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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정문.
 서울대학교 정문.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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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현재 서울대학교 석사과정 학생입니다. 전공을 더 깊게 공부해보겠다는 벅찬 꿈을 안고 대학원에 입학했죠. 2년동안 현장에서 일하면서 월급으로 등록금을 모아, 제가 더 하는 공부 때문에 허리가 끊어지실 부모님 조금이라도 돕겠다고 공부도 잠깐 접었었고, 용돈벌이라도 하고자 교수님 RA(연구조교)를 하면서 한 학기 수업료를 장학금으로 받고 한달에 30만 원씩 근로장학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서 공부를 끝내고 좋은 곳에서 일하면서 정착하기를 부모님께서도 바라고 계셨고 저도 바라고 있었습니다.

5월 말, 6월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벌써 1년의 반이 지났구나, 하면서 감상에 잠기다가도 기말의 압박들도 다가오기 시작하고 여기 저기 제출해야 하는 과제들과 연구계획서들로 6월 한달 달력이 빼곡히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중순까지 나의 영혼은 없겠구나 낙담하면서 그렇게 6월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2일에 분명히 들어와야할 월정장학금이 안 들어왔습니다. 분명히 5월에는 2일에 정확히 들어왔었는데 말입니다. 관리비와 공과금도 내야 하고 나름 전공의 뜻을 높여 후원하고 있는 두 명의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정기후원금도 보내야 하고 결제해야할 교통카드비도 꽤 있는데 돈이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내야할 것들이 일단 쌓여있기에 염치불구하고 부모님께 용돈을 타내어 우선 급한 불을 껐고 어제 오늘 하루종일 은행계좌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선배의 페이스북에서 이상한 글을 보았습니다. '대학본부에서 근로장학금, 연구원 인건비, 청소 및 기타용역비를 지급거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 그런 일이?'하면서 언니가 올린 사진을 보는데 떡하니 우리학교 마크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의 본부점거를 이유로 일련의 급여지급을 중단한 본부에게 근로장학생들이 보내는 자보다.
▲ 본부에 보내는 글 학생들의 본부점거를 이유로 일련의 급여지급을 중단한 본부에게 근로장학생들이 보내는 자보다.
ⓒ http://twitpic.com/565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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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마음으로 저의 메일을 켰습니다. 학교포털 메일엔 '  본부 점거로 인한 행정 업무 중단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라는 제목으로 메일이 하나 와 있었습니다.

본부점거로 업무를 볼 수 없다며 메일을 보내왔다.
▲ 본부에서 온 메일 본부점거로 업무를 볼 수 없다며 메일을 보내왔다.
ⓒ 은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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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느꼈습니다. '우리를 인질로 쓰려는구나. 하다하다 안 돼 건물을 점거해 우리 의견을 피력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기어이 몰고 가려는구나. 이간질을 시키려 하는구나'

용돈벌이 하고자 했던 학생들. 부모님께 편히 용돈 쓰는 대신에 조금이라도 자신의 힘으로 용돈을 충당하고자 했던 학생들과 적은 급여로도 학생들을 가르치시느라 애쓰시는 시간강사님들, 학교 안에서 묵묵히 학생들을 위해 힘써주시는 우리 어머님, 아버님들. 기어이 이 사람들이 목을 잡고 흔들며 학생들을 내쫓기 위한 발악을 하고 있습니다.

학교는 졸렬한 방법을 써가며 이 상황을 어물쩡 마무리지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온통 미디어에 본부 총장 방문만이 기사거리로 쇄도하는 것을 보며 저 작은 자보가 더 아프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지금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저 본부가 얼마나 우리들의 목을 잡고 본부의 학생들에게 흔들어보이고 학생들 사이를 이간질시키려고 할 지 예상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물러서는 건 안 될 것 같습니다. 오히려 하루 빨리라도 우리의 뜻을 관철시켜서 이런 치사하고 유치한 방법을 쓰지 못하도록 해야합니다.

내일 저는 학교 본부에 갈 겁니다. 용돈이요? 조금 참아야겠죠. 주말 아르바이트라도 일단 구해야겠습니다. 아직 20대이니 헤쳐나갈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본부에서 유쾌하고 뜨겁게 투쟁하고 있을 학우들에게 내 뜻도 담아주러 가야 하겠습니다.


태그:#서울대, #본부점거, #근로장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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