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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의 발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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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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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예천군의회 후반기 의장단 선거에서 금품제공 의혹으로 경찰 조사를 받아온 한 의원이 자살했다. 대체 지방의회 의장단 선거가 뭐기에 자살까지 부른 걸까?

예천군 외에도 경북도의회, 남원시의회 등에서도 의장단 선거과정에서 돈이 오갔다는 제보가 나와 선관위와 검찰 수사가 진행중이다. 지방의회 의장단, 상임위원장 선거를 둘러싼 진흙탕 싸움이 2년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4년 임기 중 전반기 2년과 후반기 2년 각각 새롭게 원 구성을 하는데 의장, 부의장, 상임위원장 '감투'를 둘러싸고 이합집산과 담합이 이루어진다. '돈봉투'가 돌기도 하고, 담합한 의원들끼리 표 이탈을 막기 위해 선거 전날 '합숙'을 하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사전 밀실담합을 통한 자리 나눠먹기다.

선거 당일날 본회의장에서는 소위 '교황식 선출방식'에 의해 선거가 이루어진다. 공개적인 후보 등록 절차 없이 당일 기표 용지에 이름을 써 넣는 방식이다. 누가 어떤 생각을 갖고 의회를 이끌어갈지, 임기 중에는 어떤 부분에 역점을 둘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지방의회 의장단 선거가 초등학교 반장선거보다 못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의장과 부의장이 사전에 조율되면 의장과 부의장 후보는 표를 모으기 위해 상임위원장 자리를 조건으로 개별적으로 의원들에게 지지를 부탁한다. 서로간의 약속이 지켜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기표용지에 그들만이 알아볼 수 있도록 표시를 하기도 한다. 검표하는 의원이 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자, 상황이 이러할진대 누구나 후보가 될 수 있다는 교황식 선거방식이 지방의회에 적합하기나 한 것일까.

의장단 선거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전에 공식 후보 등록절차를 두고 공약이나 정견발표, 공개토론회 등을 통해 후보들을 사전에 검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상임위원장은 상임위 배정 이후에 상임위 소속 의원들이 투표를 통해 자체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특별위원회의 경우 특위 소속 의원들이 위원장을 뽑고 있으므로 상임위원장 역시 소속 의원들이 뽑는게 형평에도 맞다. 그래야만 의장단 선거에서 상임위원장 자리를 조건으로 사전담합하는 관행을 없앨 수 있다.

'감투'가 보장해주는 특혜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자리는 단순히 경력 하나가 추가되는 자리가 아니다. 마포구의회의 경우 의장에게는 월 330만 원의 업무추진비(연 3960만 원)와 의장 사무실이 제공되고, 관용차와 운전기사, 개인비서까지 채용된다. 부의장에게는 월 160만 원의 업무추진비가, 상임위원장에게는 월 110만 원의 업무추진비와 각각 독립된 사무실이 제공된다. 나머지 13명의 의원들이 한 사무실에서 칸막이 하나 없이 일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혜택 외에도 의장단은 구청에 직간접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이면서 의장의 경우 대내외적인 행사에서 자치단체장과 동급의 의전을 받는다. 차기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의원들 입장에서 이러한 특혜들은 주민들에게 자신의 위상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지방의회의 역할이 무엇인가. 주민을 대표해서 지방자치단체를 견제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지방의회 스스로가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주민의 대표라는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지방의회는 어떤 모습인가.

지난해 마포구의회에서 주민참여예산조례 심사를 할 때 시민단체 회원들이 상임위 방청을 하려 했으나 의원들이 번번이 이를 거부했다. 그뿐 아니라 조례 심사과정에서 구청에서 제시한 조례안보다도 더 후퇴한, 주민 참여를 최소화시키는 안으로 수정 통과시키기까지 했다. 이때 주민참여예산위원들의 수당 지급 조항까지도 삭제해 이후에 주민참여예산위원들이 반발하자 본인들이 삭제한 조항을 6개월만에 다시 되살리는 개정안을 만들어 통과시키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이것이 지방의회의 현주소이다.

제비뽑기보다 못한 무원칙한 상임위 배정

"이럴꺼면 차라리 제비뽑기로 상임위원회 배정을 정하는게 더 공평한게 아닌가."

지난 9일 마포구의회 본회의에서 후반기 상임위원회 배정이 결정되자 자신이 지원한 상임위에 배정받지 못한 한 동료의원의 말이다. 나 역시 지원했던 복지도시위원회가 아닌, 전반기에 활동했던 행정건설위원회에 계속 배정됐다.

이유는, 전반기에 복지도시위원회에 있던 의원들 전원이 계속 같은 상임위에 있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란다. 5대 의회 때까지는 후반기에 상임위를 교체하고자 하는 의원들 수가 극히 적었다. 그래서 한두 명이 서로 상임위를 바꾸면 됐기 때문에 상임위 배정이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6대 의회에서 상황이 달라졌다. 행정건설위원회에 있던 의원들 중 절반이 후반기 상임위 교체를 희망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재선, 3선, 4선 의원들 대부분이 첫 임기때부터 지금껏 같은 상임위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에 대한 철학과 신념이 확고해서?

"솔직히 말해서 전반기에 어떤 상임위에서 2년 활동해보면 이제 좀 알 것 같거든. 그런데 후반기에 상임위를 바꾸면 모르니까 새로 배워야 하는데... 의원들이 그렇게 하고 싶겠냐고."

한 선배의원의 귀띔이다. 재선, 3선, 4선을 해도 구정 전반을 꿰뚫고 있는 의원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선 의원들중 상당수가 기존 상임위를 고집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폐지 논란속 지방의회 현주소

대통령 직속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가 지방의회 폐지를 담은 지방자치제도 개편안을 추진중이다. 이에 대해 지방자치를 역행하는 발상이라며 각 지방의회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나 역시도 이는 지방자치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주민들의 여론은 어떤가. 의원들 월급주느라 세금이나 축내는 지방의회라면 차라리 이 기회에 없애는 게 낫다고들 한다. 지방자치를 20년 전으로 되돌리려 하는 건 어쩌면 정부가 아니라 스스로의 위상을 깎아 먹는 추태를 반복하고 있는 의원들일지 모른다. 제도의 허점은 제도를 고치면 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은 사람을 바꾸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덧붙이는 글 | 오진아 기자는 서울 마포구 구의원입니다.



태그:#지방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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