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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같았던 겨울의 바람이 한결 차분해진 1월의 막바지에 내 시선을 잡아끈 책 한권이 있었다.

 

몇 주째 베스트셀러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있는하루키의 <IQ84>를 무서운 기세로 쫓고있는 권비영 작가의 덕혜옹주가 그것이다.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애절한 표정의 여인이 눈에 들어오는 이 책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용히 묻혀버린 황녀의 이야기를 최초로 서술하고있다.

 

고종이 60세인 1912년 후궁 복녕당 양귀인에게로 부터 얻은 옹주는 고종의 사랑을 듬뿍받던 영특하고 어여쁜 막내 딸이었다. 그러나 겨우 8살 에 늘 자신을 어여삐 여겨주시던 아버지의 의문사를 겪게되고 후로 6년후인 열네살 1925년에 일본에서의 교육을 명분으로 황족들을 볼모로 삼아오던 일제하의 요구에 그녀도 자신의 오빠들과 마찬가지로 강제로 일본행에 오르게 된다.

 

이방자여사는 그녀가 일본에 도착했을 당시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해놓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몇 년 전 처음 그녀를 봤을 때 나를 매료 시켰던 생기발랄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본말로 인사했으나 그녀는 말이 없었다. 내가 다시 한국말로 "먼 여행 오시느라 피곤하신가봐요?"했으나 옹주는 미소조차 띠지 않았다.

 

그녀는 그 순간에 어떠한 생각했을까? 망국의 슬픔을 온몸으로 느끼던 그날 누구보다 사랑했던 조국의 땅을 떠나 자신의 조국을 짓밟은 원수의 땅으로 온 그녀의 슬픔은 어느 정도 였을까. 하지만 그녀는 일본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점점더 깊어진 마음의 병은 정신 질환으로 이어졌고 열일곱 살 땐 생모 양귀인이 숨져 이에 대한 충격으로 증세가 더욱 악화되어 조발성치매증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듬해 일본은 황족의 혈을 끊어버릴 목적으로 대마도 도주의 후예인 백작 소오 다케유키와 덕혜옹주를 정략결혼시켰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다케유키는 떠돌던 소문과는 달리 꽤나 신사적인 매너를 갖고있는 현대남으로 그녀를 포용하려 애썻다 한다. 그러던 중 덕혜옹주는 딸 마사에를 낳았다. 허나 결혼 후 지병이 악화되었고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어쩔 수없는 평행선이 었을까. 점점 더 깊어진 조선인과 일본인. 그와 그녀사이의 골은 그 깊이를 알 수없게 되어버렸고 1951년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게된다. 또한 유일한 혈육인 그녀의 딸인 마사에도 자살을 하겠노란 유서를 남기고 영원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 광복이 찾아오고 대한민국라는 나라가 들어선 후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왕정복고를 우려해 황족들의 귀국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은채 옹주는 그대로 일본에 머문채로 잊혀져만 갔다. 몽매난망 그리워하던 국민들에게, 조국에게.

 

그리고 1960년대 박정희의 쿠데타 이후 오매불망 옹주의 귀국위해 노력하던 김을한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그녀의 귀한을 요청했다. 

 

...덕혜옹주를 조국으로 모셔가기 위해 이승만 정부에 귀환을 요청했다. 그러나 왕정복고를 두려훠한 이승만은 왕실 재산을 국유화 하고 왕족들을 천대했다. 이씨 왕가의 자손들은 해방이 되고도 아무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다시 박정희를 만나 덕혜옹주 이야기를 청했다.

 

박정희가 물엇다. "덕혜옹주가 대체 누구요?"

나는 대답했다. "조선의 마지막 왕녀 입니다."                                -김을한의 말

 

마침내 1962년, 38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옹주는 5년간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창경궁 낙선재에서 살게 되었지만 지병으로 고생하다가 77세의 일기로 외롭고 한 많았던 삶을 마감했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싶어요. 전하,비전하 보고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덕혜옹주의 말

 

책의 날개에 붙어있던 이 사진을 읽는 도중에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큰 눈에 자신의 아버지를 꼭 닮은 이목구비 너무나 어여쁜, 천상 조선의 여인이 같고있는 꽃같은 수줍음을 담고 있는 이 어린 소녀는 비단 평민의 고통 뿐만이 아니었을망국의 현실에서얼마나 깊은 한과 슬픔을 감당해야 했을까. 

 

그렇게 몇 번이고 그녀의 얼굴을 돌아보며 다소 슬픈 그녀의 삶에게로의 여행을 하는 도중 친구에게서 무엇을 하냐는 문자가 왔다. 그래서 덕혜옹주란 책을 읽는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덕혜옹주가 도대체 누구냐? 라고 물어왔다.

 

나는 차마 아무 말도 할 수가없었다. 이 분을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조선의 마지막 왕녀? 고종의 막내딸? 가장 고귀하고 성스러운 신분을 갖고 태어나 가장 고통스럽고 우울한 삶을 살다간 그녀. 누구보다 그리워했던 민중들에게서, 조선에게서, 대한민국에게서 잊혀져 역사의 뒤안길로 수십년간 밀려나 있었던, 우리와 같이 역시 대한의 딸인 덕혜옹주.

 

우리는 그녀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아니 이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수많은 우리 한국인들 중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녀를 기억할까.

덧붙이는 글 | 망국의 황녀로 태어나 평생을 조국을 향한 그리움에 몸부림치며 살다간 덕혜옹주.
이책의 마지막장을 넘겼을때. 나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뒤늦었지만.
이렇게 책으로라도 그녀의 슬픔을 만날 수 있어서 말이다.


덕혜옹주 (일반판)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다산책방(2015)


태그:#덕혜옹주, #책리뷰, #권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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