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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경기도 남양주시 대성리다.

 

기자는 8일 밤 이곳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왔다. 오마이뉴스 인턴기자에 지원하고 1차 합격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 긴장을 풀까 싶어 길을 나섰다. 친구 집은 인근 산 중턱에 위치한 3층짜리 전원주택이다. 오랜만에 만난 둘은 수다를 떨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9일 오전, 1차 합격 전화가 오고 뛸 듯이 기뻤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사건은 시작됐다.

 

비가 엄청나게 오기 시작했다. 그저 장마려니 생각했는데 어디선가 물이 콸콸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가니 내린 비가 산에서 흘러내려와 집 뒷마당을 뒤덮고 있었다. 찐한 황토물이 쌓아놓은 나무더미를 넘어서, 돌담을 넘어서 폭포처럼 흘렀다. 뒷마당 잔디위로 흙이 쌓여만 가고 비는 철철철 내렸다.

 

손님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집 안에 있던 여자 4명 모두 달라붙어 삽질을 시작했다. 식수통이 있는 곳으로 빗물이 흘러내려가지 않도록 길을 내고 나무를 쌓고 돌을 옮겼다.

 

하수구가 막히지 않도록 이물질을 계속 걸러냈다. 비를 쫄딱 맞으며 대여섯 시간을 삽질하고 길을 냈다.

 

혹시나 보일러실에 물이 들어갈까봐 계속 물길을 돌리고 물을 뺐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뒷마당의 잔디는 구석의 일부만 남기고 형태도 없이 덮여버렸고, 이 곳이 뒷뜰인지 알아볼 수 없을만큼 흙만 여기저기 쌓여 물길대로 흘러갔다.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했다. 뭐라도 해보려고 애썼지만 노력만큼 큰 성과는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뭐라도 해보는 수밖에.

 

친구와 물길이 시작되는 쪽으로 올라갔다. 초입부터 막아볼 의도였다. 물길의 시작은 높은 곳이었지만 작았다. 그런데 물이 흘러 내려오면서 가속도가 붙어 급류가 되었다. 빗물은 협곡을 형성하며 흐르고 있었다. 도저히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푹푹 빠지는 장화를 건져가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빗물에 젖을대로 젖었고 기분도 축축해졌다. 감기에 걸릴 것 같았다. 이웃집 아저씨도 오시고, 친구의 아버지를 부르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쏟아지는 비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대충 정리를 하고 일단 집에 들어왔다. 씻으려고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황토물이 나온다. 이런.

 

그동안 참았던 소변을 누고 물을 내렸다. 설사인지 뭔지 모를 찐한 황토물이 변기 반을 채운다. 아, 이런.

 

기자는 늘 아파트에만 살았던 터라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새삼 아파트의 편리함에 감사함을 느꼈다.

 

모두 지치고 피곤한 상태에서 일단 몸을 대강 닦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음식을 먹은 후 각자 휴식시간을 가졌다. 비 냄새가 몸에서 나긴 했지만 이따 비가 덜 오면 투명한 물이 나올꺼라 생각하고 일단 쉬었다. 가느다란 빗소리에 마음이 한결 놓였고, 쉬는 동안 긴장도 풀어졌다. 그렇게 날도 어두워졌다.

 

그런데 갑자기 당황하는 목소리로 친구가 말했다 "화장실에 물이 안 나와" 아까는 황토물이 나오긴 했지만 갑자기 안 나온다니 이게 무슨 소리?

 

수도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비와 함께 쓸려온 황토가 쌓여 어딘가 관을 막았거나 펌프 사이의 작동을 방해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수도의 문제는 단순하지가 않았다.

 

친구와 친구 가족들은 어디가 문제냐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날이 밝으면 해결하기로 했다.

 

결국 난 집에도 가지 못했다. 간단히 말하면 집에도 수해가 났다. 방바닥이 물에 잠겨 씨디며 책상이며 이불이며 다 젖었단다. 이제껏 인간이라는 작은 동물의 집단이 해내는 크고 어마어마한 일들과 사건들을 보며 인간의 힘을 믿고 인간에 기대어 살았다. 이번 경험은 나에게 자연 앞에서의 인간의 무력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철철 내리는 비와 넘치는 물길 사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기분이란. 어쩌면 면접 준비한다고 책 몇 자 읽은 것보다 더 큰 공부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10일 아침 7시, 기자는 이제 면접을 보러 오마이뉴스 사무실이 있는 상암동으로 가야 한다. 몇 시간동안 비를 맞고도 씻지 않은 몸으로, 비에 푹 젖은 머리를 살짝 드라이기로만 말려서 얼버무린 머리로 친구의 큰 옷을 입고 버스를 탄다.

 

부디 수해 복구에 힘쓴 처지를 헤아려 비 비린내 나는 면접자에게 관대한 눈길을.

덧붙이는 글 | 집중과 선택을 위해 수해가 일어난 직접적 원인에 대한 설명을 쓰지 않았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 수해는 천재가 아닌 인재였습니다. 친구 집 윗쪽에 집을 지으려고 하시는 분이 산을 깎아 터만 닦아놓고 집을 아직 안 지으셔서 그 땅의 흙들이 빗물따라 유실되어 흘러왔던 것이 문제의 원인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나무가 있었던 작년에는 이런 큰 피해는 없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했던 일들이 이렇게 다시 피해로 다가오는 사건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낍니다.


태그:#경기도 남양주시, #수해, #수해복구, #인간의 무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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