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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벌써' 반 년, '결국엔 이제' 반 년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을 억울하게 잃은 유가족들의 더딘 마음과는 상관없이, 살겠다고 망루에 올라 처참한 주검이 되어 내려왔던 그들을 잃은 지 꼭 반 년을 흘러와 있습니다.

 

무심히 흘려보낸 우리의 시간은 '벌써' 반 년이지만,

이 더운 여름에조차 추운 겨울 속에 남편, 아버지를 두고 온 것 같아 매일 밤을 뒤척이며 그래도 이 악물고 살았을 유가족들의 반년은 182일이 아니었겠지요.

 

슬픔, 미안함, 원망, 다짐, 희망, 절망, 하루에도 수십가지의 감정들을 오가는 혼란의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희망' 한줄기 비친다면 그 빛 보고 살아냈을 반 년이겠지요.

 

매서운 한파 내려칠 때 죽임당한 그들을 영안실 냉동고에서 여전히 떨게 만들고 있단 마음에 한 건물, 따뜻한 이불 속마저도 죄스러웠을 유가족들의 반년은 6개월이 아니었을 겁니다. 병원비가 고스란히 5억이란 어마어마한 빚으로 쌓여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망자들에 대한 미안함의 빚에 숨막히셨을 시간이었을 테죠.

 

내복을 몇 개 덧입어도 추웠었는데, 검은색이라 더 많이 열을 받는 거 같다고 검은 상복 지긋지긋하게 입으셨던 유가족들의 반년은,

 

잊고싶지만 잊을 수가, 꿈에도 잊힐리가 없는 그 현장 바로 앞에서 매일 남편의, 아비의 이름을 되뇌이며 싸워왔던 그들의 반 년은,

 

억만금만큼이나 길었을, '결국엔 이제' 반 년이지 않았겠습니까….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망자를 살려낼 수도 없으니까요. 남편 잃은 아내에게 그의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울까요. 아비 잃은 자식들에게 그들 평생의 바람막이가 되고싶었을 그의 빈자리를 어찌 채울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 그러하기에 우린 더더욱 어찌하든 해야 합니다.

 

아비의 억울한 죽음에 책임자를 처벌하기는커녕, 그 아들이 살인범으로 구속되어있는 이 현실 앞에, 배 떵떵 두들기며 기름기 가득한 얼굴로 더 배불리겠다 한 적 없었던 용산 철거민들의 죽음을 돈에 눈 먼 과욕의 결과라고 우기는 뻔뻔한 그들 앞에, 우리, 최소한 함께 엉엉 울기라도, 억울해 땅이 무너질새라 쾅쾅 밟아대기라도 해야합니다.

 

가늠할 수 없는 아픔과 절망 앞에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이라도 나눠들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더욱 알알이 망울져야 합니다. 그리고는 이 긴 싸움을 이제 그만 정리하고자 하는, 망자들에 대한 미안함 보태어 그만 그들을 보내주고 싶어 하는 유가족들의 마른 가슴으로 흘러흘러 가야 합니다.

 

유가족들의 마지막 갖은 힘까지 쏟아부어질 오늘,

우리도 무언가 하나씩은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긴 겨울은 이제 그만 끝나야 합니다.

6개월의 지난한 싸움도 이제 그만 정리해야지요.

 

무엇이든, 무엇이라도, 유가족들의 심정에 잇닿아 있을 때입니다.
이젠 말로만이 아닌, 정말 그럴 때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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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오후4시,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민주수호를 위한 범국민대회"

그 자리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용산참사 희생자 고 이성수 열사의 아내, 권명숙님이 아들들에게 편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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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흔이, 상현이에게

 

사랑하는 상흔아, 상현아. 내일이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반년이 되는구나.

 

그동안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이 엄마는 아직도 상복을 벗지 못하고 있구나. 하기야, 어미가 무엇이 힘들겠니. 한참 뛰어놀아야 할 너희들이 상주가 되어 반년 동안 영안실을 지키고 있는데... 어미는 아버지를 잃은 너희들의 얼굴을 보며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지 모른다.

 

엄마는 아직도 그날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단다. 저녁에 집에 들어와 상흔이 네 얼굴을 쳐다보며 딱 닷새만 엄마 잘 챙기고 있으라는 말을 남긴 아버지가 그렇게 먼 길을 가실 줄 누가 알았겠니. 난생 처음 본 주검이 아버지의 불에 탄 시신이라니, 그것도 갈가리 난도질당한 시신이라니, 이 끔찍한 현실을 너희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어미는 아직도 네 아버지를 땅에 묻지 못하고 있단다. 슬프고 억울하고 한이 맺혀 네 아버지를 도저히 보내드릴 수가 없구나.

 

상흔아, 상현아. 누구처럼 많은 것을 탐하던 것도 아니고, 더 이상 발붙일 땅 한 뼘 없어 하늘로 쫓겨 올라간 것이 그만 마지막 길이 될 줄 누가 알았겠니. 단 하룻밤 새 우리 가정이 송두리째 뿌리 뽑혀버릴 지 누가 알았겠니.

 

고맙게도 너희들은 또래에 비해 어른스럽더구나. 힘든 마음들을 감추며 오히려 엄마를 위로하고 꿋꿋이 자리를 지켜주는 게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모른단다. 하지만 그런 너희들을 바라보는 어미의 마음이 반드시 편한 것만은 아니란다.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짐을 지고 그 나이에 누려야 할 것들을 꾹꾹 누른 채 어른이 되어가는 너희들을 볼 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을 어찌하겠니.

 

엄마가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아니? 엄마는 너희들이 '테러범'의 아들, '도시방화범'의 아들로 평생 낙인찍히는 게 제일 무섭고 두렵단다.

 

그래서 이 어미는 너희들에게 평생 멍에가 될 그 무서운 낙인을 지우기 위해서 아버지 영정을 들고 백방을 헤맸단다. 청와대도 가보고 국회도 가보고 시청도 가보고 구청도 가봤다. 그 무서운 검찰청, 경찰청에도 가보지 않았겠니.

 

그런데 아직까지 그 누구도 답이 없구나. 기껏 한다는 말이 네 아버지가 불질러 스스로 죽었으니, 자기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말이란다. 그러기를 벌써 반년이구나.

 

아들들아, 미안하게도 이제 엄마는 더 이상 울 힘조차 없단다. 그동안 우리 가족을 도와주시던 분들에게도 너무 많은 짐을 지우는 것 같아 송구스럽기 짝이 없구나. 그래서 엄마는 이제 마지막 결심을 했단다.

 

아직까지 나 몰라라 우리를 외면하고 있는 대통령이 똑똑히 보실 수 있도록 돌아가신 아버지의 관을 메고 내일 청와대로 가려고 한단다. 아버지의 장례를 지내주든지 아니면 어미까지 죽여 달라고 할 생각이란다. 끝끝내 하기 싫었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 어미의 마음을 이해해주려무나.

 

상흔아, 상현아. 조금만 더 힘을 내자꾸나. 돌아가신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고 부디 하늘나라로 편히 가실 수 있도록 조금만 더 힘을 내자꾸나. 사랑한다, 아들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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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월) 용산참사 반년, 범국민추모의 날

용산 대책위 홈페이지 글 발췌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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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분향 (오전8시부터-밤 24시까지)

 

- 용산참사 반년, 범대위 대표자 기자회견 (14시, 순천향병원 장례식장 1층 로비)

 

- 용산참사 반년, 위령제 (15시, 순천향 병원)

 

- 용산참사 반년, 천주교 시국미사 (19시, 용산현장)★★★★★

 

- 용산참사 반년, 범국민추모대회 (20시, 용산현장)

 

 

덧붙이는 글 | http://our-dream.tistory.com/ 중복게재


태그:#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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