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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종교개혁 기념주일은 한국교회가 꼭 기억해야 할 날이 되었다. 베드로성당 건축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된 면죄부 마케팅을 보다 못한 마틴 루터가 말씀대로 살자며 이의를 제기한 지 493년 되는 날, 이틀 후인 지난 1일 서울에서 8000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기독교 은행설립 발기인대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은행 설립을 꾀한다는 소식을 듣고 몸서리를 치고 슬퍼했는데 사정을 잘 모르는 분들은 그것이 왜 그토록 문제인지 느끼기 쉽지 않아 보였다. 기독교가 은행을 설립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갸우뚱하는 하는 이들을 위해 이 글을 적는다. - 기자 말

네번째 이유, 역사에서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

'해 봤어?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어'라며 교회은행의 순기능을 부각시키며 좋은 쪽으로 생각할 수 없냐고 되물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분들에게 대답한다. '신물 나게 많이 해봤다. 그래서 왕창 망해봤다.'

부패한 중세 역사는 기독교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세상의 힘을 의지할 때 어느 정도 까지 실패하는지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핍박받던 교회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나서 타락하기 시작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다. 교회가 황제의 힘을 얻게 되자 아무나 교회의 회원이 되려고 줄을 섰다. 교회의 순수성과 믿음의 절대성은 교회가 제국을 아우르는 영향력을 얻게 되자 급속도로 희석되었다. 중세 천년을 지나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유럽대륙이 민족국가의 기초가 놓이는 중에도 교회는 그 영향력을 잃지 않고 확대시켜 나갔다.

복음은 체계적인 군사정복과 함께 야만인들 세계로 퍼져나갔고, 하루아침에 새로운 왕과 동시에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는 집단개종이 꼬리를 물었다. 흔히 아는 대로 '칼이냐, 코란이냐?'라는 말로 이슬람이 강제적으로 개종시켰다는 상식에 의문을 다는 사람이 있다. 실상은 '칼이냐, 성경이냐?'라는 구호를 먼저 쓴 것은 기독교 제국이었고, 그때는 이것이 참 선교인 줄 여겼다. 항복하고 개종하지 않는 야만인의 목은 가차없이 잘려나갔다. 그때는 하나님 나라는 이런 식으로 넓혀지고 이루어지는 줄로만 알았다.

중세 교회는 지역적으로만 하나님나라를 넓힌 것이 아니었다. 교회는 중세의 모든 것에 영향력을 미쳤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법, 교육, 신분질서까지 교회는 유럽사회를 장악한다. 이에는 신실한 왕들의 협조가 주요했다. 교회에 호의적인 왕권과 결탁하고 동업하다 나중에는 군림하고 오히려 왕을 다스리는 위치에 서게 된다. 유명한 카놋사의 굴욕사건은 교회의 힘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알려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렇게 교회는 절대권력을 휘두르다 마침내는 국가와 긴밀히 협조하는 것에서 나아가 아예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자체 왕국까지 건설하고 확실한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도래한 것이다. 사람의 힘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구현되다니 멋진 일이긴 한데, 뭔가 찜찜하지 않은가?

예상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것이 아니어서 교회는 타락하고 교회가 위세를 떨치며 번쩍이던 천년을 우리는 중세시대 즉, 암흑시대라고 부른다.

그때, 우리 교회는 땅 부자였다. 교회가 다시는 가질 수 없을 만큼 큰 영토를 소유했었다. 농노도 소유했으니 사람부자였다. 수도원에서 포도주와 맥주도 만들었으니 주류공장도 운영했고, 물론 고리대금업도 했었다. 겉으로는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업을 죄로 정죄하고 일반인들의 이자수입을 엄격히 금하면서도 교황 자신이 이자놀이를 했으니 은행업을 그것도 독점으로 해왔던 셈이다. 권력이 있고 땅이 있고 돈이 있는데 무허가 독점 은행까지 있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중세가 암흑시대라고 불리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물론 양심까지 캄캄했던 것이다.

한국교회가 교회의 이름으로 은행을 가지게 되면 교회는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중세에서 경험한 바와 같이 우리의 믿음을 부식시킬 것이다. 은행이 크면 클수록, 예금자와 저축액이 많으면 많을수록, 교회는 복음을 떠나 맘몬을 섬기는 돈의 종이 될 것이다. 중세교회의 역사에서 배운 뼈아픈 교훈을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한국교회여, 역사는 교회은행이 개점하는 그날을 한국교회가 중세로 회귀한 날이라고 기록할 것이다.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기려는 당신, 중세교회사는 공부해 봤는가?

다섯번째 이유, 선교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은행업은 쉽게 망하지 않는 사업 중의 하나다. 돈 놓고 돈 먹기라고 저리로 꾸어서 고리로 빌려주니 앉아서 돈 버는 곳이 아닌가! IMF때 은행이 쓰러진 것은 예외적인 경우이고 웬만해서는 은행은 쓰러지지 않는다. 자본주의 질서에서 은행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하도 커서 세금을 투입해서라도 은행을 살리게 된다. 그러니 이렇게 좋은 은행을 설립하는 기회가 종교단체에게 주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첫째, 교회에 은행업을 허가하면 그래서 어느 교회든 은행을 설립할 수 있다면 각 교단마다 하나씩 은행을 세울 것이다. 합동 은행, 통합 은행, 감리교 은행, 성결교 은행, 순복음 은행, 침례교 은행, 아니 대형교회들은 저마다 자기 교회 명의로 너도나도 앞 다투어 은행을 세우려 들 것이다. 어차피 헌금이 수중에 있으므로 굴리면 남는 장사이고 망하지 않는 장사인데 어느 누가 마다하랴?

오히려 어느 특정교단에만 은행설립을 허가한다면 이야말로 민원사항이 되고 특혜시비가 일게 될 것이다. 설마 성경책과 찬송가조차 하나로 만드는데 실패한 사오분열된 한국교회가 사이좋게 은행하나 만들어서 서로 돕는 그런 뿌듯한 광경을 기대하는 순진한 사람은 없겠지. 교단마다 난립한 교회은행들은 교단분열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셈이어서 일반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그렇지 않아도 좁아진 전도의 문에 빗장을 걸게 될 것이다.

둘째, 만약 한국교회가 앞으로 단 하나의 연합된 은행이 세워지는 공상과학 같은 일이 일어나더라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실 더 큰 문제가 남아있다. 한국은 기독교국가가 아니고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임을 기억한다면 기독교 은행 설립 운운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지 금방 깨달을 것이다. 만약 오로지 기독교 교회에게만 은행 설립을 허가한다면 이는 종교편향적 특혜이고 다른 종교를 탄압하는 것이어서 즉시 청문회 감이다. 모든 종교를 평등하게 다뤄야 하는 것이 헌법적 질서이므로 필연적으로 다른 모든 종교에도 은행을 설립하게 될 것이다.

천주교 은행, 조계종 은행, 원불교 은행이 세워질 것을 생각해보자. 기독교 은행의 규모가 천주교 은행과 조계종 은행을 압도할 만큼 예금의 규모가 클 것이라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반대로 교회가 동원하는 자금을 다 한데 뭉쳐도 불교 은행과 천주교 은행의 자금규모에 기독교 은행은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교회의 부동산가치와 헌금규모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전국 방방곡곡 심산유곡마다 자리잡고 차지한 웅장한 사찰의 수와 그에 따른 광대한 대지의 규모는 고작 몇몇 대형교회 건물을 자랑하는 기독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

자본의 속성상 돈이 많으면 더 많은 돈을 벌게 될 것이므로 불교 은행과 기독교 은행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지게 될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렇다면 소수의 탐욕으로 시행된 기독교 은행의 설립은 되려 불교의 주머니를 더 많이 채워주게 될 터이다. 이토록 자명한 사실을 기독교 은행설립 발기인들도 쉽게 생각할 수 있을 텐데도 앞장서서 외치는 사람들의 종교적 입장을 나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 불교계에서 쌍수 들고 환영하며 고마워할 일이다.

셋째, 교회에 은행을 허용한다면, 다른 모든 종교단체에도 허락하게 된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만 3대 종단으로 인정하고 독점적 지위를 주는 곳은 군대밖에는 없다. 일반 법률에서는 모든 종교단체로 등록된 곳을 동등하게 대접하게끔 되어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은행설립은 이단 종파를 비롯한 모든 종교에 자금줄을 하나씩 만들어 주는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통일교 은행, 몰몬교 은행, 여호와의 증인 은행, 대순진리회 혹은 증산도 은행 등 온갖 이단들이 은행을 통해 자금을 얻어 그 세력을 넓히는데 이용할 것이다. 아마 그렇지 않아도 통일교가 가장 좋아할 것이다. 교회 은행을 설립하자는 당신들, 대체 누구 편인가?

뿐만 아니라, 조금 있으면 세월이 알아서 정리해 줄 그렇고 그런 군소종단이나 온갖 이단종파들이 금융업 진출을 통해 포교의 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천도교 은행, 대종교 은행, 남묘호렌케쿄 은행, 영생교 은행, JMS 은행, 신천지 은행 등이 골목을 장악할 것이다. 어쩌면 스타킹 판매 수익을 토대로 세운 고 박태선 장로 기념은행도 조만간 보게 될지 모른다. 당신들 대체 누구 편인가?

한국의 기독교는 몇십 년째 25%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 몇 년 새 교세가 줄어들어 20%나 유지할 까 싶다. 고작 20%를 차지한 기독교계 은행이 세워져서 우리가 돈을 벌면 무종교인을 빼더라도 나머지 대략 40%의 다른 종단도 은행에서 그만큼의 수익을 얻을 게 아닌가? 우리가 한 푼 벌겠다고 체통 다 버리고 은행업으로 뛰어드는 순간 두 푼의 포교자금이 다른 종교로 흘러들게 된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겠다는 충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몹시 궁금하다. 조계종에 은행을 세워주려는 당신들은 대체 누구 편인가?

장충 체육관에 무려 팔천이나 모였다는 기사가 나를 주눅 들게 한다. 여호와께서 숨겨둔 칠천 명이 다 일어나도 여전히 천명이나 모자라는 큰 숫자다. 그러나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나라는 숫자와 힘과 땅의 크기에 있지 않음을 기억한다. 내가 아는 한 높으신 주님은 팔만명이 모인다 해도 은행설립을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자비로우신 주님은 팔십만 명이 잘못 생각하고 중세로 돌아가자고 푸닥거리를 해도 참으시고 깨닫고 회개할 기회를 주실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주님은 이 팔천 명이 돌이켜 회개하기를 기다리실 것이라는 사실도 나는 안다. 그리고 그 회개는 나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도 나는 어렴풋이 깨닫는다. 주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교회#은행#발기인대회#탐욕#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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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애틀 드림교회 목사입니다. 김범수 목사는 건국대에서 법학과 총신대원 및 미국 칼빈신학교에서 목회학을 공부했습니다. 성경공부와 교회의 회복, 소형교회운동 그리고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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