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얼마 전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전 민주노동당 대표)는 [진보의 블랙박스를 열다] 출판 기념회에서 "진보언론과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돌을 들고 마녀사냥에 나섰다"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서프라이즈 대표 서영석이 쓴 칼럼 제목은 아예, [통합진보당 사태 집중 분석 - 그들은 억울하다] 이다. 민족해방계열 옹호자인 김갑수는 '마르크스' 까지 들먹이며 "세 번째로 반복된 '진보 죽이기' 라며, '대한민국 최초의 진보정당인 조봉암의 진보당'의 운명에 비유한다.(하긴 '대동단합'을 위해 '이념을 논하지 말고 일단 당을 만들자'며, 우익인사들까지 끌어들여 창당했다, 이승만의 제물로 사법살인까지 당한 진보당이 걸어온 길은 통합진보당과 유사한 면이 있다. 조봉암의 '대동단합'노선은 1987년 '대동단결'이었고, 이정희는 '진보대통합'으로 되살려냈다. 언제까지 반복할지..)

이들의 주장은 자신들이 "모함으로 … 책임을 덮어 씌어"지는 일을 당한 것이고, 이에 대한 이정희의 대응은,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비난을 다 받는 것밖에" 없는 나약한 순교자였으며, 이제 '진보의 블랙박스'가 열렸으니, "이대로 여러분과 같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려 한다"는 것이다. 너무도 나약하고 순진한 얼굴로 억울하고 불쌍해 보이고 싶어 하는 건 알겠는데, 그들이 원하는 그대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통합민주당 대표 이정희가 걸어온 길을 조금만 되돌아보자.

통합민주당은 진보 정체성을 후퇴시킨 당

누가 유시민과 같은 친자본적 자유주의자과 함께 할 수 있다고 노동자들에게 강변했는가! 누가 참여당 합당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의사를 뿌리치고, 끈질기게 통합을 추진했는가! 누가 참여당과의 통합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민주노동당의 노동자 중심 강령을 후퇴시켰는가!

2011년 9월 21일 민주노동당 당 대회를 앞두고, 이정희 대표는 민주노동당원 호소문에서 "[국민들은] 우리가 표 찍어 주고 이기게 해 줄 테니, 제발 합치기만 하라고들 하십니다" 하며 참여당과의 합당을 밀어붙였다. 또한 "당대표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그것이 무엇이든 당원들의 결정에 복종하고 결정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그 의무를 다하겠습니다"라고도 했다. 2011년 9월 25일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국민참여당(이하 참여당)과의 통합 추진 안건은 결국 부결됐다.

"당원들의 결정에 복종"하겠다고 한 이정희를 필두로 한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들은, 8월과 9월 두 번의 당대회에서 참여당과의 통합결정이 부결되었음에도, 11월 27일 같은 내용으로 당 대회를 소집했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과, 민주노동당 창당대표인 권영길 의원도 불참한 채, 많은 반대파 대의원들이 불참한 채, 기어이 참여당과의 통합을 결정했다. 이것이 "민중이 스스로 선택한 진보정치"라 할 수 있는가?(이제부터" "안 내용은 이정희 18대 대선출마 선언문이다.)

결국 이정희를 필두로 한 민주노동당 당시 당권파는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친 자본적 유시민 참여당과 함께 2011.12.5일 "민중이 선택한 통합과 연대의 길에서 야권연대를 성사시키고 통합진보당을 만들어"낸다. 여전히 이정희는 노동자 중심 민주노동당을 친자본적인 국민참여당과 합당시킨 것을 자신의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한가! 4.11 총선에서는 지역구 7석 비례대표 6석으로 역대 최다의석을 확보하며, '통합'의 효과를 그런대로 보는 듯 했다. 그리고...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선출 투표에 대한 부정선거시비가 있었다. 이 때 민주노동당 시절 이정희 대표의 '참여당과의 통합'을 밀어붙이는데 헌신적으로 협조한 조준호(11월 27일 당대회에서 조준호 당대회 의장은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논리로 통당 반대 발언 신청자 중에 2명은 포기하라고 요구하며 통합을 도왔다)가 위원장이 된 1차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총체적 부실.부정선거'라 규정했다. "어제까지 연대했던" 동지에게 뒤통수를 맞은 겪이 된, 이정희 중심 구 당권파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겠지만, 하여튼 통합진보당은 5월 5일 전국운영위원회에서 '경선 부문 비례대표 후보 총사퇴 결의안 의결'을 했다.

이것은 부정의 정도가 많든 적든, 누가 부정을 했든 간에, 이정희가 포함된 당 최고기관의 결정이었다. 스스로 원해 통합한 조직의 최고기관의 결정이라면, 함께 하기로 했다면, 적어도 조직원칙을 따라야 했고, 그러한 조직 원칙에 의해 행동해야 했다. 하지만 당시 구 당권파는 자신들의 패권을 위해 민주적인 조직원칙 따위는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음을 온 국민들 앞에 폭력적인 방식으로 적나라하게 증명했다.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5.12)가 있었고, 가장 불행한 사건으로 건설노동자였던 박영재당원의 분신이 있었다.(5.14) 폭력과 죽음을 불사한 항의 앞에 새로운 당원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다.(5.20) 제2차 진상조사위원회조사 보고서가 발표되고(6.26) 중앙당기위원회 이석기 김재연 의원, 조윤숙 황선 후보 제명결정을 내리고(6.29), 강기갑 후보가 당대표로 당선되어(7.14) 이석기, 김재연의원을 제명시키려 했지만 이석기, 김재연 의원 제명안은 최종적으로 부결된다.(7.26)

그간의 경과만 놓고 보더라도 민주주의적인 당과 당원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다. 당에서 결정된 사항도 일부 당원들이 단상 점거하고, 소리 지르고 힘으로 밀어붙이면 무시된다. 그들에게 조직은 그들의 파벌뿐이었다. 이들이 진보라면 진보는 반민주주의일 것이다. 이정희는 "2012년 5월 저는 근거 없이 모함당하는 사람의 손을 놓치 않았습니다"라고 한다. 이정희가 놓지 않은 사람들은 그만을 옹호하는 그의 파벌과 패권뿐이다. 또한 "단결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배제와 축출을 내세우며 분열의 길을 거듭하면 진보가 아닙니다."라고 한다. 이정희가 한 말에 따르면, 구 당권파는 단결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종파와 패권을 내세우며 반민주적인 길을 거듭했으니 진보가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조직적 대변자인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에게 비례후보 총사퇴를 요구했으나(5.12), 눈도 깜짝 하지 않았다.(노동자를 존중하고자 했던 강기갑 대표는 민주노총에 깎듯이 사과를 했다.) 그 사이 '진보'라는 이름은 걸레조각이 되었다. 자본친화적인 국민참여당에까지 '진보딱지'를 붙여주었던 이정희세력에게는 '종북'딱지가 붙여지고, 정신없는 냉소적 자유주의자인 진중권은 '순도 100% 막가파 주사당' 이라며 '종북사냥'(사실상 '진보사냥'이며, '좌파 사냥'인)을 거들었다. 이정희는 "노동자, 농민의 지혜를 믿지 않고 그들의 판단을 무시"했다. 노동자 민중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판단할 것이다.

이정희는 자신만이 '종북 마녀사냥'의 유일하고 가장 억울한 피해자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21세기 한국의 진보진영에서 재현된 중세의 마녀사냥은 정확히 저를 겨냥했습니다" 하지만 '마녀 사냥'이 노린 것은 이정희만이 아니라 노동자를 비롯한 진보세력 전체였다. 그들이 탈취당한 통합진보당 당원명부는 앞으로 두고 두고 진보세력을 탄압하는 기초자료가 될 것이고, 이석기, 김재연 의원 제명안이 부결된 7월 26일 바로 다음날인 7월 27일에는 파업 중이던 에스제이엠노조와 만도 지부 노조 곳곳은 유래 없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용역깡패들에게 점령당했다. 통합진보당은 이제 진보를 빨아들이는 진보의 블랙홀이 되었다.

이정희는 이제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 그동안 이정희는 무엇을 했는가? 당의 무기라 할 수 있는 강령에서 갖가지 후퇴가 이루어졌다. 민주노동당의 사회주의 구절은 삭제되었고,  평화체제를 위한 선결적 과제였던 주한미군 철수는 평화체제 구축 이후 순위로 미루어졌다. 여성 관련 강령에서 '여성의 성을 억압하고 소외시키는 상품화'와 '자본주의적 제도와 가치체계와 맞서 싸운다'는 내용이 삭제되었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확대 앞에 '단계적'이라는 단서가 삽입되었다. 국정원 같은 '폭압기구 해체'가 '민주적 통제'로 둔갑했다. '한미FTA, 한EU FTA 반대'는 '불평등 조약과 협정을 개정, 폐지'로 후퇴했다.

이정희는 "노동자 민중의 손에 무기를 쥐게 할 것입니다. 노동자 민중의 앞에 방파제를 세울 것입니다. 이것이 진보정치입니다"라고 한다. 이정희가 노동자 민중의 손에 쥐게 할 무기(강령의 후퇴를 보라!)는, 날이 다 빠져버린, 장난감에 불과하다. 이정희가 노동자 민중의 앞에 세울 방파제는 가벼운 파도에도 힘 없이 무너질 방파제다.

이정희의 "진실은 밝혀졌"다. 이정희가 걸어온 길은 노동자 농민의 민주주의적인 민주노동당을 자본 친화적인 유시민과 함께 하는 '통합진보당'으로 통합시킨 것이다. 그 통합을 위해 노동자, 농민의 기본적인 요구들을 축소시키고, 후퇴시켜 우경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자승자박! 통합진보당에서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유시민의 '국민참여당'과 민주주의적 '통합'에서, 무엇보다 그들 당권파 자신의 비민주적인 패권주의와 스탈린주의적 만행으로 실패했다는 것이다.

"민중이 스스로 힘을 갖는 민주주의가 아니고서는, 분단체제에서 통일을 이루지 않고서는,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자주적인 한미관계로 바꾸지 않고서는, 민중이 자신의 삶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이정희가 "민중 스스로 민중의 삶을 지키는 진보정치의 길"을 지킨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이정희는 강령까지 바꾸며, 자본친화적 정당과 통합을 해서, "정책과 표를 거래하고자" 하고, "진보정치 엘리트들의 대리정치에 박수치는 것으로 진보정치를 전락"시키고 있는 것에 대해 먼저 반성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들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더 이상의 기대는 버려야 한다. 지금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눈 앞에 보이는 쉬운 길을 찾을 수는 없는 일이다. 스스로 대안을 건설해 나가자.


#이정희#18대 대통령 후보#대선출마 선언문#통합진보당#민주노동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