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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자랑이었던 중학교가 기피 대상?

4대강 공사이전 바위늪구비 지역을 질주하던 아이들
▲ 여주중의 연례행사 남한강 도보순례 모습 4대강 공사이전 바위늪구비 지역을 질주하던 아이들
ⓒ 정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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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지역에는 60년이 넘는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최초의 공립 중학교가 있다. 바로 여주중학교다. 그간 수많은 지역 인재를 배출한 학교이면서 여주지역의 중심학교라는 자부심이 있는 학교다.

하지만 5년 전 새로 형성된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신설 중학교가 들어섰다. 남녀공학에 새로운 건물, 그리고 기존의 지역 학교와 다른 이미지 때문에 여주지역의 초등학생들은 새로운 학교로 모이기 시작했다. 1200여 명이던 여주 중학교 학생 수가 500명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 여파로 여주중학교는 '학생들이 가기 싫어하는 낙후된 기피학교'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남학생들만 있기 때문에 연상되는 선후배 간 폭력, 낙후된 교통, 복잡하게 돌아가는 급경사의 등교로, 어두침침한 건물이 여주중학교의 이미지가 됐다. '이런 상황을 탈피하고 학생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 수 없을까'를 고민하던 교사들이 하나 둘 씩 성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3월 서로를 존중하는 학교 문화를 만들기 위한 사제간 공동체 의식 모습
▲ 여주중학교 모든 사제간 상호 존중의 큰절 의식 3월 서로를 존중하는 학교 문화를 만들기 위한 사제간 공동체 의식 모습
ⓒ 정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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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교사들이 자비를 들여 자발적으로 선진 학교들을 찾아 나섰다. 교사들은 경남거창의 샛별 중학교, 안성의 한겨레중고등학교, 인접지역인 이천의 부발중학교, 성남의 남한산초등학교 등을 돌아보면서 여주중학교가 처한 현실과 개선 방법을 분명히 인식하게 됐다.

여주중학교 교사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타 학교 사례를 참고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매년 진행되는 남한강 도보순례, 사제 간의 공동체의식을 기르기 위한 공동체 다짐의식, 삭막한 부자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부자캠프, 남학생들의 끓어 넘치는 에너지가 발산되는 남한강 다양성 마라톤 대회와 수요 스포츠 리그 등을 시도했고 이 행사들은 제법 안정된 학내 고유 프로그램으로 정착되고 있다.

힘든 등굣길에서 피어나는 선생님들의 사랑

선생님들의 포옹 속에 받아 든 한 잔의 차와 김밥은 학생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 차와 김밥, 그리고 행복감 선생님들의 포옹 속에 받아 든 한 잔의 차와 김밥은 학생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 정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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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1월 3일을 기준으로 개최되는 '학생의 날'행사. 이 행사는 여주중학교가 어떻게 혁신과 변화를 시도해 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수모를 견딜 수 없어 일어섰던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을 '학생의 날'로 지정해 학생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기쁨과 행복을 가득 안겨주자'는 취지로 시작된 이 행사는 벌써 4년째를 맞고 있다.

이날 행사는 힘든 고갯길을 올라오는 제자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선생님들이 직접 준비했다. 이날이 되면 선생님들은 새벽 4시부터 학교에 나와 코코아와 차를 끓이고 아침을 부실하게 먹고 온 학생들을 위해 빵이나 케이크, 김밥 등을 준비한다. 그리고 선생님 밴드가 준비해 온 사랑의 노래 공연이 펼쳐진다.

 매년 학생의 날엔 선생님 밴드가 고갯길을 힘들게 올라온 학생들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 학생의 날 선생님들이 준비한 사랑의 축하공연 매년 학생의 날엔 선생님 밴드가 고갯길을 힘들게 올라온 학생들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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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의 노래공연을 배경음악으로 한쪽에서는 학생들이 김밥과 코코아와 차를 마신다. 또한 아버지·어머니 연령대의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꼭 안아준다. 포옹하고 격려하며 '사랑한다'는 선생님들의 포옹이 학생들에게도 익숙하게 다가온다.

학생과 교사가 맞절하는 학교

올해는 학생의 날 프로그램이 더 길었으면 하는 학생들의 요청이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비밀스러운 행사를 펼쳤다. 학생과 선생님들이 각자가 꿈꾸는 여주중학교의 상을 자유롭게 말하는 '1분 발언무대'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학생과 교사가 함께 '올해의 여주인상'을 선정하기도 했다. 올해의 여주인상은 학생대표들이 학년별로 10명을 추천하면 각 담임선생님들이 치열한 설전 끝에 1명을 꼽는 방식으로 뽑혔다. 기준은 인격과 태도, 어려움을 극복해낸 정도이다. 부상으로는 10만원의 장학금이 수여된다. 가히 최고의 영예라 할 만하다.

여주중학교의 발전을 위해 선생님들과의 열 띤 토론을 제안하며
▲ 자유발언에 나선 3학년 권 산 학생 여주중학교의 발전을 위해 선생님들과의 열 띤 토론을 제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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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과 같은 학생을 신문지가 아닌 선물포장지로 감싸야 하지 않겠냐며
▲ 자유발언에 나선 홍성신 선생님 보석과 같은 학생을 신문지가 아닌 선물포장지로 감싸야 하지 않겠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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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학생 추천 후 2차 담임선생님들의 설전을 통해 최종적으로 학년 별 1명씩이 선정된다.
▲ '올해의 여주인'상 시상식 풍경 1차 학생 추천 후 2차 담임선생님들의 설전을 통해 최종적으로 학년 별 1명씩이 선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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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선생님의 축하메시지 낭독에 이어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학생들의 큰 절과 제자들을 다음세대 주역으로 인정한다는 선생님들의 인사가 이어진다. 이후 여주중학교 공동체가 반드시 행복해지길 기원하며 상호간에 큰 절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는 모든 구성원이 목이 터져라 '여주중! 파이팅!'을 외치며 마무리된다. 그리고 내년 학생의 날을 기약한다. 특히 이날 행사엔 전혀 예상치 못한 이벤트가 펼쳐져 모두에게 감동을 줬다. 선생님들의 속을 많이 썩인 말썽꾸러기들이 조용히 행사장에 몰려와 선생님들께 '존경합니다'라며 큰 절을 올렸기 때문이다.

1년간 선생님들의 속을 많이 상하게 한 말썽꾸러기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행사장에 몰려와 넙죽 큰 절을 올리며 '존경합니다'를 표현하여 감동
▲ 말썽꾸러기들의 깜짝 이벤트 1년간 선생님들의 속을 많이 상하게 한 말썽꾸러기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행사장에 몰려와 넙죽 큰 절을 올리며 '존경합니다'를 표현하여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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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행복해야 교육도 발전해... 여주중의 실험은 계속 된다

여주중학교의 실험은 아직 미완성 단계다. 물론 결과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 학생 간의 폭력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남아 있다. 학생들의 욕설도 많이 줄기는 했지만 남아 있다. 선생님들에게 대들고 불손하게 하는 학생들도 여전히 있다. 등하굣길 교통은 아직도 불편하다. 낡은 건물도 여전하다.

지역 학부모들의 반응 역시 반신반의하며 지켜보는 수준이다. 2010년 경기도교육청에서 진행하는 혁신학교 사업에 신청서를 냈지만 탈락했고 올해 다시 신청서를 냈다.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상황. 다만 소중한 제자들과 지역의 상황을 놓고 볼 때 '변해야만 한다'는 교사들의 절박한 마음들이 여러 가지 변화를 이끌고 있다.

암 투병 학생을 위한 거리 모금 장면 - 모든 학생을 내 자식처럼 여겨 올 해 학교에 큰 힘이 되주고 계신다.
▲ 여주중학교의 학부모 샤프론 암 투병 학생을 위한 거리 모금 장면 - 모든 학생을 내 자식처럼 여겨 올 해 학교에 큰 힘이 되주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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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희망이 보인다. 낡고 뒤쳐진 여주중학교의 환경에 지자체부터 교육청까지 힘을 보태고 있다. 올해 들어 차츰차츰 싹이 올라오고 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학생들에게 힘이 돼주기 위한 우선 복지학교 선정, 과목중점형 교과교실제 학교, 낡은 건물을 대대적으로 바꾸기 위한 예산지원 확정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힘이 되는 것은 학부모들의 노력이다. '샤프론 봉사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학부모회는 '내 자식만 챙기는 학부모회'가 아니다. '샤프론 봉사대'는 여주중학생 모두를 자기 자식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주중학교는 또 다른 실험도 준비하고 있다. 기존의 획일적 수업방식을 탈피해 '배움의 공동체 방식'을 올해 처음으로 적용했다. 아직 만족스러운 단계는 아니나 학생들을 중심에 놓고 지식의 빈부격차를 없애는 소중한 실험이다. 돈뿐만 아니라 지식도 나눌 수 있음을 제자들이 몸으로 체험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또한 거칠고 폭력적이라는 선입견을 깨트리고 평화롭고 공감할 줄 아는 학생을 기르기 위해  '평화프로그램'과 '감수성 프로그램' 등을 실시하고 있다.

지역의 많은 이들은 말한다. "여주중학교가 행복해져야 여주지역 교육이 행복해진다"고. 여주중학교는 그래서 이런 실험을 포기할 수 없다. 결과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주중학교의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질 그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학생의 날 학교 행사기를 흔들며 '여주중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학생들과 그 뒤로 노력고개를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 여주중 파이팅을 외치는 학생들 학생의 날 학교 행사기를 흔들며 '여주중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학생들과 그 뒤로 노력고개를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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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여주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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