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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물 쓰레기 한 봉지요~ 오랜만에 소담스럽게 담긴 음식물 쓰레기. 나도 준법시민이 되고 싶지만 여름철 창궐하는 날벌레는 나를 어둠의 길로 인도한다.
 음식물 쓰레기 한 봉지요~ 오랜만에 소담스럽게 담긴 음식물 쓰레기. 나도 준법시민이 되고 싶지만 여름철 창궐하는 날벌레는 나를 어둠의 길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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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1시 반. 주먹크기의 검은 봉지를 든 나는 조심조심 현관문을 닫고 골목 어귀 흑돼지집 앞을 살핀다. 오늘은 장사가 안됐는지 일찍 문을 닫아 '목표물'로 가는 길은 어두웠다.

회심의 미소가 지어지며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순 없다. 검은 봉지 속 녀석들을 목표물인 '○○구청 공용 쓰레기통'에 던져 넣는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 말이다.

투척 성공 후에는 반드시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나의 행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시선을 살짝 위로 들어 새로 설치된 CCTV가 없는지 살펴주는 다소 오버스러운 섬세함을 발휘한 후 뒤돌아 집으로 돌아온다.

혹시 나를 바라보는 듯한 주민의 존재가 느껴질 땐 옆골목으로 잠시 은신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센스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여름이 오면 악취와 육즙의 좀비로 변신하는 우리집 '음식물 쓰레기'에 대처하는 새롭고 음침한 동선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냉장고에? 그것만은 못하겠어"

1~2인 가족이라 음식물 쓰레기양이 매우 적고,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구입해 사용해야 하는 형태의 단독주택 거주자들은 여름마다 음식물 쓰레기라는 골칫덩어리와 마주하게 된다.

나는 작년까지 5년 동안 1인 가족으로 살았다. 그때는 음식물 쓰레기를 냉장고 냉동실에 넣어 해결했다. 그 결과 녀석을 노란 봉투로 깨끗하게 처리할 수는 있었지만 냉동실 아이스크림의 향과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 것을 감내해야 했다. 나름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게 되는 다이어트 효과를 부르기도 하는 등 나쁘지 않았다.

올 봄부터는 P선배의 남는 방에 '하우스 쉐어' 형태로 동거하게 됐다. 얼마 전 굳은 표정의 P선배가 가족회의를 요청해 왔다. 내용인즉슨, P선배가 끔찍스런 날벌레의 습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음식물 쓰레기를 모으는 전용 노란봉투를 싱크대 앞 창틀에 둔다. 쓰레기 냄새를 줄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는데 더운 여름이라 쓰레기 봉투에 날벌레가 꼬인 모양이었다. 좀비 날벌레떼의 습격을 받은 선배의 낯빛이 창백한 걸 보니 문제가 심각했다.

 냉장고에 음식물 쓰레기 보관하기. 생각보다 깔끔하고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는, 1인 가구를 위한 최상의 방법이다. 강추!
 냉장고에 음식물 쓰레기 보관하기. 생각보다 깔끔하고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되는, 1인 가구를 위한 최상의 방법이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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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 쓰레기를 냉장고에 넣자고? 그것만은 정말 못하겠어."

나는 작년까지 해오던 것처럼 냉동실에 넣자고 의견을 냈지만 P선배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냉동실에 음식물 쓰레기를 넣는다는 건 앞으로 함께 살게 될 날들에 어둠의 그림자를 내 손으로 까는, 어리석은 짓인 게 틀림없어 보였다. 더구나 나는 P선배에게 시세보다 싸게 '얹혀' 사는 존재가 아닌가.

띵똥! '공정'한 회의 결과, 매일 조금씩 나오는 우리집 음식물 쓰레기가 응당 있어야 할 곳이 결정됐다. 바로 흑돼지집과 주민센터 사이에 믿음직하게 서있는 '○○구청 공용 쓰레기통'이었다. 물론 구청에서 인정한 당당한 노란 봉투가 아니라 음침한 검은 봉지에 담겨서 말이다. 물론 큰덩어리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는 노란 봉투에 담아 배출하고 말이다. 사실 난 이런 비양심적인 처리보다는 냉동실 공정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입자 신분이니 주인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여름엔 노란봉투 비용이 아깝다."

수시로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할 수 있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 1인 가구이거나 1인 가구처럼 쓰레기 배출량이 미미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노란봉투 비용은 아까우나, 봉투가 가득 차길 기다리다 봉투 속에 찬란히 펼쳐져 있는 날벌레의 탱글탱글한 자손들을 지긋하게 바라보기는 어렵다. 또 성공적으로 탄생해 걸음마를 하고 있는 굼벵이들의 유연한 몸짓을 함께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로 존중할 수 있는 능력자들은 더더욱 아니다.

잠시라도 그 존재를 잊으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좀비떼 '날벌레'들과 그 외의 벌레 유충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날벌레와 새로운 벌레 세계를 창조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음식물 쓰레기는 바퀴벌레만큼이나 무서운 대상으로 진화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 무서움으로 따지자면 하루에 한 두 차례 흑돼지집을 오가는 번거로움은 비교할 바가 아니다.

변기에 넣을 수도 없고... 나에게 지렁이 키울 땅을 달라

혹자는 음식물 쓰레기가 생기지 않는 음식만 골라 먹는 신개념 식습관에 적응한다거나 변기 투척, 음식물 쓰레기를 말리는 제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또 흔치 않은 경우지만 베란다에 고상한 말로 '환경정화곤충', 지렁이를 사육해 지렁이 밥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나는 지렁이도 그다지 무섭지 않다. 나에게 텃밭이 있었다면 분명 묻었을 것이다. 지렁이님 100분께서는 3일 만에 5kg의 음식물 쓰레기를 해결해 주신다던데... 하지만 난 텃밭도 베란다도 다용도실도 없는 자그마한 주택에 '얹혀' 사는 사람이다. 적지 않은 관리비 부담이 피부로 와닿지 않아서 일 수도 있겠으나 아파트 주민이 '완전' 부러울 때가 바로 여름이다.

한때 나 역시 음식물 쓰레기를 말려주는 제품을 구입해 사용하고 이 제품의 전도사가 되어 동생네, 부모님댁에 놓아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 양념을 사용하는 한식을 견디지 못한 필터가 음식물 쓰레기의 악취를 온 집안에 골고루 살포하기 십상이었다. 물론 필터 관리를 잘했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겠고, 개인의 게으름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말이 없는 검은 숯 알갱이 필터의 한계와 상태를 가늠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고, 나에게만 어려운 일이라고는 여겨지지는 않았다.

간혹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모이는 날이면 떳떳하게 노오란 봉지에 담아 골목 어귀에 놓인 음식물 쓰레기통을 열어 보기도 한다. 그 속에서 양심 불량자들이 노란색이 아닌 검은 혹은 투명한 봉지에 담아 넣은 음식물 쓰레기를 발견하면 작은 분노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집 검은 봉지의 음침한 경로가 떠오르며 곧 그 마음이 수그러들고 동지애가 생겨난다. 지구와 환경보다는 당장 눈앞의 불편함과 위생 현실로 인한 굴복이랄까. 양심은 있지만 이렇게 살고 있다.

1인 가족 위한 음식물 쓰레기 수거 방법은 없을까

 1인 가족에겐 터무니없이 부피가 큰 농산물들. 열심히 먹어 치우려고 노력하지만 음식물 쓰레기 신세가 되는 걸 막기란 쉽지 않다.
 1인 가족에겐 터무니없이 부피가 큰 농산물들. 열심히 먹어 치우려고 노력하지만 음식물 쓰레기 신세가 되는 걸 막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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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에서 보니 미국인들은 싱크대에 물과 함께 음식물 쓰레기를 던져 주기만 하면 싱크 아래에 위치한 '디스포저(분쇄기)'가 갈아서 물로 흘려보내 주더라. 이 께름칙한 물은 음식물종말처리장으로 보내져 한꺼번에 하수정화처리를 거친다고 한다. 수질오염에 대한 의문이 들긴 하지만 집안은 깔끔할 것 같다.

독일에는 '쓰레기 상담소'가 있단다. 되도록 음식물을 남기지 않는 전략을 구사하며 어쩔수 없는 경우 집앞 화단을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필터 관리는 어찌하시는지 모르겠으나 일본도 음식물 쓰레기 건조기가 대중화되어 있어서 주로 말려서 내놓는다 하고.

여름만이라도 동네에서 돈을 걷어서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연연하지 않고 넣을 수 있게 하면 살 것 같은데 어떻게 안될까? 음식물 쓰레기의 80% 가량이 수분이라던데, 운반비용 절감을 목표로 동네별로 모으는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에 건조 기능을 달아주면 좋겠다. 바라는 게 많은 것 같긴 한데...

2013년부터 바다를 보호하자는 의미로 음식물 쓰레기 침출수를 해수에 흘려보내선 안 된다는 '런던협약'이 체결됐다고 한다. 제대로 못하는 나라들을 단속하려는 협약이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잘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물 건너 견학도 온다던데, 1인 가족이 20% 가량인 우리나라, 여름 음식물 쓰레기처리에 대해선 좀더 현명한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루를 마감하는 서스펜스의 시간이 사라지면 내 삶의 질도 높아질 것 같다.


#음식물 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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