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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권이 나오고 난 뒤부터 좀처럼 10만원권 수표를 사용하는 일이 적어졌다. 하지만 '비상금으로 10만원 정도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평상시에 잘 쓰지 못하도록 10만원짜리 수표를 발행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1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잃어버린 것이 지난한 과정과 내 안의 '귀차니즘'을 불러올 줄은 말이다.

지난 8월 16일, 나는 경기도 안성의 한 관공서를 방문했다가 지갑을 분실했다. 분명히 뒷주머니에 넣어놨는데 아무래도 지갑을 흘린 듯했다. 새로 선물받은 값비싼 가죽지갑. 전날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일명 '카드깡'(회비를 걷어서 현금은 갖고, 포인트 쌓기 위해 카드로 결제하는 것)을 한 후라 현금도 30만원 가량 들어있던 두둑한 지갑이었다. 게다가 각종 신분증과 신용카드까지…. 지갑을 잃어버린 것을 알고 난 뒤 나는 약 10분간 패닉 상태에 빠져 버렸다.

8월 땡볕 아래 지나왔던 길들을 비지땀 흘려가며 샅샅이 뒤져봤지만 결국 포기했다. "아이고. 주은 사람은 땡 잡았겠구나…"라며 체념하다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내 비상금 10만원짜리 수표라도 찾아야 겠다!'

은행에 가서 신고만 하면 될 줄 알았던 수표 분실신고의 길고 짜증나는 여정은 그렇게 시작됐다. 수표를 발행한 은행에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니 '관록'이 있는 직원분만 그 절차를 알고 있었다. 그 직원의 설명에 따라 통장에 기재된 수표번호를 적은 후 분실신고서를 작성했다.

솔직히 거기서 끝일 줄 알았다. 만약 그 후 절차를 미리 알았다면 과감히 수표를 포기했을 것이다. 이어지는 '작업'은 삼복 더위보다 더한 짜증을 불러 일으켰다. 우선 은행은 분실신고를 접수받고 보증금 3만원을 요구했다. 이 보증금은 향후 소송을 위한 것으로 소송 당사자가 되는 은행이 승소할 경우 신고자에게 돌려준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가야할 곳은 비단 은행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경찰서와 지방법원도 가야했다. 각각의 장소에서 접수해야할 것이 있다고 했다. 먼저 나는 안성 경찰서 생활질서계를 찾아 분실신고를 했다. 경찰서에서는 이러저러한 분실사유와 내용물 등을 확인한 후 '분실신고 증명원'을 발급해 줬다. 이 분실신고 증명원을 갖고 가야 할 곳은 평택지방법원. '공시최고신청'을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공시최고신청이란 '특정한 권리를 잃은 자가 법원으로 하여금 공고를 통해 이해관계인에게 청구나 권리신고를 독촉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됐다. 경찰서 역시 시내와 떨어져 있는 곳에 있어 부득이하게 차를 타고 가야하는 곳이지만 지방법원은 안성도 아닌 평택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평택 외곽 있어 버스를 타고 가기에도 참 불편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것 끝까지 가보기로 결심을 하고 법원에 꾸역꾸역 찾아갔다.

나는 법원에서 은행으로부터 분실신고 시 발급받은 '미지급증명서'와 경찰서에서 발급받은 '분실신고 증명원'을 제출했고 '공시최고신청'이란 것을 진행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여기서 또 하나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바로 송달료와 인지대 값 약 2만원.

은행에 낸 보증금 3만원은 나중에 돌려받는 것이지만 법원 송달료는 남은 금액만 받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 2만원 전부를 받지 못 할 수도 있다는 것. 이것 저것 물어보니 몇 천원 손에 떨어진단다. "아이고! 10만원짜리 수표 한 장 찾으려다 시간만 낭비하고….  이러다가 절반 밖에 못 찾는 거 아냐?"라고 되뇌며 피어오른 나의 짜증!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짜증이 나있던 나를 K.O 시키는 지방법원 직원의 한 마디.

"신청은 완료되었구요. 나중에 재판에 출석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상이 없으면 2~3개월안에 판결문 나갈 것이고요. 그 판결문을 은행에 제출하시면 됩니다."

내 입술 끝에는 어이없는 웃음만 흘러 나왔다. 10만원짜리 수표 한 장 찾기 위해 하루를 통째로 소비한 것도 모자라 돈은 잃어버린 금액의 절반인 5만원씩이나 썼다. 게다가 나중에 법원에 출두해 재판까지 받아야 한다니…. 나는 '기자라는 직업을 10년 넘게 했던 놈이 왜 이런 지난하고 짜증나는 수표분실 신고 과정을 몰랐을까?'라며 스스로를 책망했다. 10만원짜리 수표를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10만원이 적은 돈이라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10만원은 내 한 달 용돈의 1/3이나 되는 큰 돈이다).

몇 백만원, 몇 천만원짜리 고액 수표를 잃어버렸거나 혹은 10만원짜리 수표 서너장을 분실했다면 그대로 이런 과정을 밟아볼 만하다. 하지만 10만원짜리 수표 한 장을 되찾는 과정은 생각하면 할 수록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만약 다시 분실신고를 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내 대답은 "글쎄요…"일 것이다. 그만큼 복잡하고 인내심이 요구되는 과정이란 이야기다.

8월 중순에 잃어버린 수표 한 장. 이 수표는 12월이 되고 나서야 돌아올 것 같다. 오는 11월 29일이 재판날이기 때문이다. 재판을 받고 며칠을 기다리면 판결문이 나올 것이고, 나는 이 판결문을 들고 은행에 가면 된다. 그렇게 하면 이 기나긴 여정이 끝나는 것이다.

어차피 5만원권도 나온 마당에 10만원짜리 수표, 아니 총액 30만원 이하 수표의 분실신고 과정을 좀 더 단순하게 바꾸자는 법률개정은 어떨까. 만약 내년 총선에 이러한 공약을 내거는 정당이나 후보가 있다면 나의 뜨거운 한 표와 우리 식구들의 따뜻한 표를 몰아 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자치안성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수표분실#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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