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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군 칠량면에 홀로 농사를 지으시면 즐겁게 사시는 장모님께서는 70세를 바라보시는 나이에 운전면허증을 따 현재까지도 티코를 몰고 다니십니다. 지금부터 장모님과 티코에 대해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실로 몇 개월 만에 마누라와 함께 나들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2006년 8월쯤 나들이를 갔다 온 뒤론 처음이어서 소풍가던 날 들떴던 초등학교 시절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강진으로 출발했습니다. 사실은 장모님 생신을 맞아서였습니다. 그런데 생신날은 갈 수가 없어 미리 토요일과 일요일 짬을 내 다녀오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하여튼 모처럼 가는 나들이인 데다 돌아올 때를 생각해 이번에는 고속버스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번번이 털털거리는 스포티지를 몰고 가는데 돌아오는 날 고속도로에서 막히면 그 다음날 새벽 2시에 집에 도착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남터미널에서 오전 9시30분 일반 고속버스를 탔더니 오후 2시30분쯤 강진에 도착하였습니다. 집사람은 영암 부근 월출산이 보이는 곳에서부터 열심히 장모님과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엄마, 바빠요. 3시쯤 도착할 것 같은데, 차 좀 가져오시면 안돼요?"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그러면 알아서 하라고 하면서 핸드폰을 끄더군요. 그래서 내가 "뭔데, 그래"하고 물었습니다. 집사람은 "엄마가 바빠서 차를 몰고 강진까지 나오지를 못하겠데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괜시리 바쁘신데 왜 장모님께서 강진까지 나와. 젊은 우리가 택시타고 들어가면 되지"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뒤 오후 4시쯤 집에 도착하였는데 집 앞에는 그 유명한 1997년식 티코가 턱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하여튼 괴상한 물건이여. 탈탈거리면서도 굴러다니는 것을 보면 정말 가관이라니깐'하고 속으로 속삭이고 말았습니다.

진분홍색에다 범퍼를 비롯해 빙 둘러서 하얀 새시로 장식된 티코는 시골에 내려가면 언제나 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끔 손세차도 하고 강진읍내에 급하게 다녀올 일이 있으면 끌고 다니기도 합니다.

이날 장인어른 산소에 다녀올 때도 우리는 장모님의 애마인 티코를 몰고 다녀왔습니다. 시동을 걸면 털털털털, 어떻게 들으면 툴툴툴툴, 또 어떻게 들으면 탈탈탈탈... 얼마나 떨어대면서 소리가 요란하게 나는지 나는 무슨 탱크가 굴러가는 소리인줄 알고 깜짝 놀라곤 합니다.

그래도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고 장모님 앞에서는 굴러다니는 것이 용하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는 합니다. 우리 집사람도 운전을 하지만, 차에 대해서는 모전여전으로 젬병입니다. 집사람이 그 정도고 장모님이야 70세를 바라보시니 차를 닦는 것도, 부서지는 것도, 엔진 오일을 교체하는 것도 모르십니다. 가끔 내가 "장모님, 몇 달에 한번씩 강진에 있는 정비업소에 가셔서 엔진오일이랑 이것저것을 점검해 달라고 하세요"할라치면, 장모님께서는 "까만 지름"하시고는 그만이십니다.

이야기는 몇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집사람이 갑자기 "여보! 엄마가 운전면허증을 땄대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인어른께서 16년 전쯤에 마을 앞 2차선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쩌자고 장모님께서는 70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운전을 하시겠다고 덤비시냐며 호통을 쳤던 적이 있습니다. 어쨌거나 장모님께서는 단 한번에 운전면허를 취득하셨습니다. 저도 1990년에 면허를 땄는데요. 당시 60세 되신 남자 분이 10번 넘게 시험에서 떨어진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남성들도 두서너 번씩 떨어지기 쉬운 운전면허를 단 한 번에 따셨다니 정말 대단한 일임엔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장모님께서는 자식들이나 주변에 알리면 혼이 나실까봐 아무도 몰래 혼자서 운전교습소를 다닌 끝에 운전면허증을 따신 뒤 광주에 사는 친정 조카가 80만원에 구입해 준 티코를 그때부터 몰고 다니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할까 합니다. 장모님께서는 1남3녀를 두셨는데, 1남2녀가 일본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관계로 장모님은 운전면허증을 딴 뒤 일본에 있는 처남에게 자랑삼아 "OO아범, 나 면허증 땄어"하셨답니다. 그런데 말수가 적기로 유명한 처남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아주 착 깔린 낮은 저음으로 "운전, 조~심~하세요"라고 말입니다. 이 말을 장모님으로부터 듣고 집사람과 저는 요절복통하고야 말았답니다.

일요일 장모님께서는 교회에 가시기 위해 윗마을에 있는 언니를 데리러 가신다며 그날도 저보고 "얼릉 가서 데꼬 와불제"하셨습니다. 집사람과 나는 장모님께서 오전 9시쯤 집을 나선다기에 함께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운전을 하고 이모님 댁에 가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가던 중에 1차로인 길 반대편에서 봉고 트럭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차는 아주 능수능란하게 티코 앞을 지나 오른쪽 농로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쪽에 논이 있는 것이겠거니 하고 생각을 하고 지나친 뒤 백미러로 보았더니 그 차는 뒤로 후진을 하여 다시 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신 장모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좁디좁은 질에서 차를 만나먼 참말로 깝깝해부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장모님의 티코가 유명해졌는지 거의 모든 차들이 이처럼 비좁은 길에서도 길을 먼저 비켜주신답니다. 그리고 어떤 대형 트럭 운전자들은 클락션을 빵빵거리면서 손을 흔들어주시기도 한답니다. 그런 장모님의 말씀을 듣고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답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 장모님의 티코를 알아보시고 미리미리 길을 비켜주시는 칠량면 부근에서 운전하시는 운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장모님과 티코는 너무나 잘 어울리십니다. 티코는 그야말로 난장판입니다. 운전석 옆문은 문고리가 완전히 박살이 난 터라 덜렁덜렁합니다. 운전자가 운전석에 앉자마자 문을 안에서 열어주어야 합니다. 그 뒤쪽 문은 손님이 안에서 앉아 있다가 열면 열리지 않아 운전자가 얼른 뛰어나가 열어주어야 합니다. 앞 범퍼는 어디에다 박았는지 찌그러졌으며, 뒷범퍼도 이곳저곳이 너덜너덜합니다. 차 안은 완전 쓰레기통이랍니다.

한 번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가다가 고랑에 처박힌 적도 있다고 합니다.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그만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신작로 옆 고랑으로 처박히고 만 것이지요.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설명하신 장모님께서는 "그래도 이것(티코)이 있응께 아무데나 낫낫하게 댕기제"하시며 너스레를 떠십니다.

참으로 어려운 얘기인데요. 장모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마음씨는 비단결처럼 고우십니다. 그런데 앞 정면을 바라보면 정반대입니다. 이모님을 모시러 가던 날의 일입니다. 집 앞에서 마을 할머니를 만났는데 집사람을 보더니 대뜸 하시는 말씀이 "와따, 딸이 함씨보다 헐썩 잘 생게부렀다, 잉. 딸이 참말로 이삐구마이. 엄씨는 안그런디"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보는 사람마다 직설적으로 이렇게 말을 하고야 맙니다. 그래서 내가 얼른 그 말을 받아 "할머니, 그래도 우리 장모님이 할머니보다 백배나 더 예쁘겠구만요"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장모님께서는 이런 말에 얼마나 면역이 되셨는지 대꾸도 하지 않으십니다. 빙그레 웃으실 뿐이랍니다. 사실 저도 집사람과 약혼한 뒤 장모님을 뵙고는 전에 뵈었더라면, (뻥을 좀 쳐서) 집사람을 남겨두고 아마 한 400리쯤은 도망을 가고야 말았을 것입니다.

강진에 거의 다 와갈 무렵 반듯하게 뻗은 길이 있어 80km가 나오도록 차를 몰았습니다. 좀 긴장이 되셨는지 이모님께서 "잘 달린다. 그래도 찬찬히 댕게야제"하십니다. 그런데 장모님께서는 "나도 쌩쌩 달릴 때가 있었당께. 그란디 한번은 딱지가 날라 왔어"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농촌 길에서는 언제나 60km만 달려야 한다며 언제나 40~60km로만 차를 몰고 다니시라고 한마디 하고 말았답니다.

우리 장모님은 겉으로 보기엔 키도 작으시고 어수룩해 보이시지만, 무슨 일이든지 야무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음식 솜씨가 정말로 훌륭하신 장모님, 오늘도 티코와 함께 무사 운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태그:#장모님, #전남 강진군, #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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