문제다.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은 없다. 복지 기관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최저생계비나 장애인 연금이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의 설립과 일자리 지원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장애인 복지 정책은 열악하다. 조사 결과 △연금·수당 △보육·교육 △의료 및 재활지원 △서비스 △일자리·융자지원 △공공요금 감면 △세제혜택 △지역사회복지사업 △(재활시설) 및 기타 등 보건복지부 정책 모든 분야에서 해외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었다. 일자리 정책에서는 상시 50인 이상 고용 사업주에 대해 장애인 고용을 정부와 공공기관은 3%, 민간기업 2.5%(2012)를 의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도 매년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기금' 약 1800억 원을 조성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의무고용제도의 여파로 공공기관과 기업들이 경증 신체장애인 고용을 선호함에 따라 오히려 이동 및 접근이 어렵거나 생산성이 낮은 중증신체장애인, 시각·청각장애인, 정신·지적 장애인들은 더욱더 일자리 얻기가 어려워졌다.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 시스템 또한 부족하다. 우선 수가 적다. 장애 아동을 위한 교육 재활 시설은 특히 수가 적다. 현재 서울 내의 장애 아동 재활 교육 시설은 단 1곳. 그마저도 대기자 수가 끝없이 밀려있어서 새로 등록하기 힘들다.

서울시 보조금으로 운영되기에 수도권의 아동들은 이용조차 하기 어렵다. 나머지 아동들은 곳곳의 장애 복지 시설에서 편성한 아동과에 들어가는 방법 밖에 없다. 현재 전국의 장애 재활, 교육 시설은 3005개. 그 중에 549개가 서울에 밀집해있다. 서울 내에도 수가 충분치 않지만 서울을 벗어나면 그 시설을 이용하기가 버거운 상황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시설 이용에 대해 문의를 하려고 해도 지자체 공공기관에서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인근 구청과 동사무소, 수도권 내의 각 시청 등 공공기관에 문의를 한 결과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소수였고, 이마저도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기본적인 정보 제공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2월, 정부는 향후 5년간 10조원을 투자하는 제4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3~2017)을 심의 확정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2009년 기준 OECD 국가 중 사회복지 지출 순위에서 34위, 최하위를 기록했다. 해외 여러 국가에서는 장애인 재활 및 자립 부분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독일에서는 장애 아동들의 창의성 향상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정규 수업이 아닌 특별 미술 수업을 통해 창의력 증진에 힘쓰고 있다. 또한 영국에서는 장애 청년에게 취업을 제공하는 'Work choice'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가까운 일본에서도 장애인 의무 고용율을 상향 조정하여 기업에 제시해 장애인들의 자립을 정부 차원에서 장려하고 있다.

혜원양은 현재 종이 접기 고급 지도자 과정을 이수 중이다. 본인이 받았던 사랑을 남에게 베풀 준비를 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을 딛고 일어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새로운 환경을 제공하려고 한다.

'인간 승리'는 우리를 울린다. 존경할 만한 이야기지만 감동스럽지 않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 성공을 이룬 주인공의 이야기가 계속 나와서는 안 된다. 사회적 차원에서 장애를 감싸주고 도와주어야 한다. 장애인 그리고 그 가족들의 노력으로 계속하여 이런 감동적 일화가 나오지 않는, 모든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사회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장애는 우리와 틀린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를 뿐이다. 왜곡된 시선으로 불편한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오히려 장애다. 또 다른 혜원양이 나오기 위해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우리 사회 주변의 장애 아동을 위한 복지에 대해 재검토해보야 할 것입니다.



#장애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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