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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의 아침. 짙게 끼었던 안개가 걷혀가는 중이다. 단동과 신의주를 잇는 철교가 어렴풋이 드러나고 있다.
 압록강의 아침. 짙게 끼었던 안개가 걷혀가는 중이다. 단동과 신의주를 잇는 철교가 어렴풋이 드러나고 있다.
ⓒ 이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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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가르는 경계, 압록강. 저 멀리 백두산 천지의 물을 담고 온 압록강이 여름의 한 가운데를 흐르고 있습니다. 장장 2천리에 이르는 그 흐름의 하단부엔 양쪽의 최대 변경도시 단동과 신의주가 마주보고 있습니다.

단동 생활 4년. 먼동이 트기 전, 눈을 떠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창밖의 압록강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압록강 옆에서 네 번째 여름을 보내면서 시나브로 몸에 밴 습관입니다.

여름날 아침의 압록강은 항상 안개 속에 묻혀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좀 더 멀리 옮기면 엊저녁 잠들 때까지 작은 불빛들이 반짝이던 강 건너 신의주가 희뿌연 환영(幻影)으로 다가옵니다. 강둑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미루나무들만 신기루마냥 어렴풋한 윤곽으로 어른거릴 뿐입니다.

여름 압록강은 '안개의 강'입니다. 겨울 압록강이 끊임없이 북풍(北風)을 실어 나르는 '바람의 강'인 것과 달리. 안개에 묻힌 압록강은 흐름을 멈춘 듯 조용합니다. '혁명군처럼 밤새 소리 없이 진주해 온' 안개에 점령당한 무중대하(霧中大河)는 대하무성(大河無聲) 그대로 정적 속에 묻혀 아침을 맞습니다.

안개는 아침 해가 차츰차츰 동녘을 붉게 물들이면서부터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안개를 쫓는 햇살은 위화도 너머로 멀리 보이는 민둥산 위로부터 비쳐오기 시작합니다. 짐작컨대 함경북도 의주군 어디쯤에 속하는 이름 모를 산 입니다.

안개가 걷히면서 압록강이 유장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멈춰있던 것만 같던 흐름이 다시 일렁입니다. 햇살을 받은 물결이 수많은 은빛비늘들로 변합니다. 하루 두 차례 역류하는 강물 위에 부서지는 햇살은 더 한층 눈부시게 반짝입니다. 서해의 만조가 밀물을 몰고 올라오면서 은파(銀波)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은파를 따라 한 무리의 갈매기도 따라옵니다.

압록강에서 수영을 즐기는 단동 사람들. 철교 위쪽, 바로 위화도가 건너다 보이는 곳이 
수영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압록강에서 수영을 즐기는 단동 사람들. 철교 위쪽, 바로 위화도가 건너다 보이는 곳이 수영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 이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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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이 있어 단동에서의 여름나기는 특별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강변공원 높다란 메타세콰이어와 늘어진 수양버들 가지가 만들어주는 그늘 아래에선 여름내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공연이 펼쳐집니다. 모두 나이 지긋한 라오바이싱(老百姓:장삼이사, 곧 일반 서민)들입니다.

연주자들의 연륜만큼 그들이 들고 나온 악기도 손때가 짙게 밴 것들입니다. 얼후(二胡), 단소, 손풍금에 이름 모를 전통악기 등 모두 몇 대에 걸쳐 물려받았음직한 것들이건만 손색없는 화음을 이루어냅니다. 지휘자도 따로 없이, 또 별다른 연습 없이도 척척 호흡을 맞춥니다.

연주가 흥을 돋우면 자연스레 노래자랑이 벌어집니다. 빙 둘러선 구경꾼들 중에서 하나 둘 자원자들이 나섭니다. 고음이 특징인 중국민요를 제스처를 써가며 열창을 하는 모습이 진지합니다. 지켜보고 있노라면 우리와는 사뭇 다른 중국인들의 정서를 느끼게 됩니다. 공중 앞에서 스스럼이나 쭈뼛거림 없이 노래하고 춤추는 데 익숙합니다. 그만큼 자기표현에 충실하다고 할까요. 

중노년들이 즐겨 하는 잉가(秧歌)놀이. 울긋불긋한 복장에 헝겊부채를 들고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며 돈다.
 중노년들이 즐겨 하는 잉가(秧歌)놀이. 울긋불긋한 복장에 헝겊부채를 들고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며 돈다.
ⓒ 이덕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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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압록강변의 단동은 활기차고 다채롭습니다. 중노년들은 잉가(秧歌:모내기 농요의 일종) 유희를 즐깁니다. 북소리 장단에 맞춰 어깨춤을 추며 길게 행렬을 지어 도는 운동 겸 놀이입니다. 우리의 농악과 비슷한데 박자나 동작이 좀 더 단순합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끼어들어도 무방합니다.

그보다 좀 젊은 축에서는 지엔즈(毽子) 차기를 즐깁니다. 빳빳한 깃털이 달린 제기를 여럿이 둘러서서 차거나, 족구처럼 게임을 하기도 합니다. 힐킥, 점프킥 등 기술도 다양한데 여자들이 훨씬 더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동사람들의 지엔즈 실력은 여러 차례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할 만큼 중국내에서도 알아준다고 합니다.

저녁이면 부녀자들의 집단체조가 벌어집니다. 체조라기보다는 무용에 가까운 동작입니다. 동네마다 공터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놀이에 관한 중국인들의 특징은 개인으로 보다는 집단으로 어울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동의 여름을 불쾌하게 만드는 볼썽사나운 풍경이 한 가지 있습니다. 광방즈(光膀子)들입니다. 웃통을 벗어 제치고 거리를 활보하는 남자들을 말합니다. 그런 차림으로 버젓이 버스에 오르기도 하니까요. 젊은이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여자친구와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하면서도 상반신은 벗고 다니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태그:#압록강, #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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