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대학 합격증(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대학 합격증(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말 많던 수능등급제를 거쳐 마침내 아들이 대학 합격통지서를 보내왔습니다. 그것도 단과대학 수석이라는 성적과 함께 4학기 학비 면제라는 엄청난 덤과 함께 말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졸업 후 이곳 캐나다에서 5년이 넘는 외국학교 생활을 접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못해 본 중학 과정, 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치고 재수학원을 거치는 등 2년 만에 이룬 눈물의 결과라서 그런지 우리 부부에겐 그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아이가 이곳 학교생활을 적응하지 못하여 갈등을 일으킨 지가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이곳 고교과정 11학년(우리의 고2)을 두 번씩이나 시도했지만 아이는 거부하더군요. 달래도 보고 윽박지르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비행기를 태워 이모집, 고모집을 거쳐 고시원 생활까지 해내고는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셈입니다. 캐나다 국적의 아이가 거꾸로 한국에 유학을 한 셈이죠. '조기 역유학'이라는 신조어라도 만들 판입니다.

다들 유학오지 못해 안달인데... 왜?
이곳에도 한인 학생을 지도하는 과외학원이 있습니다. 언어장벽과 외국학교 생활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될 한인 학생들의 수업을 도와주는 학원이죠. 멀리 LA 같은 곳에는 한국의 '특례입학'을 돕는 학원까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이를 달래서 이곳 캐나다 고교를 마쳐서 한국의 '외국인 특례입학'이라도 권유하려 학원을 데리고 갔습니다.

"아니, 다들 이곳으로 유학오지 못해 안달인데 왜 거꾸로 한국행을 하려 하십니까?"
"우리 아이가 고집을 피우네요."
"특례입학도 좋지만 서울대학교라도 전세계 100위에도 들지 못하는데 반해 이곳 칼리지는 100위 내에 든 학교가 많아요."

학원장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나와 아이에게 돌아가며 설득을 시작하더군요. 못내는 '그 먼지 풀풀나는 한국대학을 왜?'라는 수식어까지 써가며 말이죠. 그렇게 시작된 아이와의 줄다리기가 이제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아이가 시작한 검정고시가 과연 외국 국적인 우리에게 해당할까? 수능 대비를 하였지만 과연 외국 국적의 아이에게 응시 기회가 주어질까. 우리 부부를 괴롭히던 그 많던 걱정이 이제는 눈녹듯 사라졌습니다. 수능을 앞둔 아이가 급기야 응시 여부에 맘을 졸이기에 교육부의 '재외동포 교육과'라는 곳에 아이가 직접 방문하여 응시 여부를 물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 많은 과정을 거쳐 얻어낸 단과대학 수석이라는 통보와 함께 실납부금 '제로(0)'란 합격통지서를 이제 우리 세탁소 카운터 위에 올려놓습니다. 한국 신문에는 영어에 대한 많은 기사들이 나고 있습니다. 어떡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현안들이 한국의 신문에 오르더군요. 하지만 이민자의 가장으로서 저는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 한국의 공교육이 문제 투성일까? 이곳의 북미대륙의 교육은 한국인들에게 천국일까?'

우리 가족이 몸이 불편하면 들러서 한약을 짓는 중국한의원이 있습니다. 3대를 차이나타운에서 한약을 짓는 중국 할아버지 한의사도 우리 큰 아이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큰아들의 영어명인 '다니엘'의 소식을 묻곤 합니다. 한 번은 저가 아이가 이곳 교육을 싫어한댔더니 한 마디로 동의하더군요.

"이곳 교육은 문제 투성이야? 아이들 바보 만들어."

한국의 공교육이 되레 나아보이는 이유 

이곳에 살아보니 알겠더군요. 우리 한국의 공교육이 많은 암기식의 학습방법이지만 그래도 '전인교육(全人敎育)'에 가깝다는 것을. 조기유학생들이 넘쳐나는 이곳 캐나다에서도 이런 근원적인 문제를 심사숙고하며 토론하는 분위기가 없습니다.

무조건 비행기에 태워 외국으로, 외국으로 보내기만 하면 무엇이라도 되는 줄 아는 편향적인 생각에 제동을 걸 수 없는 실정인 것 같습니다. 저는 부르짖고 싶습니다. '우리 가정같은 이민자 가정도 있다!'라고요. '이곳 북미대륙의 교육환경이 우리 아이들의 최상 교육 여건이 아니다!'라고요. '헛돈 쓰지 마라. 그 헛돈이 모여서 이곳 백인 아이들의 교육자금으로 다 들어간다!'라고요.

그렇습니다. 우리 아이는 이곳에서 열등생이었습니다. 그 흔한 ESL(외국인을 위한 영어학습 프로그램)를 반도 끝을 못낸 그런 열등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학교를 나오고도 상식도 제대로 못 갖춘 얼간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신의 뿌리인 한국어, 한국문화는 전부 지워버린 채, 승산없는 백인과의 무모한(?) 승부에 올인하는 한인가정들을 보고 있으면 난감한 적도 있습니다. 이곳 이민사회에선 대학 들어가기가 쉽습니다. 돈들고 배우고 싶다는데 말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졸업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모양입니다. 고교 졸업하기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차라리 전인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한국의 공교육이 되레 나아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암기식 위주의 학습방법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이곳의 자율성 학습이 익숙치 않은 많은 한인 학생들의 좌절을 만들어 내는 교육실상을 보면, 그 암기식 위주의 교육을 받은 우리 세대가 이제 선진국 문턱의 한국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하는 자부심도 듭니다.

이제 새 정부에서 내놓는 많은 교육개혁안이 있을 것입니다. 또 많은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제발 '묻지마'식 조기유학 열풍은 한 번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나고 있으며 그 시행착오를 그저 쉬쉬하고들 있지나 않은지 말입니다.

그리고 영어학습만이 교육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같이 영어에 주눅들어 이곳에서 낭패를 보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영어란 언어는 한국에서 배우는 것이라고요.

언어습득은 지역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사실을 왜들 잊고 사는지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자신을 먼저 찾고 남의 것을 그 위에 얹으면 금상첨화가 된다는 사실말입니다.

많은 돈들여 조기유학을 떠나는 현실에서 거꾸로 '역유학'이라는 방법을 택한 아들이 이런 결과를 내어놓으니 우리 부부에겐 한국의 교육이 '맞춤형' 교육인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민을 떠날 적엔 몰랐습니다. 이민회사에서 설명한 대로 아이들은 모두 함박웃음 짓는 그런 곳이 이곳인 줄 알았습니다.

외국 명문대 입학이 부럽지 않다

그제는 이웃인 한국분이 세탁물을 맡기러 들렀더군요. 아들과 같은 나이의 작은 딸이 이곳 명문대학에 입학했다더군요. 저는 조금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 아이의 고난의 앞길이 너무도 자명하게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고교 시절 공부의 10배 정도 험한 공부를 한다고 밤에 두어시간을 자고 책에 매달린다더군요.

"조형, 영어가 전부가 아니야. 생각해봐. 우리에게 '세종대왕'에 대하여 무어라도 쓰라고 하면 억지로라도 쓸 수 있잖아. 안 되면 종잇돈에 그려진 것이 세종대왕이라고도 말야. 하지만 '윈스턴 처칠'에 대하여 쓰라고 하면 무어라도 쓰지? 입력된 것이 있어야지. 그런 게 이곳 대학인 것 같아. 딸아이가 안쓰러워…."

이른바 '세종대왕론'이라는 이곳 이야기가 다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공부란 것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라면 자신의 것부터 찾고 남의 공부를 들여다 보아야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어부터 다지고 영어를 얹는다. 그것이 바로 우리 선조들의 실학사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쨌든 그 험난한 고교과정을 한국, 캐나다를 몇 번씩 오가며 끝마친 아들의 입학식에는 직접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씁쓸하지만, '특례입학'도 아니고 중학, 고교 과정을 건너 뛴 것도 아닌 '정시모집' 합격증을 보며 우리 부부는 웃습니다. 그것도 4학기 전액장학금이라는 빛나는 성과와 함께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우리 교육에 대한 자부심을 느껴 봅시다. 서구 교육만이 최상일까요?



태그:#우리 교육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