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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원짜리 정식 메뉴입니다. 아쉽게도 제가 좋아하는 고기반찬은 없네요. 학생들의 건강을 생각해주시는 식당 아주머니들의 배려가 아닐까요.
▲ 우리학교 식당 정식 1800원짜리 정식 메뉴입니다. 아쉽게도 제가 좋아하는 고기반찬은 없네요. 학생들의 건강을 생각해주시는 식당 아주머니들의 배려가 아닐까요.
ⓒ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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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저를 감싸는 따뜻한 오후입니다. 오늘은 단소 시험이 있는 날입니다. 웬 단소시험? 초등학생이냐고요? 아닙니다. 저는 교대생입니다. 단소도 잘 불어야 하고, 피아노도 잘 쳐야 하고, 물구나무도 잘 서야 하고, 뜀틀도 잘 넘어야 하고, 그림도 잘 그려야 하고, 말도 잘 해야 하고, 공부도 잘 해야 하는 그런 교대생입니다.

5교시 피아노 수업이 끝났습니다. 조금은 늦은 점심을 먹으러 학교 식당으로 향합니다. 전교생이 2000명 남짓하는 작은 학교이기에 학교 식당은 딱 한 곳뿐입니다. 메뉴 고를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1800원짜리 정식과 특식, 그리고 1000원짜리 라면 3가지 중 하나만 고르면 됩니다.

학교 식당 밥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다는 것입니다. 동기들의 말을 인용하자면,

"학식(학교식당) 밥은 다 먹고 일어서면 배가 꺼져버려~ 두세번은 먹어줘야 한다니까!"
"밥에 소화제 넣은 거 아니야? 어떻게 바로 소화가 돼버리지?"


하지만 이런 신기한 밥도 반찬도 몇 번이고 무한 리필을 해주시는 식당 아주머니들이 계시기에, 우리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는 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같이 온 동기들과 함께 라면 4개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기다립니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가방에서 단소를 꺼내듭니다. 7교시가 단소시간이거든요. 오늘 시험 볼 곡은 전래동요인 '청어엮자' 입니다.

"임~~ 임~~ 임~~무 임태임 태~태 태~태 임~무 임태임~"

이상하게도 높은단의 소리가 잘납니다. 오늘 시험은 왠지 기대가 됩니다.

"이봐~ 학생!"

식당 아주머니가 저를 부르십니다. 식당에서 시끄럽게 단소를 불고 있어서 혼내려는지 알았는데, "이쪽으로 와서 불어봐, 아줌마들도 들어보게!"라고 하시는 겁니다.

"전 비싼데요, 아무 데서나 단소 안 불어요."
"알겠어, 관람료는 두둑하게 챙겨줄게."

관람료를 주신다는 말에 혹하여 단소를 들고 배식하는 곳 앞에 섰습니다. 식당에는 총 다섯 분의 아주머니들이 계셨습니다. 늦은 점심시간이었기에 식당은 한산하였고, 아주머니들도 그리 바쁘지 않아 보이셨습니다.

입술에 가지런히 침을 바르고 단소를 갖다 댔습니다. 많은 관객들이 보고 있어서 그런지 긴장이 됩니다. 잘 해야 할 텐데….

"임~~ 임~~ 임~~픽 임픽픽 태~태 픽~픽 임~픽 픽픽픽~"

이런, 분명 방금 전까지만해도 잘 나던 단소 소리가 잘 나지 않았습니다. 픽픽거리는 바람소리만 들립니다. 이건 아닌데….

식당 아주머니들 앞에서 단소 공연을 마치고, 공연 관람료로 받은 맛있는 오징어튀김입니다.
▲ 오징어튀김 식당 아주머니들 앞에서 단소 공연을 마치고, 공연 관람료로 받은 맛있는 오징어튀김입니다.
ⓒ 김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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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잘했어! 이거 갖다 먹고 교수님 앞에서는 더 잘해야 해!"라고 하시며 그날 정식의 최고급 반찬이었던 오징어 튀김 네 개를 그릇에 담아 주십니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오징어 튀김을 받아들고는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날의 부끄러운 공연은 끝이 났습니다.

배고픈 학생들에게 항상 많은 밥을 주시며 무한 반찬 리필을 해주시고, 당신의 아들 딸처럼 친근하게 대해주시고 아껴주시는 모습이 좋아 저는 늘 학생식당을 찾습니다. 앞으로 졸업할 때까지 열심히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할 예정입니다. 저는 아직 1학년입니다.

라면이 불고 있네요. 빨리 먹고 단소 연습해야겠네요.

덧붙이는 글 | '우리 학교 식판 - 학생부' 공모 기사 입니다



태그:#식판, #교대, #단소, #오징어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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