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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UAE 원전 수출 계약을 기점으로 한국에 원전 르네상스 바람이 불고 있다. 덩달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2022년까지 신고리 6호기, 신울진 4호기, 신월성 2호기 등 총 12기의 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한수원은 여기에 오는 2012년까지 추가 원전부지 2곳을 선정하기 위해 지난 7월부터 전국 10여 곳의 지자체와 물밑 접촉을 해왔다. 그러다가 원전 건설에 소극적인 지역을 제외하고 최근에 다시 전남의 해남과 고흥, 그리고 강원도 삼척과 경북 영덕 등 4곳을 신규 원전 후보지로 정리하였다. 해당되는 지자체에서 군의회 동의를 받아 유치신청서를 접수하면 그에 대한 심사를 하여 내년 2월 말까지 최종 결정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해당 지역 주민들은 철저히 배제되어 왔다. 한수원이나 해당 지자체는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주민의 목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모든 과정을 줄곧 비밀스럽게 진행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시설이라 할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데도 정작 그 위험을 감수하게 될 해당 주민들의 처지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원전 건립을 추진하는 주체들은 그저 원자력이 안전한 에너지라는 선전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의 말대로 원자력은 진짜 안전한 미래 에너지일까?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궤변

우리는 석탄이나 석유, 천연가스에 '평화적 이용'이라는 말을 붙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유독 원자력에만 '평화적 이용'이라는 말을 붙인다. 원자력이 그만큼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반증하는 표현이다. 그렇다. 잘 알다시피 원자력은 본래 살상무기용으로 개발되었다. 그리고 2차 대전 말미에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두 덩어리가 투하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2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살상자를 낸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원자폭탄을 개발한 미국의 과학자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탄식을 했다.

"도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야..."

인류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그들은 속죄의 의미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화두에 집착하며 발전용 원자로 개발에 착수했다. 그리하여 1954년에는 옛 소련의 오브닌스크 원전이, 또 1956년에는 영국에서 콜더홀 원전이 가동되면서 세계적으로 원전 건설 바람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1973년 제 1차 석유 파동을 겪으며 석유 에너지 위기를 실감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원전 건설이 러시를 이루었다. 석유 없는 세상이 불러일으키는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인류는 '원자력'이라는 재앙의 물질을 일상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크고 작은 재앙의 징후는 곧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고는 미국 북동부 펜실베이니아 주의 수도 해리스버그에서 약 10마일 떨어진 쓰리마일 섬 원전에서 일어났다. 1979년 3월 28일 새벽, 이 섬에 가동 중이던 원자력발전소에서 감압밸브가 고장이 났고, 거기에 운전원의 안전장치 작동 미숙이 더해져 방사성 핵분열 생성물이 격납 용기 안으로 흘러나오게 된 것이다. 다행히 원자로 5중 차폐시설 덕분에 건물 밖으로 유출된 방사능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사고가 알려지면서 주민들 사이에 공포감이 확산되어 반경 8킬로미터 이내의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쓰리마일 섬 원전 사고는 사람과 환경에 직접 큰 피해를 준 것은 아니었지만, 인근 주민들은 상당 기간 동안 정신적인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 사고를 겪으면서 세계 원자력계는 국제협력을 강화하고 비슷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 간에 정보 및 자료 교환을 하기로 했다. 또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사고 후 안전성 향상을 위한 조치 사항을 만들어 미국 내 원전에 적용토록 했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 권고사항을 받아들여 원전의 보완과 신규 원전의 설계 및 건설에 반영하였다. 더불어 원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고에 대한 이상한 해석이 불거져 나왔다.

'원전 설계에서 중요한 냉각재 상실사고에도 불구하고 안전장치와 방사선 차폐시설로 인해 피해가 크지 않았다는 점에서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는 오히려 원전의 안전성을 입증시켜준 사례다.'

그들의 말대로 원전은 과연 안전한 것이었을까? 하지만 그로부터 7년 뒤에 초대형 원전 사고가 옛 소련에서 터져 나오면서 그들의 해석은 역설적 궤변이 되고 말았다.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교훈

1986년 4월 말경, 스웨덴 과학자들 사이에 비상이 걸렸다. 대기에서 평소보다 높은 농도의 방사능을 감지된 것이다.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 그들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역으로 추적을 해나갔다. 그 결과 옛 소련의 한 지역에서 엄청난 양의 방사능이 누출된 것을 확인했다. 비로소 유럽을 비롯한 인접 국가들은 소련을 추궁했고, 소련은 체르노빌 원전에서 사고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사고 발생 후 2주일이나 지난 뒤였다.

사고는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경에 일어났다. 옛 소련의 한 도시 체르노빌 원전에서 출력을 낮추는 실험을 하던 도중에 운전원의 실수로 원자로 출력이 순간적으로 치솟았고, 뜨거운 핵연료와 물이 만나 수증기가 폭발해버린 것이다. 그 사고로 원자로를 둘러싼 건물 지붕이 날아가 버렸다. 곧이어 불길이 번지고, 방사성 파편과 감속용 흑연 조각, 콘크리트 먼지 등이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었다.

소련 정부는 수천 톤의 모래와 납을 끼얹으며 진화를 시도했지만 거대한 불길은 열흘이 지나서야 잡혔다. 그 사이에 발전소 직원 수십 명이 사망하거나 방사능에 완전히 노출되었다. 진화작업을 하던 소방요원들도 그대로 방사능을 뒤집어썼다. 사고 후 소련의 대처방법도 사고만큼이나 끔찍했다. 서둘러 사고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 안전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인원을 마구 투입함으로써 방사능 피폭자를 무한히 늘리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그렇게 연인원 수십만 명이 동원되었다. 사고보다도 대처 방법이 더욱 슬펐다.

체르노빌 원자로 반경 48㎞는 20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여전히 '오염 지역'이다. 해남군과 진도군 전체를 더한 것보다 넓은 면적이다.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피해 규모는 집계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린피스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앞으로 27만 건의 암이 발병할 수 있다고 한다. 유엔에서는 4만여 명이 암에 걸릴 것이라고 내다본다. 특히 갑상선암 발병이 심각하다. 어느 쪽 통계에 따르든 앞으로도 30년간은 계속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체르노빌 사고는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다.

지금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방사능 유출 사고 

원자력발전의 경고등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원전 강국인 프랑스에서도 자주 깜박거렸다.  지난 2008년 7월 프랑스 남부 트리카스탱 원전에서는 한 달에 세 번이나 방사능이 유출되어 인근의 강을 오염시키고, 발전소 직원 1백여 명이 방사능에 오염된 바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월성, 고리, 울진, 영광 등지에 총 20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정부의 원자력 관련 기관에서는 우리 원자력발전 기술이 전 세계적으로 최상급이라며 안심하라고 하지만, 한국에서도 크고 작은 원전 고장과 사고는 계속 일어났다. 월성 1호기에서는 1984년, 1988년, 1995년에 걸쳐 방사능 유출사고가 발생했다.

2002 한일 월드컵 직전에는 울진원전에서도 증기발생기의 세관 절단으로 대형사고가 터질 뻔 했으나 겨우 막은 적이 있다. 하지만 월드컵에 누가 된다는 이유로 언론은 철저히 침묵했다. 전남 영광원전이 가동된 이후 20여 년 동안에 124건의 크고 작은 고장이 발생했다. 2003년에는 가장 나중에 지어진 5,6호기 열전달 완충판이 이탈한 적이 있고, 같은 해 12월에는 5호기 방사성 오염폐수 3500톤이 바다에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증기발생기 세관 결함도 발생한다.

한편 2007년 5월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우라늄 농축 실험을 하고 난 우라늄 시료박스가 소각장으로 유출된 후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핵물질 3킬로그램이 반출된 그 사건은 3개월여 뒤에야 공개되었고,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이를 축소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결국 미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원자력 관련 기관의 폐쇄성과 비밀주의를 고려할 때, 알려지지 않은 원자력 관련 사고가 얼마나 많을 것인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원전에서는 끊임없이 고장과 사고가 일어난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이명박 정부는 원자력을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라고 선전하며. 현재 건설 중인 10기 외에 2030년까지 9기~12기의 원전 추가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결국 이 좁은 땅덩어리에 40여기의 원전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방사능 유출의 위험도 그만큼 증가하게 된다. 이번에 원전 선정 후보지가 거론된 것도 그런 과정에서 나왔다. 해당 지역 주민의 반발을 우려한 한국수력원자력은 그마저 각 지자체와 은밀하게 접촉해왔다는 사실이 국정감사 과정에서 일부 드러나게 된 것이다. 결국 원전 건설을 둘러싼 관계 기관과 지자체의 비밀주의 행태가 또 한 번 확인된 셈이다.

그럼에도 한국수력원자력을 비롯한 원전 업계는, 지금 한국에서 가동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는 체르노빌 원전과는 가동 방식이 확연히 다르며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오히려 안전성을 믿지 못하는 국민에게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궁금하다. 원전이 안전하다면 왜 굳이 최대 전력 소비지인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시골, 청정지역에다 원전을 지으려는 것일까. 대학교 캠퍼스 하나 들어설 자리만 있으면 한강 중류 인접한 곳에 얼마든지 지을 수 있는 시설을 말이다. 

기술이 발전해도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의학과 의료 기술의 발달로 많은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이 아무리 발전해도 죽음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단지 수명을 조금 늘릴 뿐이다. 원자력도 마찬가지다. 원전 관련 기술의 발달로 사고율을 줄일 수는 있지만, 원자력의 존재 방식인 방사능의 위험을 본질적으로 해소할 수는 없다는 데 원전의 심각성이 있다.

원자력이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원자력 공학자나 기술자들 또한 그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안전핀이 튼튼하다고 해서 폭탄이 돌멩이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전쟁과 같은 유사시에 원전은 최우선적인 공격 목표가 된다. 포탄으로 무너진 원전 시설은 그것 자체로 핵무기의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또한 원전은 평시에도 1급 테러의 대상이 되는 시설이다. 이처럼 외부에서 주어지는 위험에 대해서는 어떤 기술적 안전도 무용지물일 뿐이다.

정치적 위험은 기술적 방어를 언제든 가볍게 뛰어넘는다. 요컨대 농축 우라늄을 재료로 쓰는 원자력발전소 건설은 핵무기 개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전에서 쓰고 난 핵폐기물은 언제든 재처리하여 핵무기 생산에 필요한 플루토늄의 재료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석유로 먹고 사는 중동 국가나 경제력이 떨어지는 아프리카 나라들에서 원전을 지으려 하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한 우리는 끔찍한 사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설령 가동 중에 사고가 나지 않는다 해도 핵폐기물 문제가 남아 있다. 핵폐기물을 아무리 꽁꽁 싸매어 깊이 묻어 둔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인간의 손으로 다시 처리해야 한다. 지난 2010년 8월에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에 의해 공개된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지하공동 상세설계 용역' 문건에 따르면, 이미 2008년 8월부터 공사에 들어간 경주 방폐장은 안전성 확보가 불가능하여 방폐장 건설 추진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공사는 계속 되고 있다.

한편 원자로의 내구연한은 통상 40년 안팎이다. 내구연한이 다 된 원자로는 폐쇄되거나 해체된다. 폐쇄되는 경우 반영구적인 위험물로 존치되며, 해체를 하더라도 수천 톤에 달하는 핵폐기물이 발생한다. 또 해체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는 곧 방사능 유출 사고로 연결될 수 있다. 이래저래 단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애물단지다. 이것은 현세의 풍요를 위해 위험을 미래 후손에게 전가하겠다는 태도나 다름없다. 처리 곤란한 핵폐기물을 미래 세대에게 영원히 물려줄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햇빛과 바람을 이용한 안전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눈을 돌릴 것인가? 우리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원자력발전소#해남#한수원#체르노빌#방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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