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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신발 사이즈가 몇이지?

따뜻하고, 섬세함이 느껴지는 말. 작가 '오가와 요코'의 성향이 그대로 묻어난다. 오가와 요코(おがわ ようこ)는 와세다대학 제 1문학부 문예과 출신으로, 1988년 <호랑나비가 부스러질 때(揚羽蝶が壊れる時)>로 가이엔 신인문학상(海燕新人文学賞)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데뷔하였다. 가이엔 신인문학상은, <키친>의 작가인 요시모토 바나나, <죽이러 갑니다>의 작가 가쿠타 미쓰요 같은 쟁쟁한 작가들이 수상한 바 있다.

이후 그녀는 1991년 <임신 캘린더(妊娠カレンダ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고, 2004년 <박사가 사랑한 수식(博士の愛した数式)>으로 요미우리 문학상(読売文学賞), 혼야 대상을 수상한다. 같은 해 <브라프만의 매장(ブラフマンの埋葬)>으로 이즈미쿄카 문학상(泉鏡花文学賞)을 수상, 2006년에는 <미나의 진행(ミーナの行進)>으로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谷崎潤一郎賞)을 수상한다. 현재는 여러 문학상의 심사위원을 맡으며, 여성작가로써,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책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수상경력 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따뜻함과 섬세함이 있다. 이야기 배경은 단순하다. 이야기 주인공인 박사. 그는 교통사고로 인해, 80분간만 기억을 유지할 수 있다. 박사와, 박사집에 집안일을 하러 온 가정부 쿄코, 쿄코의 아들 루트와의 일상이야기가 책 줄거리이다. 갑작스러운 반전이나 흥미진진한 전개는 없다. 일상의 세세한 묘사와,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지는 '수학'을 리듬감을 가진 언어로 풀어내는 표현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박사의 수식은 아름다웠다

오가와 요코 <박사가 사랑한 수식>
▲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박사가 사랑한 수식>
ⓒ 도서출판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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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신발 사이즈가 몇이지?"

매일, (기억장애로 인해) 낯선 그녀에게 그는 신발사이즈, 생일, 아들 유무를 묻는다. 그에 쿄코는, 박사가 상처받지 않도록 매번 웃는 얼굴로 처음과 같이 대답한다. 박사에게 기억되는 것은 수학 뿐이다. 그리고 할 줄 아는 것도 수식 뿐이다. 쿄코와의 연관관계, 그녀의 아들 루트를 기억하는 방법, 서로가 가까워지는 방식은 모두 '수식'을 통해서다. 수식 외에는, 80분을 지속하기 힘든 기억력. 그것을 깨달을 때마다 고통받는 박사와 보듬어 주려는 모자의 모습이 가슴 아팠다.

박사가 표현한 수식을 따로 적진 않겠다. 전후관계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고, 책 분위기 내에서만 그 나름의 리듬감을 느낄 수 있다. 3시간 남짓, 손에서 책을 떼지 못했다. 다 읽은 후에는, 수식표현 부분을 한번 더 읽었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생각하였다. 과연 박사는 수식을 정말 사랑했을까? 수식은 그들이 소통하는 통로였다. 그리고 서로가 연결돼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박사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박사는 수식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수식을 풀어가는 과정, 거기서부터 소통의 과정을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수학은 항상 어렵다고 생각했다. 시험을 위한 하나의 도구라고도 생각했다. 책을 읽고 난 후 조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박사는 항상 수학문제를 풀기 전에, 문제를 크게 한번 읽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문제가 가지고 있는 나름의 향기와 리듬을 느껴보라고 했다. 수학은 푸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했다. 아직은 그 말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일러의 공식, 소수(1과 자기자신만을 약수로 갖는 숫자)가 더이상 껄끄럽지 않은 건, 박사의 말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서가 아닐까?

적절한 양념과 영화에 대한 관심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 등장하는 적절한 양념은 '야구'이다. 박사와 아들은 '한신타이거즈'의 열렬한 팬이다. 두 사람이 더욱 가까워지게 된 배경에 야구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 각각이 좋아하는 대상은 달랐다. 박사는 수십년전 기억에서 살기 때문에, 당시 한신타이거즈 투수였던 '에나쓰 유타카'를 우상으로 여겼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는 이미 팀을 이적하고, 명예의 전당에 올라있던 선수였다. 루트와 쿄코는 사실을 숨기고, 박사의 생일날에는 에나쓰 유타카 야구카드를 선물하며, 행복한 순간을 맞이한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2005년, 일본에서 고이즈미 타카시를 감독으로 하여 영화로 제작되었다. 좋은 책을 영화한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 두려움 반, 기대감 반을 가지게 한다. 섬세하고 따뜻한 감정들을 어떻게 영상화했는지 관심이 간다. 책 기억이 희미해질 때쯤, 영화를 보려 한다. 그때의 영화가, 지금 느끼는 행복감을 가져다 줬으면 한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레(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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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오가와 요코, #박사가 사랑한 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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