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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정국의 회오리가 몰아치던 2004년 어느 날. 신문에 글이라는 걸 써본 적 없던 필자가 답답한 마음에 기고를 했던 적이 있다. 탄핵을 반대하는 전국적 촛불 시위를 '친노' 세력 일부가 벌이는 불순 세력의 음모라 몰아세우고 집시법이라는 구태의연한 법을 들먹이며 시위자들을 위협하던 당시 상황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금의 언론 보도를 보다보면 마치 탄핵정국 그 당시로 돌아간 것 같이 너무 똑같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민심의 동요가 대규모 시위로 번질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6.10 집회 자체를 막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서울시청 앞 광장 등 대규모 집회가 가능한 광장들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극단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물론 표면상 극우성향을 띤 단체들이 먼저 사용 신청을 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내세운다. 그러나  6.29선언을 이끌어내고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발판을 만든 1987년에 일어났던 6.10 민중항쟁의 기념행사와 극우 시민단체에서 신청한 차량 10부제 참여 촉구 캠페인 행사를 같은 비중으로 올려놓고 본다는 것 자체가 현 정부의 시대 의식의 결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억울한 서거를 준비 없이 맞닥트리면서, 또 그 이후에 진행되는 여러 가지 정부의 대응 조치들을 보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컴퓨터 자판 앞에 앉았다. 현 정국이 탄핵 정국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필자처럼 실험실에서 연구하며 논문이나 쓰는 민초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려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이 자체가 현 정국의 심각성을 웅변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탄핵정국 당시 필자가 썼던 글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날의 상황과 맥락이 닿아 있어 이 글을 먼저 소개하는 것이 필자의 글을 개진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이다.   

 

제목: 인간적인 대통령 노무현이 나는 좋다-일그러진 제왕적 대통령상은 가라

 <2004년 탄핵정국이 휘몰아치던 어느 날 쓴 글>

우리 민족은 정말이지 오랫동안 독재와 싸워 왔다. 일제 36년간의 강점기를 포함하여 약 100여년을 자의건 타의건 간에 우리가 원하지 않았던 지도자들을 모시고 통치기간 내내 늘 우리 스스로를 자책하며 그렇게 살아왔다.

 

생물학적으로 한 세대는 30년이다. 아버지의 아들이 아버지가 되고 그 아들이 다시 아버지가 되어 아들을 낳고 또 그 아들이 아버지가 되어 지금 10살 정도 되는 아이를 가질만한 그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비록 이 기간 말미에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있긴 하였으되 이 기간 역시 정치 문화 자체가 독재의 잔해 속에서 완전히 빠져 나왔다고 보기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긴 독재의 터널 마지막을 장식한 그 두 대통령들은 모두 노회한 정치인들이었다. 개혁을 앞세웠지만 긴 독재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그들도 바짓가랑이에 진흙이 묻었고 톡톡 튀고 급변하는 현 세대의 흐름과는 왠지 멀어 보이는 그런 인물들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젊다. 노무현은 우리가 직접 선택한 몇 안 되는 대통령 중 가장 젊다. 물론 그도 독재와 싸운 인물이어서 진흙이 바지에 조금은 묻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뭔가 다르다.

 

우리는 100여년의 세월을 강점과 독재에 혀를 내두르며 살아오면서도 어느새 그러한 독재자의 상이 곧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진정한 대통령의 상으로 둔갑해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일은 섬뜩하다. 중정, 안기부, 삼청교육대, 살생부, 밀실, 음모, 담합, 검은돈, 정경 유착 등과 같은 네거티브한 말들로 대변되는 그 시절에 대통령은 무게만 잡으면 될 일이었다. 말을 많이 할 필요도 없었다. 모든 일들은 음지에서 명령하여 해결할 수 있는 막대한 권력이 있는데 말로 떠들 필요가 없다. 누구도 이 절대 권력자에게는 고개를 숙인다. 언론도 막혀 있다. 그 가운데 누구든지 어깃장을 놓으면 원할 때 언제든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할 수 있었던 그런 시절엔 자기의 말이 곧 법인 것을 말을 많이 할 필요가 없다. 제왕적 대통령의 말실수는 언론에서 모두 통제되어 나간다. 그래서 늘 실수도 없고 판에 박힌 듯 점잖은 사람이 대통령이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 때부터 구시대의 제왕적 대통령상만을 경험한 우리는 참된, 올바로 된 대통령상을 갖고 있지 못하다. 경험한 적이 없다. 그런 불운한 우리에게 노무현은 말이 참 많게 느껴지고 대통령처럼 느껴지질 않는 게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노무현은 옆집 형 같고 평범한 아저씨 같다. 노무현은 억울한 일이 있으면 법원에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를 하기도 하고 신문기자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자신의 실언이나 무의식적으로 한 농담들이 신문 일면을 장식할 때면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장탄식을 늘어놓는다. 이러면 또 이 말이 신문에서 그를 때린다. 늘 강자에게, 그리고 천민적인 엘리트들에게 당하고 깨지며 살아온 우리 사회의 약자들인 민초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왕적 대통령에 익숙해진 천민 엘리트들에게 이런 대통령은 당혹스럽고 존경하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가 한때 가장 이상적인 가정상이라고 생각 했던 적이 있었다. 엄한 아버지는 무섭고 말 수가 적고 속에 마음은 있지만 표현하지는 않는, 그렇지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단칼(전제적으로)에 해결하는 그런 아버지가 가장 이상적인 아버지 상이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이제는 말을, 즉 대화를 하는 시대다. 자식일지언정 의견을 들어 보고 최종 결정을 내리고 무엇이든지 아버지 단독으로 뭔가를 처리했다가는 독단적이라는 말을 듣기 일수 이고 자식 교육에 대한 부족함으로 추가적인 부모교육을 받아야한다고 되박을 맞는다. 모든 걸 상의해서 해야 하고 민주적으로 처리해야하는 그런 시대다. 심지어 오늘날에 아버지들은 사안에 따라 자기의 곤궁한 처지를 아이들에게 혹은 아내에게 강변하고 이해를 구하기도 하는 모습들이 자연스러운 그런 시대가 되었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대통령이 필요하다.

 

제왕적인 대통령상의 악령을 우리는 떨쳐 버려야 한다. 박정희나 전두환과 같은 인물들을 카리스마 있고 결단력이 있다고 미화하며 노무현을 불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기의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 어찌 나쁘다는 것인지 난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시대의 변화와 부합하고, 민주주의적 시각에서 보아도 틀림이 없다. "불안하다" 거나 혹은 "무게가 없다"거나 "대통령답지 못하다"거나 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잘못된 대통령상에서 오는 불행한 과거 영상의 잔재로 인한 오판이자 기우이다. 우리는 어려우면 어렵다고, 기분이 좋으면 좋다고, 자신감이 있으면 자신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대통령이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노무현이 새 시대의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의 잘못이 아니라 지난 한 세기동안 잘못된 공포 적이고 제왕적 대통령이 참 대통령이라고 하는 마음판 깊숙이 각인된 잘못된 이미지가 문제라는 걸 나는 안다. 극히 인간적이고 서민적인 이런 대통령을 나는 정말이지 눈물 나게 기다렸다.   

 

노무현은 힘이 없는 대통령이지만 그에겐 끊이지 않고 솟아나는 웅대한 힘이 있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대통령이 가졌던 그런 권력의 힘은 그에게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갖지 못했던 그런 힘, 권력과 무관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대통령에게 보내는 진정한 국민적 사랑의 힘이 바로 그것이다. 비록 30%의 낮은 지지율이라지만 이 지지율은 군부 독재시절 언론이 통제되고 정보가 극히 일부 수뇌부에게만 국한하여 흘러갔던 그런 어두운 시절의 90% 이상의 지지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지지율이다. 모든 언로가 개방되고 인터넷을 통해 무슨 이야기라도 삽시간에 퍼지는 이런 세상에서 마음으로 부터 우러나오는 30%의 지지는 결코 낮은 지지라고 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 독재적 대통령상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갈 때, 우리는 노무현을 새 시대의 대통령이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어서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조금은 두서없고 긴 글이지만 탄핵정국이 휘몰아칠 때 썼던 부족한 글이다. 재직하고 있는 대학 게시판에만 잠시 실렸던 글이다. 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임기 중 내내 우리가 이전에 경험했던 적이 없는 새 시대의 대통령이라고 생각했고, 그 관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니 오히려 더욱 더 그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끊이지 않는 조문 인파를 "노빠"들의 결집이라고 폄훼하는 일부 보수 언론들이 있고, 유래가 없는 새로운 사회 현상으로 연구 대상이라고 의아해하며 바라보는 사회학자들도 있지만, 이는 언론의 자유로운 보도가 보장된 문화(인터넷이 큰 역할을 담당한 것이 사실)속에서 참된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거의 유일한 대통령인 노무현에 대한 백성들의 사랑이 현실로 드러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참 지지와 사랑은 분명히 언젠가 드러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서거를 통해 이것이 보다 전면적으로, 일찍이 현실화되어 드러난 것이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서거 후 몰린 인파와 통곡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을 옆에 두고도 그 사람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 채, 아니 때로는 자기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지 조차도 깨닫지 못한 채, 불평과 불만만 쏟아 놓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막상 떠나보내고 나서야 그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 빈자리를 부여안고 통곡하는 바로 그것이다. 막상 보내고 나니 그 사람을 내가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그리고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사랑했었는지를 알게 되고 그 사람의 사랑에 화답하지 못했던 자책감과 미안함에 터져 나오는 슬픔이 작금의 민초들의 마음이다.

 

남녀노소의 구분도 없다.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을 잃은 것과 동일한 슬픔이 지금 우리네 민초들이 느끼는 마음이다. 이것은 권력 지향적이고 제왕적인 대통령에게서는 나올 수 없었던 새 시대의 힘이다. 새 시대의 대통령만이, 참된 지도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힘 말이다. 

 

탄핵 정국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왜냐하면 노무현 대통령 재임 당시에 보수 언론의 지독한 견제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동조나 칭찬의 말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던 시기가 상당기간 이어졌었기 때문이다. 아니 노무현 대통령 서거 전까지도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왕적 대통령의 전형적 행태를 답습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등장과 맞물린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 서거가 노무현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는 역사적 순간의 도래를 한발 앞당겨 주는 동력이 되었다. 제왕적 대통령의 망령이 쳐놓은 일그러진 대통령상이 참된 것이라고 믿어왔던 그 올무에서 우리 민족이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주고 그가 떠난 것이다. 지난한 혼란의 시기를 거쳐 오면서 참 지도자상에 대한 기억마저 혼미했던 우리에게 궁극의 지도자 상에 대한 비전을 우리에게 확실히 심어주고 그는 떠났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후 49제가 아직 지나지 않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그 오래된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추동력을 갖게 된 것은 민족적 역사적 사건이다. 우리는 새 시대를 연 참 대통령을 잃은 슬픔과 구태의연한 제왕적 대통령의 망령에서 벗어나게 된 해방감을 같이 누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세상을 향해 우는 울음 같은 그 무엇이 섞여 있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은 평생을 간다. 이 역사적 순간을 백성들은 카메라로 찍듯 마음판에 새겨놓고 평생을 기억할 것이다. 그 분이 품었던 백성들에 대한 사랑이, 그 분의 유지가 우리의 마음에 살아있는 한 그 힘이 동력이 되어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루지 못한 우리나라만의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사람 사는 세상,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세상을 이룰 수 있는 그 날이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필자는 느낀다.

 

새 시대를 연 새 시대의 대통령과 인생의 한 자락을 공유했던 것만으로도 필자에겐 가슴 벅찬 행복이다. 그 분이 꿈꾸었던 그 나라와 그곳을 향한 비전이 우리 민족의 힘과 긍지가 되어 역사 속에 길이 남아 있으리라.  

덧붙이는 글 | 황의욱 기자는 경북대학교 생물교육과 교수입니다.


#노무현 새 시대 대통령#제왕적 대통령의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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