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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밴쿠버의 겨울 비는 유명하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지난 겨울, 친한 아줌마들과 캐나다 에서 유일한 한국형 찜질방엘 갔다. 점심으로 미역국을 시켜먹으며 '도대체 이렇게 맛없는 미역국 레시피 좀 보자'고 항의하고 싶어지던 무(無)맛의 미역국을 먹고 돌아와 곰솥으로 하나 가득 미역국을 끓였다. 남편과 둘이서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던 사흘째 저녁, 식탁에 올려 진 미역국을 흘깃 보던 남편이 "젖..." 어쩌고 한 것 같은데 외국생활 10년 가까이 되면서 영어도 안 되고 이제 한국 말도 못 알아듣나 보다 해서 되물었다.

"뭐라고 했어?"
"젖 날 것 같다고."
"어디서?"
"젖이 젖에서 나오지 어디서 나와?"
"젖?"(이해하지 못하고)
"응, 산모 젖내는 미역국을 너무 많이 먹었더니 나 젖 날 것 같아..."

그제서야 알아 듣고 눈물이 찔끔 나도록 웃었다. 듣기에 따라서 유머도, 아무 것도 아닌 말이지만 남편의 이런 자잘한 유머가 연봉 1억 원보다 커 보일 때가 있다. 어쩌면 연봉은 아내인 나의 능력 밖의 사안이므로 협상도 조절도 불가능한 대상이라는 현실적인 포기 일 수도 있지 않을까 스스로 짚어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시 신혼시절로 돌아가라면 No Thanks!

누군가 한 사람의 실수나 행동, 습관 등이 제물로 바쳐져서 탄생하는 우리 부부의 유머는 대체로 아내인 내가 제공하고 남편이 사용자로 위치가 정해진 편이다. 자칫 내 자존심의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오르내리며 경계선을 넘나들 때도 있지만 아직까지 그것을 문제로 싸운 적은 없다. 오히려 그 재미가 주는 즐거움의 요소가 더 크기 때문에 다툼의 횟수가 줄어 드는 걸 느낀다.

신혼 시절에는 사랑하는 감정만 전부라 생각했던 듯하다. 그래서 그 한 가지에 기꺼이 목숨을 걸면 무조건 행복해 질 거라고 믿었던 탓에, 그 부분에 조금만 소홀함을 느끼면 우리 사이의 전부를 잃은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잘못 된 결혼' '맞지 않는 성격이 아닐까' 의심하며 억울한 마음으로 결혼 자체를 후회하곤 했다.

그렇게 잠깐씩 스치듯 지나가는 행복조차 즐길 마음의 여유와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던 그 시절, 사람들에게 "신혼인데 깨가 쏟아지겠네"하는 인사를 들을 때마다, 도대체 신혼의 어떤 면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걸까 궁금했다.

섹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밖에 없었다. 남편은 연애시절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착한 사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착한 사람, 좋은 남자라면 결혼전 내 믿음을 지켜주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내 말이 떨이지기 무섭게 실행해 주고, 입안의 혀처럼 부드러워야 하고, 내 눈빛만 보고도 내 마음을 읽어 줄 수 있어야 하며 24시간 서로 추적이 가능해야 하는데, 하루 종일 전화 통화 한 번 하지 않고도 태연히 집에 와서 미안하다는 말 한 번 하지 않는 뻔뻔함에 절망하고 있는 내게, 그런 인사는 더 스트레스였다.

나는 늘 꿈꾸던 결혼 생활과 너무나 다른 세상에서 날마다 속이 상해 죽을 지경으로, 하루라도 빨리 이 삶을 포기하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갈등하기도 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결혼한 여자는 이런 내 마음을 친정 엄마, 형제, 친구, 후배... 어디에도 하소연 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에 더 절망해야 했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내가 꿈꾸던 결혼생활은 말 그대로 '환상'을 너머 '이순신 장군이 UFO를 타고 해적을 무찔렀다'는 공상영화 같은 거였지 않았나 싶다. 내가 꿈꾸던 결혼은 이랬다.

이를 테면 아침 저녁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여 주는 남편, 이때 둘이 속삭이는 게 아니라 '속삭여 주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편이 해 주어야 하는 절대 조건 가운데 하나로, 나는 피동적으로 받을 생각만 했다. 아침이면 잠든 내 이마에 뽀뽀해 준 그가 모닝 커피를 곁들인 아침 식사를 차려 놓고 '짜잔' 놀라게 해 주는 이벤트를 수시로 해서 감동을 준다든지, 하루에 몇 번씩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는 말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그에 대한 화답으로 남편을 향한 내 각오도 남달랐다.

속옷까지 주름살 하나 없도록 다림질해서 아침마다 내가 골라 준 옷을 코디네이션 한 모습으로 근사하게 출근하는 그의 뒷모습을 상상하며, 남편이 운전하는 곁에서 코를 골며 잠이 드는 천박함은 결코 하지 않을 것과 아침이면 먼저 일어나 단정하게 머릴 묶어 평생동안 헝클어진 머리로 '전봉준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며, 뱃살이 늘어나 고무줄 바지를 입는 일은 하늘이 두쪽나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나는, 나만은 그렇게 살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결혼을 앞 둔 여자들이 한 번 쯤 그러 하듯, 결혼 일주일 전까지 부지런히 여성지에 실린 요리 레시피를 오려서 파일에 모아두고, 미용실에서 원장 몰래 남성잡지에 실린 남자모델들의 옷 잘 입는 법을 찢어 핸드백에 감춰오는 도둑질까지 저지르며.... 그런 날이 있었다.

환상은 깨어질 때 비로소 환상임을 안다고 했던가. 신혼 여행지에서부터 하나 둘 결혼은 그 베일을 벗기 시작했고, 신혼시절은 그야말로  전쟁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행복감을 앞질렀다. 

부부는 정 반대 방향을 바라보며 가끔씩 눈을 맞추는 것

결혼 15년 차가 되어 서로에게 주저할 일도, 하지 못할 말도 없는 지금 그때 이야기를 꺼내면, 검은 머리 파뿌리되도록 한 방향을 바라보며 사는 게 부부라는 주례사 앞에 망설임 없이 "네, 네" 하고 대답했던 우리의 시선이, 사실은 서로 정 반대의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그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남편은 결혼하고도 엄마가 해 주던 메뉴, 김치에 된장국, 고추조림, 고등어 구이, 감자볶음, 구운 김…. 같은 반찬이 올라올 때 급실망을 했단다. 결혼하면 아내가 요리책에 나온 메뉴처럼 근사하게 차린 메뉴를 차려 놓고, 뽀사시한 미소를 띄며 남편을 깨우거나 맞이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했었다는 때늦은 고백을 한다. 이런 이야기 하는 걸 보면 "꽤 많이 살았다"는 결론에 도달한 우리는, 두 사람 모두 막내로 자라 세상 물정을 몰랐거나 연애 기간 동안 서로에게 너무 환상을 심어준 자업자득이었다며 웃는다.

만약 하나님이 딱 번의 기회를 줄테니 다시 신혼으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나는 단호히 거부하겠다. 스치듯 느꼈던 사랑보다 생활하면서 사소한 모든 것에서 부딪치며 힘들었던 기억이 더 크기 때문이다. 더는 환상도 기대치도 없지만 사랑의 눈속임에 흔들리며 사는 것 보다, 남편을 만져도 내 살 같은 지금의 편안함이 나는 훨씬 좋다.

그래서 나는 흔히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배기'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 정말 부부 싸움은 흔적이 남지 않는 걸까? 만약 칼날이 날카롭고, 칼 자루를 쥔 손의 힘이 강하거나 날이 무딘 칼이라도 반복해서 내려 친다면 어떻게 될까. 물이 담긴 그릇이 반토막 날 수도 있고 스테인리스 그릇이라면 바닥에 칼 자욱이 남을 수도 있겠고, 유리라면 박살이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어쩌면 그릇이 흔들려 물이 쏟아질 수도 있겠다. 설사 기술적인 감각으로 물리적인 파손 없이 물만 밴다 해도 자주 내려친다면 칼이 지나간 자리에 생긴 기포나 공기 마찰에 의해 산화된 물의 수질이 변할 수도 있다. (수질은 서로의 마음을 의미한다.)  

얼마 전부터 30~40대 주부들의 한 온라인 사이트에 '행복을 충전해 드립니다'라는 타이틀로 매너리즘에 빠진 부부의 감성 회복을 위한 자전에세이 형식의 짧은 글을 쓰고 있다. '눈이 마주치면 미소 짓기'라던가 남편의 회사 주차장이나 퇴근 길목에 숨어 있다가 우연히 만난 것처럼 '깜짝 데이트를 시도해보자'는 등 돈 들이지 않고 마음만 있으면 가능한 짧은 에피소드다. 이를 읽은 주부들로부터 나는 가끔 같은 질문을 받는다. 

"정말 남편과 그렇게 살아요?"
남편을 많이 사랑하시나 봐요?"
"남편이 다정다감한가 봐요?"

작고 큰 차이는 있겠지만 결혼 2년째 되던 즈음부터 내 대답은 한 가지다.

"이 놈이나 저 놈이나 살아보면 다 같아유~"

처녀시절부터 20년 지기인 후배는 최근에 미안한 표정으로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언니, 나는 형부가 재미있다고 할 때마다 안 믿어졌었어. 언니가 형부를 훨씬 더 좋아하는 걸로 보였거든."
"그런데?"
"요즘 가까이서 지켜보니까 형부가 언니를 더 많이 좋아한다는 걸 발견했어."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
"말투에서 느꼈지…. 형부가 언니한테 날리는 멘트가 닭살이잖아."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더 좋아하는 것에서 남편이 나를 더 좋아하는 것'으로 후배가 마음을 홀랑 뒤집은 계기가 웃긴다. 부드러운 말투로 날리는 '닭살 멘트' 란다. 연애기간 2년에 결혼 15년 된 오래 묵은(?) 신부를 그 남편이 사랑한다면 '약발'이 얼마나 남아 있을 것이며, 닭살스러워 봤자 닭이지 삶은 계란흰자처럼 매끄러울 수 없다는 걸 40대 싱글인 후배가 알기나 하고 내린 결론인지 궁금했다. 게다가 그 '닭살 멘트'의 주인은 상대가 말을 끊고 대답을 시키지 않으면 몇 시간이라도 남의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지루한 기색 없이, 말 하기보다 듣는 일에 더 재주가 많은 사람이란 점이다.

그러다 드물게 한 마디 하면 사람들이 배꼽을 잡긴 하지만, 부부가 아닌 객관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유머도 뭐도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는 말에 반향이 큰 것은 '이 없는 사람'이 가져오는 반전 같은 거다. 원래 재치와 유머 감각이 풍부한 사람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 보다, 말이 없는 사람이 어쩌다 던지는 한 마디는 사람들에게 빨려 드는 것처럼 흡수되며 웃음보를 '빵' 터지게 하는 것이다.

최진실이 누구냐고 묻던 사람

여기서 대한민국 40대 평민, 우리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서 약간의 배경설명이 필요할 듯 하다. 직업은 교사, 일단 그는 말이 많지 않다. 아니, 말재주가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게다가 시어머니께서 "제 털 뽑아 제 구멍에 꽂을 사람"이라던 아버님을 쏙 빼닮은 성격은, 좋게 말하면 '정확한 사람'이고 나쁘게 말하면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다. 어릴 때 어머님이 간식과 장난감, 동화책을 주면서 "여기서 놀고 있어" 하고 복숭아 나무 그늘에 앉혀 놓고 일을 하시면 저녁나절까지 정해 준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놀던 '착한 아들이었노라'는 증언만으로도 어떤 사람인지 대충 감을 잡았으리라.          

보통은 말수가 적고 조용한 사람일수록 접대용 발언에 서툴고, 남들 앞에서 아내에게 말을 거는 것을 특히 불편해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할 말은 아끼고, 하지 않아야 할 말은 입을 봉쇄하는 남편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말 주변이 있는 것도 아니고, 탤런트 최진실이 사망한 뒤 "최진실이 누구야?"고 묻던 사람이니 방송이나 훈련을 통한 후천적인 유머 개발은 더더욱 불가능한 사람이다. 

말 수가 없는 건 부부싸움을 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혈질인 나는 화가 날수록 상대를 집어 삼킬 듯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되는 반면, 일상적인 어휘로 강약조절도 없이 평서문 형태의 어조로 폭탄 같은 내 말 사이를 가만 가만 들락거리는 몇 마디로는 싸움 다운 싸움이 되질 않는다.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처럼 폭발 직전이 된 나는, 평소에도 말투나 표정으로 알아내기 힘든 그의 속내를 감정이 극도로 흥분된 상태에서는 더욱 파악하기 어렵다. 도대체 어떤 요구가 가장 중요한지 알 길이 없다. 이럴 땐 얼른 냉수를 마시고 정신을 차리든가 뜀박질을 해서 화를 배출 하며 내 스스로 가라앉힐 수밖에 없다.
               
사랑은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덜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게 되어 있고, 싸움은 성질 급한 사람이 덜 급한 사람에게 지는 법이다. 이런 싸움을 치르다 보면 외형상 목소리 큰 내가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비춰지지만 내막은 단 한 번도 나는 이겨보지 못했다. 그의 언변에 지는 것이 아니라 웅변보다 강한 무기, 침묵에 지는 것이다.

교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았을지 염려되는 사람의 말이, 십 수년 고정되어 있던 후배의 생각을 바꾼 것처럼 평소에 나를 수시로 웃게 만든다고 말하면 듣는 사람들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하며 바라본다.   

"엄청 남편을 좋아하나 보다."
"콩깍지가 언제 벗겨지려나…."

그의 형제들조차 집밖에서 그가 드문 드문 던지는 말에 사람들의 웃음이 작렬한다는 말을 믿기 어려운 눈치다. 친정도 예외가 아니다. '착한 김서방, 성실한 김서방'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아무런 이의가 없으면서도 '재미 있는 김서방'에는 결코 동의하려는 사람이 없다. 후하게 봐 준다면 살짝 포장한 '남편 자랑' 쯤으로 여기는 것. 평소 가족들 앞에서 보여주는 그의 성격과 이미지로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는 걸 이해는 하지만, 비디오로 찍어서 보여줄 수도 없고 증명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짧은 한 마디로 상황을 반전시키며 웃음을 '빵' 터지게 만드는, 이유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내가 내린 결론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그의 재주라기보다, 아내를 위한 유머 사용에 인색한 우리나라 부부 대화법이 가져 다 준 어부지리격의 수혜자라는 사실이다.

덧붙이는 글 | 글을 2회로 나눕니다.



태그:#행복한 결혼생활, #남편의 유머, #부부관계 , #부부 대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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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그리고 춘천을 오가며 서식하고 있습니다. 호기심과 열정을 뿜어내는 에너지 넘치는 삶의 이야기로 읽는 이들 모두가 더 가까워지고 모두가 행복한 이야기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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