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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아, 물병에 시원한 물 좀 담아와. 사과도 몇 개 담고."

"또, 다른 건 없어도 돼?"

 

주말 아침, 우리 집에선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아빠는 등산준비로 분주하시다. 옆에서 심부름을 하느라 나 또한 분주하다. 부엌식탁이 등산갈 짐들로 쌓이고 나서야 준비는 끝이 난다.

우리 아빠는 산을 매우 좋아하신다. 아니, 사랑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주말은 가족과 함께 보내시지' 하는 투정은 이제 부리지 않는다. 가족들은 이미 아빠의 산 사랑을 잘 알고 있기에.

2000년, 아빠는 백두대간을 완주하셨다. 마음 맞는 동료들과 이른 새벽 출발하여 밤늦게 집에 돌아오시는 날이 많았다. 사정이 생겨 함께 하지 못한 구간은 혼자 시간을 내 꼭 다녀오신다. 그렇게 아빠가 없는 주말이 여러 번 지나고서 아빠 책상에 두툼한 공책 한 권이 생겼다. 백두대간을 완주하시면서 찍은 사진과 아빠의 생각들. 그간의 고생과 상념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나는 아빠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빠, 산에 왜 가?"

"정신건강에 좋잖아. 마음에 여유도 생겨. 참, 경치도 끝내줘!"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힘들게 올라가서 정상에서 야호를 외치고 다시 내려온다. 어린 시절, 내가 내린 등산의 정의다. '등산은 힘들고 재미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박혀있었다. 그러나 이제 아빠에게 산에 왜 가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내가 그때보다 크고 보니 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에. 정신건강, 마음의 여유. 아빠의 대답 속에 해답이 있었다.

등산을 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산을 오르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경치를 보며 자연의 위대함을 새삼 느낀다. 또 상쾌한 공기와 산의 큰 품 속에서 우리의 걱정과 고민, 스트레스가 날아가 버린다.

 

우리 아빠의 보물, 기타 

 

아빠가 등산만큼 좋아하시는 것이 또 있다. 우리 아빠의 트레이드마크인 노래와 기타연주. 아빠의 책상 위에는 악보가 한 가득, 옆에는 기타가 항상 자리 잡고 있다. 정말 하루도 빼놓지 않고 퇴근 하시면 방으로 들어가 기타를 메신다. 늦은 밤에 시끄럽다고 엄마가 말려보지만 언제나 아빠가 이기신다. 그렇게 30여 분이 지나고서야 닫혔던 방문이 열린다.

 

노래와 기타연주를 좋아하는 아빠는 몇 년 전부터 노래봉사를 하신다. 경북 영주시 외곽에 위치한 '다미안.' 이곳은 한센병 환자들이 생활하시는 곳이다. 다미안 수녀님께 봉사의 뜻을 전하신 뒤, 시간이 되는 토요일 오후에 그 곳을 찾으신다. 봉사가 있는 날엔 다미안이 노래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노래봉사를 하신다고 했을 때 '아빠가 좋은 일을 하시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같이 가지 않을래?"라고 물으시면 나는 "거기 가서 뭐해. 그냥 안 갈래"라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따라간 그곳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열창하시는 아빠의 얼굴과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얼굴에 가득했던 웃음을 통해.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누군가 나로 인해 웃고 즐거워한다면 그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앞에서 기타연주를 하시며 노래하는 아빠가 참 행복해 보였다. 그동안 노래봉사를 다녀오신 날에는 왜 그렇게 아빠 기분이 좋았는지 알 것 같다. 말도 없으시고 잘 웃지 않으시던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그 시간만큼은 행복해 보였다. 기타와 악보, 아빠의 목소리가 사람들을 웃게 했다.

 

새삼스레 다시 보게 된 아빠의 취미

아빠의 등산과 기타연주를 글로 쓴 것은 아빠의 취미가 새삼스레 다시 보였기 때문이다.  항상 우리 앞에서는 에너지 넘치는 강한 아빠. 힘을 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취미생활이 답이었다.

아빠는 등산하고 신나게 기타연주를 하시면서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신다. 산이 주는 많은 선물과 노래봉사가 주는 웃음, 이 두 가지는 아빠에게 에너지 활력소다.

 

조금은 어른이 된 딸이 아빠를 이해해보고 싶었다. 아빠의 취미가 그 시작이다. 비록 지금은 힘들지만 기회가 되면 아빠의 취미를 함께 해보고 싶다. 아빠를 더 알아가고 이해하기 위해.

 

오늘도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딸, 뭐하고 있어?"

"난 그냥 집에 있지, 아빠는?"

"아빠는 아저씨들이랑 산에 가는 중이지!"

 

전화기 건너편의 목소리는 어느 샌가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오늘도 우리 아빠는 에너지 충전 중이시다.


태그:#등산 , #기타연주, #취미, #아빠,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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