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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동행
 사제 동행
ⓒ 김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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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시각장애학생들은 유치부 어린이부터 시작해서 4,50대의 고등부 만학도까지 모두 백여섯명입니다.
오늘, 스승의 날은 전년도에  처음으로 시작하여 2회째가 되는 '사제동행 걷기' 행사를 했습니다.

전년도의 실무를 맡아 어떻게 하면 시각장학생들에게 좋은 추억을 심어줄 행사를 할 것인가 노심초사하던 생각이 납니다.
우리 학교 최초의 사제동행 행사를 했던 전년도의 그날, 특별히 사제간의 정을 도탑게 하고자 두 시간 가량을 학교 주변 마을을 손 잡고 걷기로 했었지요.

교장선생님과 교사 및  행정교사, 특수교육보조원, 공익요원 그리고 교생선생님까지 모두 합해도 1:1의 비는 채울 수 없었지만  교사 한 명이 학생 1-2명의 손을 잡고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행사가 있기 며칠 전 학생부장 선생님이랑 함께 마을 길을 세 번 이상 돌았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학생들에게 가장 적합한 길을 정하고자 함입니다. 첫번째는 마을 외곽으로 좀 멀리 도는 중,고등부 학생들이 걸을 길, 두 번째는 마을 안쪽으로 조금 덜 도는 초등부 어린이들이 걷게 될 길, 세 번째는 이동이 곤란한 중증, 중복장애어린이들이 걷게 될 아주 가벼운 길을 선택하기 위하여 땀을 뻘뻘 흘리고 직접 발로 돌아본 것입니다.

나는 행사의 실무자이므로 아이들에게 세 가지만은 소개해 주고 싶었습니다.
첫째, 오늘 스승의 날은 세종대왕탄신일이라는 것, 세종대왕이 우리 민족에게 빛을 주었듯이 우리 교사들 모두는 여러분들에게 빛이 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라는 것.
둘째, 스승의 날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100여국 이상에서도 기념하고 있다는 것
셋째, '존경해요, 사랑해요, 하나되는 배움터'라는 교육구호를 학생들과 아이들에게 꼭 따라 읽게 하겠다는 것.
학생들은 다른 때와 달리 집중하여 잘 들어주었고, 그리고 함께 큰 소리로 존경해요~ 사랑해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시각장애학생들, 그리고 학생들의 교육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모든 이들은 운동장에 정렬하여 사전 안내를 받고 유쾌한 함성을 내지르고 출발하였습니다.

내 짝은 평소에 자주 만나볼 수 없는 초등부 4학년 현이였습니다.
노란 풍선을 손에 쥐고 여린 손을 내게 내맡긴 현이는 쑥스러운 듯 말없이 걷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잦은 내 질문에 드문드문 대답을 하기 시작했고, 스스로 질문하기도 하였습니다.

11살의 현이는 나빠진 시력으로 일반초등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벌써 집을 떠나 생활시설인 영광원에 기숙하고 있었습니다만 우리 학교에 와서 공부하고 싶어졌노라고 나즈막하게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일본에 살고 계시는데 주택에 살고 있으며, 집은 이층집인데 나무로 지어졌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마을 논에서 자라고 있는 보리도 만져보고 저 혼자 날아다니다 논두렁에서 싹을 틔워 꽃을 피우고 있는 갓꽃을 뜯어 냄새를 맡아보고 입으로 맛도 보기도 했습니다.
현이는 개구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정말 개구리를 키워보았으면 좋겠다고 했니다. 그래서 함께 비탈진 둑을 내려가 졸졸 흐르는 개울물 가까이 가니 정말로 팔짝 뛰어 도망가는 개구리란 놈도 발견했습니다. 일본 할아버지 댁에서는 나비를 잡는 망으로 개구리를 잡았다면서 다음에 일본에 가면 개구리를 잡아 오겠다고 했습니다. "으음, 그런데 일본에서 개구리를 잡아 함께 비행기를 탈 수는 없을텐데..."라는 나의 답변에도 무현이는 "그럼 어항으로 가져올 거예요"하며 나름대로 어린이다운 발상을 계속 펼쳐 나갔습니다. 나는 무현이에게 선생님은 시골서 사니 개구리알과 개구리를 생포하면 꼬옥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는 한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나는 중,고등부 시각장애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지만 초등부 부담임으로 되어 있어서, 그날은 귀여운 초등생 현이의 손을 잡고 가며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여리디여린 아이의 손을 잡고 이 손이 강건하게 될 때까지 지켜주고 싶은 맘도 생겼고, 동네길에 나타난 해님, 바람님, 나비님, 꽃님, 풀님들을 느끼며 봄을 즐길 수 있었으며, 현이와 약속한 것을 꼭 지키고 싶은 책임감도 생겼습니다.

"선생님, 개구리를 잡는다면 이 통에 넣어요."
현이는 걷다가 발에 걸린 배 세 개를 넣은 투명한 비닐통을 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 누가 길에 그 통을 버렸구나. 우리 개구리를 만난다면 그곳을 집을 삼게 하고, 만약 못 만난다면 그냥 재활용통에 넣자"하고 들고 오니 일석이조입니다. 재활용을 할 수 있는 이점 하나요, 또 길에서 굴러다니는 쓰레기를 주웠으니 환경정화활동을 한 것입니다.

한 손은 내 손을 잡고 한 손은 그 통을 잡고 끝까지 졸졸 따라와 준 현이가 사랑스러웠습니다.
그 순간의 내 감정과 감동을 현이는 측량할 수 없을 게고, 아마 이 손을 놓고 자기 교실로 무정하게 가 버리는 순간 나와의 두 시간 동행길을 잊어버릴지도 모르지만 이 같은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현이만의 색을 발휘하게 될 것을 저는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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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내 짝은 한 학년이 올라갔지만 또 그반에 소속된 초등학교 5학년 민이였습니다.
작년에 민이와 가장 친한 현이의 짝을 했었기 때문에 낯이 익었다고 날 반깁니다. 작년에는 곁을 잘 주지 않았는데 올해는 내 손을 잡는 민이의 손이 자연스럽습니다.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담임선생님은 전혀 보이지 않는 아이의 짝이 되었고, 교생선생님은 여리디여린 공주 아가씨의 짝이 되었으며, 작년 내 짝인 무현이의 짝은 예쁜 아가씨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내 짝인 민이는 저시력이기 때문에 세상 만물에 대한 접근이 더 쉽습니다. 내 손을 끌고 팔랑팔랑 걸음을 옮깁니다. 
우린 학교문을 나서서 주변 강변을 걸으며 토끼풀을 따서 꽃시계도 만들고, 애기똥풀 줄기를 따서 손등에 노란 물을 들이기도 하며, 유채꽃을 따서 맛도 보며 자연을 즐겼습니다. 학교앞 극락강변이 아름답게 변했습니다. 강변에 나무도 심고, 꽃도 가꾸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했습니다. 광주광역시 시민임을 감사합니다.
하늘도 땅도 싱싱한 물이 올라 우리 또한 절로 싱그러워집니다. 잔디에 큰 대자로 누워 땅기운을 느끼고, 내려다보는 하늘과 교감했습니다.
발을 맞대고 하늘을 향한 아이들의 얼굴이 꽃입니다.
민이에게 팔베개를 해 주니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뿌뚯함이 뿌두두 올라옵니다.

우리 시각장애아이들에게는 역동적인 환경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둘러싼 세계에 대한 불안으로 자칫 움츠러들기 쉬운 아이들에게 아주 편안하게 세상에 접근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현대화된 교육공학적 건물도 필요하지만 흙에서 맘대로 뛰놀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합니다. 아이들의 큰 동작을 위한 안전하고 구조화된 넓은 운동장은 꼭 필수이지만 아쉽게도 매우 협소합니다. 보이지 않아서 큰 운동장이 필요없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안전하고 편리한 운동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학교 안에 흙으로 된 땅덩어리가 거의 없습니다. 좁은 부지로 인하여 자투리 땅까지 최대한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학교 앞 천변이 개발되어 공원화가 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저는 상상합니다. 학교 앞에 아름다운 육교가 생겨서 길을 건너지 않고도 천변운동장까지 맘대로 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오늘, 민이의 손을 잡고 걸으니 비행기 소리도 정겹습니다. 평소 공부할 때는 흡사 지하철이 지나가는 굉음처럼 들리는 비행기 소리에 모두들 귀를 막았는데, 밖으로 나오니 비행기소리마저 너그러워집니다.
우리 시각장애학생들의 주감각은 청각과 촉각이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교 인근에 군비행장이 있어서 공부에 지장을 많이 받습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이중창을 만들어 훨 나아졌지만 더워지며 창문을 열게 되면 그 소음은 더위보다 훨훨 끔찍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왜 비행기소리마저 들리지 않을까요? 자연 속을 재잘거리며 함께 걸어오다 보니 둘만의 세계에 집중했기 때문일까요?

지정된 다리 밑의 서늘한 곳에 모여 학부모님들께서 후원해주신 햄버거를 먹으니 꿀맛입니다.
우린 학교에 올라와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반 아이들에게서 꽃다발을 받았습니다. 다음 주에는 꼬옥 맛있는 것을 싸다 그 반 아이들에게 줄 것입니다.

우리 학교의 사제동행 마을길 걷기 행사, 2년째인 오늘은 더욱 행복합니다.
스승과 제자가 손에 손잡고 마을길을, 꽃길을 도는 스승의 날 이 행사는  우리 학교 전통으로 계속 유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동네분 한 분이 오셔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더욱 아름다운 내년의 오늘을 기대해 봅니다.


태그:#스승의 날, #사제동행, #시각장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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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각장애 특수학교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동료 선생님의 소개로 간간이 오마이 뉴스를 애독하고 있습니다. 바쁜 일과 중 저의 미숙하고 소박한 글이나마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습니다. 제가 글을 올리면 전국의 네티즌들이 모두 본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서운 생각도 듭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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