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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개인의 삶을 어느 정도, 어떤 방식으로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여러 입장이 있다. 사회보장이 필요하더라도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보는 소극적 입장이 있는가 하면,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을 지향하는 적극적 입장도 있다. 이 글에서는 소극적 입장을 '자유주의', 적극적인 입장을 '복지주의'라고 부르기로 한다. '자유주의'에도 여러 종류가 있으나, 사회보장에 가장 소극적인 신자유주의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자유주의의 핵심은 '선택과 시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고 그 결과를 선택한 자가 책임지도록 한다. 따라서 경제는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며 정부가 재분배를 통해 사회보장을 하는 데 반대한다. 재분배는 선택의 자유를 제약하고 선택과 책임의 연계를 약화시켜 개인적으로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고 사회적으로 시장이 왜곡되어 빈곤을 해결하는 데 오히려 지장을 준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와 복지주의가 다 같이 동의하는 사회보장은 불가능한가? 시장과 복지가 양립할 수는 없을까? 이 글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고정관념과 이해관계를 떠나 이성과 논리에만 충실하면 시장과 잘 어울리는 고수준의 사회보장이 가능함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를 위해 자유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따져보고 그 바탕 위에서 사회보장제도를 설계해 본다.

프리드먼, 내키지 않지만 소득세를 복지 재원으로

자유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로서 경제학자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철학자 노직(Robert Nozick)을 꼽는 데 이론이 없을 것이다. 프리드먼은 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면서도 이 세상에는 정신이상자나 어린이처럼 선택 능력이 없는 사람도 있으므로 이들에 대해서는 온정주의적 배려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렇게 괴로워한다. 1962년에 쓴 유명한 책 <자본주의와 자유>를 인용해보자.

온정주의적 정부 활동의 필요성은 자유주의자에게는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문제다. 자유주의가 기피하는 '누군가 타인을 대신하여 결정한다'는 원칙을 받아들여야 하며 또 이런 원칙은 그 포장이 공산주의건 사회주건 복지국가건, 자유주의의 주적인 집단주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프리드먼은 시장경제의 틀 내에서도 빈곤층 전반에 대한 사회보장을 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였다. 인간에게는 불행에 빠진 사람을 가엾이 여겨 자발적으로 도우려는 본성이 있는데, 누군가 자선을 행하여 문제를 해결하면 같이 가여워했던 다른 사람이 무임승차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외부효과는 시장에서 해결하지 못하므로 정부를 통해 공동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프리드먼은 사회보장을 소극적으로나마 긍정하면서도, 기존 사회보장제도에 두 가지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대상을 빈곤층에 집중하지 않고 특정 직업, 연령, 소득계층, 노동조합, 산업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번잡한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격 지지, 최저임금, 관세 등 시장을 왜곡하는 조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결함을 피하기 위해 그는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제도를 제안한다. 부의 소득세는 일반 소득세의 대칭형이다. 일반 소득세가 면세점 이상의 소득에 일정 세율을 곱한 금액을 징수하는 세금인 반면, 부의 소득세는 소득이 면세점 이하일 경우에 그 차액에 일정 세율을 곱한 금액을 지급하는 세금이다.

징수하는 대신 오히려 지급하기 때문에 이를 부(負)의 소득세라고 불렀다. 프리드먼은 물론 세금을 좋아하지 않지만 소득세는 필요악으로 보면서, 소득세 제도를 활용한 사회보장 방식을 제시한 것이다.

프리드먼이 시장과 복지의 충돌이라는 고민과 자가당착을 벗어날 수는 없을까? 있다. 아래에서 보듯이 노직의 논리를 따르더라도 반드시 징수해야 하는 세금이 있기 때문이다.

노직도 수긍하는 세금이 있다

노직은 복지국가의 철학적 근거를 마련한 롤즈(John Rawls)의 <정의론>를 비판하면서 1974에 <아나키, 국가. 유토피아>를 출간하여 최소국가(minimal state)를 역설한 사람이다. 이 책에서 그는 "노동 생산물에 과세하는 것은 노동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논리에 따르더라도 반드시 징수해야 하는 세금이 있다. 노직은 누군가 토지를 소유하면 다른 사람이 그만큼 불리해지므로 이를 보상해야 한다고 하였다. 토지소유자가 내놓아야 하는 보상금의 크기는 지대와 같다. 지대는 토지의 상대적 우수성을 나타내는 금액이므로 토지 소유로 인해 다른 사람이 불리해지는 정도를 잘 반영한다.

토지를 소유하는 모든 개인이 모든 다른 사람에게 일일이 보상하기는 번거로우므로 능률적인 보상을 위해서는 정부가 모든 토지소유자로부터 소유의 이익을 징수하여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금액을 분배하는 것이 가장 좋다(그러나 안타깝게도 노직은 자신의 논리를 여기까지는 밀고 나가지 못했다).

토지소유자로부터 지대를 징수하는 세금은 19세기 미국의 토지개혁가 헨리 조지(Henry George)가 지대세(land value tax)라는 명칭으로 제시한 바 있다. 지대세는 이름이 '세금'일 뿐 노직이 거부하는 그런 세금이 아니다. 노직이 반대하는 세금은 노동 생산물에 부과하는 세금인데 토지는 노동 생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지대세는 보통의 세금과 달리 '대가관계가 없는 강제 징수금'도 아니다. 지대는 토지를 사용하려는 자가 토지시장에서 자발적으로 지불하게 될 금액이기 때문이다. 지대세는 단지 지불의 상대방이 정부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노직의 논리로부터 도출되는 지대세는 세금을 싫어하는 프리드먼도 "가장 덜 나쁜 세금"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렇다면 프리드먼은 왜 부의 소득세 대신 지대를 재원으로 하는 사회보장제도를 설계하지 않았을까? 지대세를 새로 도입하기보다 이미 정착되어 있는 소득세를 활용하는 것이 쉽다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프리드먼 같은 대가도 (노직도 그랬듯이) 때로는 철저한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해서일까?

자기 돈으로 자기 삶을 보장합시다

정부가 지대를 징수하여 별도의 기금으로 관리한다고 해보자. 지대기금으로 국민에게 보상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아무런 조건도 제약도 없이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금액을 나누어주는 방법이다. 실제로 알래스카에서는 석유채굴세(severance tax) 수입을 주민에게 균등하게 나누어 주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지대 총액은 연간 150조 원 정도이고 이를 5000만 국민에게 나누면 1인당 연 300만 원 꼴이다. 토지 이외에 자원 독점, 환경오염이나 "렌트(rent)"라고 불리는 특권의 대가까지 징수하면 그 금액은 훨씬 더 늘어난다.

자유주의는 시장을 왜곡하지 않는 지대세 수입으로 사회보장 외에 다른 정부 비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면 더 좋아할 것이다. 또 복지주의는 1인당 돌아가는 금액이 적어 고수준의 복지가 안 된다고 불평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방법 즉 빈곤에 빠진 국민에 대해서만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보험을 설계해볼 필요가 있다.

보험의 얼개는 이렇다. 모든 국민은 수태된 시점에 자동 가입된다. 보험료는 모든 국민이 동일하며 지대기금에 대한 각 국민의 지분 중 일부를 찾아 정부가 납입한다. 실제 소득이 인간다운 생활에 필요한 기본생활비에 미달하는 '보험사고'가 발생하면 보험금을 지급한다. 보험금은 기본생활비와 실제 소득 간의 차액이 된다.

보험 급여에 관한 세부적인 업무는 민간 회사에 맡겨도 된다. 여러 보험회사가 경쟁한다면 그만큼 국민의 선택폭이 넓어진다. 자녀를 위해 최초로 가입할 경우에는 보험회사를 부모가 선택하겠지만, 자녀가 일정 연령이 되면 본인의 판단에 따라 보험회사를 바꿀 수 있도록 한다. 생존권보험 업무의 민간화는 자유주의가 분명히 환영할 것이다.

생존권보험은 현재의 사회보장 중 국민기초생활보장,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 등 사회연금, 실업급여를 바로 대체할 수 있으며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의료부조 등 의료 관련 사회보장, 산재보험 등도 설계하기에 따라서는 대체할 수 있다. 나아가서, 교육과 주거와 기본적인 문화생활의 보장을 위해서도 지대기금을 활용할 수 있다.

생존권보험은 일반 보험과 달리 상환 의무를 부과하면 더 좋다. 한때는 가난하더라도 다른 시기에는 부유하게 살 수도 있고 스키장처럼 비수기와 성수기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일시적으로 '보험사고'가 발생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복지 수급액을 잘 살 때 갚는 것이 상식적이다. 상환제도를 둔다면 지대기금은 더욱 여유가 생긴다.

이러한 사회보장은 각 국민이 지대기금에 대한 지분 즉 자기 돈으로 자기 삶을 보장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사회'보장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한 이유는 지대를 정부가 징수하고 관리하기 때문일 뿐이다.

과도기의 지혜

지금까지 보았듯이 지대세는 토지소유자가 반드시 내놓아야 하는 보상금인 동시에 시장과 잘 어울리는 "가장 덜 나쁜 세금"이다. 그러므로 지대를 활용하면 시장과 잘 어울리는 사회보장이 가능하다. 이런 사회보장은 자유주의와 복지주의가 공감할 수 있는, 아니 공감할 수밖에 없는 방식이 아닌가?

그런데 현행 세제에는 지대세가 없기 때문에 과도기적 방법이 필요하다. 현재의 조세 수입 중에서 지대총액에 해당하는 금액을 '가상적' 지대기금에 편입하고 이를 재원으로 하여 생존권보험을 운영하면 된다. 그런 후에는 지대세를 신설하여 그 세율을 점차로 올리면서 다른 세금을 대체해 나가면 '가상적'이라는 수식어도 뗄 수 있다.

조세 대체를 위해서는, 토지의 매입지가에 대한 이자를 공제한 나머지 지대만을 징수하는 세금도 좋은 대안이다. 이런 세금을 도입하면 토지 투기로 인한 모든 병폐가 당장 사라질 뿐 아니라 토지 매매가격이 매입지가로 일정하게 유지되어 경제에 충격을 주지 않는다.

또 토지소유자에게는 매입지가의 원리금이 보장되므로 현재의 토지소유자를 불리하게 하지도 않는다. 과도기에 적용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좋은 방법이다. 앞으로 지대가 상승하면 수입도 늘어난다. 조세 대체의 속도를 더 빠르게 하는 방법도 있다.

한마디 더 언급해두고 글을 마치고 싶다. 지대는 사회보장의 이상적인 재원일 뿐 아니라 지대를 환수하면 복지 수요 자체를 줄이는 효과까지 있다. 사회보장이 필요한 것은 주로 빈곤 때문이다. 물론 요즘에는 수급자의 경제 상황을 묻지 않는 보편적 복지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지만, 빈곤이 없다면 사회가 나서서 개인의 일을 해결할 이유는 크게 감소한다.

지대를 징수하면 토지 투기로 인한 양극화와 경제 파탄이 예방되고, 시장을 왜곡하는 다른 세금을 감면해주면 경제가 활성화된다. 비유하자면 복지가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는 정책이라면 지대 환수 및 조세 대체는 사람이 물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수단을 겸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주의만이 아니라 복지주의까지도 필자가 제시한 사회보장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아래 자료를 요약・가필한 것입니다.
김윤상, 2012, "토지와 복지: 지대를 재원으로 하는 사회보장 설계"(김윤상, 조성찬, 남기업 외,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 평사리)
* 김윤상 기자는 토지+자유연구소 연구위원,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입니다.



태그:#복지재원, #지대세, #소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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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 연구소는 토지에 대한 평등한 토지권 정신(지공주의)을 바탕으로 사회문제의 근간인 토지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아가 경제정의를 세울 수 있는 이론 구축과 실행 가능한 정책대안 제시를 목표로 한다. 현재 다양한 학문 분야의 전문가들이 연구위원으로 참여하여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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