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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상여 행렬
 상여 행렬
ⓒ 최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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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숨이 멈춘 것을 말하며, 내쉰 숨을 다시 들이쉬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 중환자실에 누워있어도 숨이 붙어 있으면 사람이지만 멈추면 시체가 된다. 사람이 죽으면 명칭이 시체라고 바뀌고, 이름 앞에 옛 고(故)자가 붙어서 이 시체는 옛날에는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표시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격리의 대상이다. 한 집에서 함께 살던 사람도 죽어 시체가 된 순간부터는 영안실 냉동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무리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자식이라도 죽은 부모를 안방에 모시고 살 수 없고, 아무리 금슬이 좋은 부부라고 할지라도 아내가 죽으면 끌어안고 잘 사람이 없다.

죽은 사람은 입는 옷도 다르다. 살아 있을 때 입는 옷을 의복이라고 부르지만 죽은 사람이 입는 옷은 수의(壽衣)라고 한다. 산사람이 입는 의복과 송장에게 입히는 수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의복에는 주머니가 있지만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산사람은 소유할 수 있지만 죽은 사람은 소유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죽어 시체가 되는 순간부터 평생 땀 흘려 모은 재산이라도 자신의 소유물도 아니고, 저 세상으로 가지고 갈 수 없다는 뜻으로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살아 있는 사람은 사는 것에 관심이 많다. 사람들이 재물을 사랑하고 그것을 모으려고 애를 쓰는 것도 살려는 애착심 때문이다. 사람들의 옷에 주머니가 있기 때문에 주머니에 무엇인가를 채우려고 애를 쓴다. 나의 주머니에도 지갑이 있고, 그 속에는 현금과 여러 장의 신용카드가 들어있다. 나도 살아있기에 소유하려는 욕심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처가는 장인 장모님이 이미 다 돌아가셨다. 삼십 여 년 전 장인의 장례를 마치고 장모님께서 객지에 사는 자식들에게 시골에 내려와서 나와 함께 사는 자에게 모든 재산을 다 주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무도 동의하지 않아 혼자 사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말았다. 몇 년이 지나서 읍내에 살면서 군청에 다니던 큰 처남이 다른 형제들의 동의를 받지 않고 장인 명의로 되어 있던 모든 재산을 자기 명의로 다 이전해 버려 형제 간에 싸움이 일어났고 결국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들처럼 연락을 끊고 살아간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로부터 4천 5백만 원의 유산을 받은 두 아들이 있었다. 요즈음 경제 규모로 본다면 유산이랄 것도 없는 작은 금액으로 큰아들에게 3천만 원, 작은아들이 나머지 1천 5백만 원을 가지라고 유언을 했다. 그런데 큰아들은 동생의 지분을 나누어 주려하지 않아 동생이 형에게 자기 몫 1천 5백만 원을 요구하자, 형은 돈을 주겠다며 동생을 자기 차에 태우고 서울을 출발하여 경상남도 양산으로 가서 살해한 뒤 시체가 발견 되더라도 지문감식을 통한 신원조회가 불가능하도록 동생의 열 손가락을 모두 절단해 버렸다. 1천 5백만 원의 욕심 때문에 동생을 죽인 것이다.

상여 나가는 길
 상여 나가는 길
ⓒ 최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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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부모의 유산을 둘러싼 자식들의 재산다툼은 재벌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이미 우리 사회의 보편적 현상이 되어가 있는 것 같다.
 
1963년 11월 22일 오스왈드의 저격으로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텍사스 주 달라스에서 피살되었을 때, 그의 아내 재클린의 나이는 불과 34세였고, 외아들 케네디 2세는 만 세살이 지나지 않았다. 사흘이 지난 11월 25일, 케네디 2세가 워싱턴교회 앞을 지나는 아버지의 영구차를 향해 영문도 모른 채 거수경례를 올려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하던 바로 그날이 자신이 이 땅에 태어나 세 번째 맞는 생일이었다.

졸지에 과부가 된 젊은 재클린은 23년이나 연상인 그리스의 억만 장자 오나시스와의 재혼을 했고, 1994년 세상을 떠나며 2천만 불(2200억) 이상의 유산을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그러나 케네디 2세는 그 돈으로 유명 연예인들과 염문을 뿌리는 등 자유분방한 삶을 즐기다가 1999년 자신이 조종하던 자가용비행기 사고로 아내와 함께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39세, 참으로 덧없고 인생이요 허망한 죽음이다. 만약 그에게 물려받은 유산이 없었던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죽음이었음이 틀림없다. 내가 평생토록 애써 모으고 남겨 준 재산으로 인해 사랑하는 나의 자식들이 원수지간이 되거나 자기 인생을 망쳐도 이미 시체가 되면 속수무책일 뿐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어릴 때 동리 어른 한 분이 세상을 떠나시면 온 동리는 농사일을 멈추고 남자들은 산역을 준비하였고, 아주머니들은 먹을거리를 준비하며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바느질 솜씨가 좋고 나이가 드신 분들은 건넌방에서 누런 베를 잘라 고인과 체격이 비슷한 사람의 몸을 재면서 수의를 만드셨다. 별로 재미있는 구경거리는 아니었지만 방문 너머로 들여다보면 어머니는 솜씨 있는 바느질꾼으로 부지런히 수의를 만들고 계셨다. 조금씩 과거의 기억들을 잊어 가시는 어머니는 오늘 수의 이야기를 또 하신다.

"나 죽으면 입고 갈 수의를 만들어야 하는데!"

지난 밤 어머니는 옛날 동리 어른이 돌아가신 날 고인에게 고은 옷 입혀 저세상으로 보내려고 친구들과 소곤소곤 이야기하며 수의를 만드시던 꿈을 꾸셨는지 모른다. 그리고 자신도 고은 수의 한 벌 입으시고 저 세상으로 가고 싶다는 말씀을 자식에게 하시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욕심은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고 아무 것도 소유할 수 없는 주머니 없는 수의를 입으시고 꽃상여를 타시고 저 세상으로 가시고 싶다는 말씀이실 게다.


태그:#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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