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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보이자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물로서 600년 동안이나 중앙에 서 있던 오래된 대문이 파괴되어버렸다(A 600-year-old gate in central Seoul listed as South Korea's number one national treasure and the country's landmark symbol has been destroyed)."
 
2008년 2월 12일자 <뉴질랜드 헤럴드> 신문 월드뉴스에 실린 남대문 화재 참사와 관련된 기사의 첫머리이다. 이 조용한 나라, 월드뉴스라고는 약간의 영국과 미국 소식이 대부분인, 에서 한국 뉴스가 실린 정도라면 뉴질랜드 사람들이 느끼는 사건의 충격 또한 매우 컸으리라 짐작된다. 
 
"오마이 갓! 화재 원인은 뭐라나요?"
 
아니나 다를까? 오늘 한 뉴질랜드 사람이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며 나에게 보라고 가져다준 이 프린트를 본 순간 나는 참담하다 못해 부끄러웠다. 마치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체념과 울분이 섞인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그러나 차마 표현하지 못한 채 묵묵히 그 프린트를 보고 있자니 그 뉴질랜드 사람은 매우 호기심을 가지면서 나에게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화재원인이 뭐죠? 전기로 인한 건가요?"
"아니요. 어떤 사람이 남대문에 올라가 방화를 했는데 이미 경찰에 잡혔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방화를 한 원인은 무엇이지요?"
"아직 자세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 사람이 다른 건물을 방화하려다 실패한 과거를 보건대, 약간 정신적인 문제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렇게 얼버무리려 했더니 옆에 있는 한국사람이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을 이어갔다. 
 
"새롭게 선출된 대통령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기 위해서 불을 질렀다고 하네요."
 
그는 조목 조목 짚어가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화재사고가 난 후 소방서와 문화재관리청 사이에서 벌어진 지붕 들쳐내는 문제에 대한 설왕설래는 물론이고, 화재를 막기에는 너무 적게 비치된 소화기, 스프링클러와 같은 설비가 안 되어있는 문제점 등등을 말하면서  이 원인이 모두 새로 당선된 대통령이 어리석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논점을 비약시켜 나갔다. 
 
그러나 나는 신나게 자신의 생각을 그들에게 토로하는 그를 바라보며 왠지 불안스러웠다. 물론 대한민국 국보 1호가 한 사람의 단순한 방화로 인해 너무나 허무하게 파괴된 결과에 대해서는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부끄러워 하며 정부의 늑장대처에 대해 분노할 것이다. 특히 이번 남대문 화재의 발생 원인이나 정부의 잘못된 화재 예방대책 및 대처방안에 대해서는 우리 스스로 천 만 번 분석하고 자성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만 아직 그 사람이 범인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수사결과가 나오지도 않았고 방화 원인도 아직 밝혀진 것이 없는데 굳이 이 순간, 한국인이 다른 나라에서, 그것도 마치 남의 일처럼 화재 원인이 새로운 대통령 때문이라는 식의 논리를 펴면서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에게 설명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행동일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갔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자칫 외국인에게 자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문화재에 대해 방화를 서슴지 않는 매우 폭력적인 성격의 한국인, 어떠한 화재 대책도 없는 무능한 한국정부라는 식의 오해를 남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거침없는 말 속에 잘못 심어지는 우리 이미지
 
그렇지 않아도 이들은 그들의 TV나 신문에서 단순하게 보여지는 자극적인 우리의 모습, 예컨대 화염병을 던지는 우리 학생시위나 노사분규를 보며 매우 폭력적이고 거친 국민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기억할 것이다.
 
그들은 한국인이 왜 화염병을 던질 수밖에 없을까 하는 이유를 생각하기 보다는 화염병을 던지는 위험한 행동만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즉시 손짓발짓을 동원하여 그에게 이러한 식의 내용을 담아 말하려고 노력했다.
 
"한국에서 화재가 발생하자마자 급히 소방서에서 출동하여 신속하게 화재를 진압했지만 불행히도 지붕 속에 숨어있던 불씨를 발견하지 못해 화재가 다시 번지게 되었고 복잡한 기와 구조로 인해 완전한 화재진압이 어렵게 되자 기와를 벗겨내어 불을 끄자는 주장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와 또한 오래된 문화유적이므로 자칫 잘못 다루면 훼손되기 쉬워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조심조심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는 동안 가급적 기와를 벗기지 않고 화재를 진압하려다 불행히도 건물이 붕괴되는 나쁜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나는 기와를 벗겨내지 않아 남대문의 화재를 막지 못했다는 생각은 나쁜 결과에서 단순하게 추론한 생각이라고 본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불행한 결과를 예상했다면 기와를 모두 훼손해서라도 남대문의 파괴를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정부관계자로서 그 당시 화재를 막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했다면 그 결정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재 보호와 화재진압 중 하나만 선택하는 일은 매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며 가급적이면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불을 끄는 최선의 방법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당시 현장의 소방서 관계자라면 어떤 행동을 취했겠느냐?"
 
하고 질문했더니 그 사람 또한 매우 어려운 선택일 거라고 동의를 하며 예전 각국에서 벌어진 비슷한 문화재 화재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이건 매우 사소한 해프닝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비판적인 시각을  다른 사람에게 별 생각없이 이야기 했다가 그 사람에게 한국인에 대한 이상한 이미지를 심어주게 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기 때문에 더욱 말하기가 무서워진다.
 
물론 이러한 나의 염려가 너무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현실은 종종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진행되는 것을 이곳에서 꽤 많이 보아왔다.
 
복날이 'DOG DAY'가 된 사연
 
다시 며칠 전의 이야기이다. 이번에 내게 신문을 보여준 그 뉴질랜드 사람이 나에게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인에게 들었는데 한국에는 특별히 개를 먹는 'DOG DAY'가 있다면서?"
 
DOG DAY라. 이 웬 시츄에이션? 아마 그 한국인은 복날에 먹는 보신탕에 대해 설명하다가 복날을 이해하기 쉽게 'DOG DAY'라고 설명했으리라 추측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뉴질랜드인은 한국에는 'DOG DAY'라는 특별한 날이 되면 모든 한국인이 보신탕을 먹는다고 오해를 하고 있었다.
 
물론 개를 먹는다는 것이 전통적인 관습이자 고유한 식문화인지라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지만 과장된 설명에서 비롯된 그 사람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나는 잘 되지도 않은 영어로 손짓발짓하는 쇼를 얼마나 오래 했어야 했는지….
 
이럴 때마다 나는 커뮤니케이션이란 정말 중요한 것이라고 절감하게 된다. 같은 말을 쓰는 한국인들끼리도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아 오해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은데, 하물며 외국인과의 대화야 더욱 더 오해의 소지가 많기 마련이다. 한 번 잘못 심어진 국가 이미지를 고치는데 들어가는 홍보비용은 천문학적이며, 홍보를 한다고 단시간에 그 국가의 이미지가 고쳐지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상징물인 숭례문이 화재로 붕괴되었다는 사실은 정말 한국인으로서 참을 수 없이 부끄럽고 허무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우리끼리 혹독한 비판은 얼마든지 논의되어야 하며 사후약방문식이라도 더 이상의 참담한 재발을 막기 위한 완벽한 대비책을 완비하는 것은 수천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외국인에게 우리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좀 더 신중한 자세와 생각을 가지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국민성금으로 숭례문 복원하자고? 
 
그런데 오늘 남대문 복원을 국민성금으로 복원하자고 주장했다는 대통령 당선인의 의견을 보며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남대문 화재원인을 통해 화재에 취약한 우리나라의 허술한 문화재방재대책에 대한 반성과 완벽한 대비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에 왠 복원. 그것도 정부의 관리 허술로 된 잘못을 국민성금으로 복원하겠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파고 들어야하는지. 이러한 발상에 대해 외국인에게 어떻게 말해야 될지 정말 걱정된다. 불행하게도 한국 정부가 정말 어리석다(stupid)고 말해야 하는 사태가 오지 않을는지.
 
혹시 정말 그 한국인의 말대로 대통령 당선인은 600년이 되었든 500년이 되었든 화재가 나 부서진 건물은 국민으로부터 성금을 모아 다시 멋있게 지으면 된다는 얄팍한 문화재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심히 걱정된다. 또 임기가 얼마남지 않은 현직 대통령은 그렇게 말씀하시기 좋아하면서 숭례문 화재 사건에 대해 하다못해 슬프다는 말 한 마디 없으신지…. 그 속이 궁금하다.
 
불행하게도 한 번 부서진 600년 된 목조건물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게 국민성금이든 정부예산이든 말이다. 사직서를 냈다는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말대로 우리는 우리 세대에 문화유적을 훼손시켰다는 엄청난 죄를 후세에 저지른 것이다.
 
그런 판에 국민성금으로 남대문을 다시 짓는다고 땅에 추락한 국민의 자존심이 다시 돌아올까? 그건 아마도 스스로의 잘못에 대한 자기 위안 내지는 자기 합리화에 불과할 뿐이다. 외국인들에게는 이마저도 예전의 평화의 댐 모금운동이나 금모으기 운동처럼 정말 이해하기 힘든 황당한 일회성 해프닝으로 치부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지금 외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이러한 한국의 실태에 대해 또 어떻게 이들에게 말하야 할지 걱정하고 있다. 만약 정부가 이러한 실태를 이해한다면 제발 외국인도 납득할 수 있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행정절차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그들에게 더 이상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될테니까 말이다.

태그:#뉴질랜드, #숭례문, #뉴질랜드헤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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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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