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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16일 일본 치바현에서 '제40회 한일경제인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과 일본의 경제단체인연합회(경단련)이 양국을 격년제로 오가면서 개최하는 경제 관련으로서는 매우 비중있는 행사입니다. 양국 경제인 300여명이 모여서 양국간 경제협력에 관한 현안에 대한 진단과 상호협력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당연히 한일간 FTA의 재개여부와 무역역조현상 타개책, 그리고 부품소재문제 등에 대해 주제발표를 듣고 진지하게 논의하게 됩니다.

 

금년에는 부품소재분야 협력에 관한 논의와 합의가 비중있게 담기고 아세안과의 경제협력체 구상에 대한 일본측의 제안이 여러 발표자들을 통하여 제기되었습니다. 일본측의 아세안과의 경제협력공동체 구축에 관한 제의는 한일간 양국협력방식에서 다자간 협력방식으로 논점을 바꾸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이번 회의에서 비중있게 다루어진 무역역조문제를 살펴보면 역시 ‘부품소재’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일본은 '소재부품'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부품소재'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제품의 한 부분으로 보고 수직계열적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일본은 제품의 근원이 되는 소재로부터 부품이 만들어지고 제품의 부분품이 된다는 발상으로 출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 순서를 바꾸어 부르는 호칭문제가 무어 그리 중요하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별로 부품소재의 해법을 찾는 방법론적인 측면에서는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제조기술강국이라고 자부하는 일본이 2003년부터 제조현장혁신을 위해 모노즈쿠리법령을 만들어 소재기술의 우위를 지속하기 위해 전국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소위 '소재전쟁'에서 기술의 근원을 지키겠다는 계산입니다. 우리는 2001년에 부품소재특별법을 만들어 부품 개발에 힘쓴 결과 글로벌시장을 파고 든 많은 핵심부품을 창출해 내었습니다. 카메라렌즈모듈, 캐패시터, 소형모터, SAW필터, LED, BLU, 산업용 극세사 등등입니다. 그러다가 지난2006년부터 부품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있으니 다시 원천소재를 개발해야 한다고 별도의 자금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기본을 놓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갭이 좁혀들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부품소재' 문제는 대통령께서 직접 챙기시겠다고 나서실까요.

 

부품소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방법에 있어서는 양국이 분명한 시각차를 드러내었습니다. 한국은 흑자의 위치에 있는 일본이 불균형을 시정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본은 무역역조란 시장원리에 의해 사고판 결과에 의한 수치이기 때문에 불공정한 요소가 없는 한 일방적으로 시정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대체로 한국 중소기업이 건실하고 규모있게 성장하면 자연히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게 되기 때문에 국가간에 해결할 부분이 적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경제인회의에서 한국에서 근무하는 일본계 회사의 한국지사장께서 발언한 내용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무역역조현상은 단기에 좁혀지지 않는다. 특히 한국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이 높아지지 않고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모든 산업의 근간이 되는 생산기반기술(금형, 주물, 열처리, 소성가공 등)이 탄탄해 지지 않고서는 무역역조도, 기술격차도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서 양국은 한국의 중소기업, 특히 부품소재에 근간이 되는 생산기술을 지원하는 장기전략으로 접근해야 한다"라는 요지였습니다.

 

일견 늘상 하는 말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게 근본입니다. 아무리 일본으로부터 기술공여를 받고 싶어도 기반기술이 단단하지 않으면 효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기술로 먹고사는 강국들이 돈되는 기술을 넘겨줄 리 만무입니다. 우리가 일본에게 '투자 많이 하라'고 하지만 돈되는 사업에는 이미 투자를 해서 이익을 내고 있습니다. 태양유전, 아사히글라스가 대표적 예입니다. 그린필드형 투자를 통하여 좋은 기술을 이전해 달라고 하지만 그런 기술을 왜 주겠습니까.

 

부품소재육성정책이 부품소재 자체로서만 성공하기 어려운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생산되는 부품이 가격면에서나 품질면에서 우위를 가지기 위해서는 우수한 생산기술이 뒷받침되어야합니다. 독일과 일본의 부품이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이유는 오래된 장인정신이 뒷받침되는 생산기술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비약이 있긴 하지만, 부품소재강국은 모두 세계전쟁을 일으킨 나라들입니다. 독일도 일본도 그렇습니다.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면 무기나 물자를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특히 소재부품을 자체 조달하여야 하기 때문에 기술발전이 선행되게 됩니다. 그들처럼 우리가 세계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만, 그런 이유에서 본다면 결국 부품소재강국으로 가는 길은 자체적인 노력만이 해결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남에게 빌리거나 얻어 오는 기술은 진정한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40회에 이른 이번 한일경제인들이 만난 회의에서도 '앞으로 좋은 관계로 협력을 하자!'라는 말로 맺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런저런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면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조간신문을 보았습니다. 일본 문부성이 일본교과서에 독도영유권이 일본에 있다는 내용을 적극 홍보키로 했다는군요. 과거를 잊고 미래로 가자면서 양국 정상이 잘해보자고 손잡았던 게 엊그제인데 말입니다.

 

한일간의 협력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일관계는 사회문화적으로 우선 무언가 끝장내어야 할 사안이 있습니다. 걸핏하면 불거지는 독도문제, 신사참배, 교과서문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FTA, 동북아공조, 아시안+6 경제협력체, 한중일 분업체제 등이 제대로 될 리 만무겠지요. 그걸 선행하지 않고서는 산업·기술적 협력은 ‘처삼촌 벌초’하듯이 빙빙 애둘러 의례적으로 하는 얘기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꼭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습니다. 늦었지만 '소재부품'을 해야 할 때입니다. 소재부품을 살리기 위한 '생산기술'에 매진해야 합니다. 기본과 기초에 집중하는 길 만이 소재부품을 살리고 대일역조개선의 실마리라도 살리는 길입니다. 


#기술경쟁력#부품소재#기술혁신#제조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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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의 모자라는 부분에 대해 지원을 하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기술, 자금, 인력, 정보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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