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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보스토크역에 길게 늘어선 기차의 모습. 끝없이 늘어선 화물객차가 인상적이다.
ⓒ 강병구

"거기 멀잖아. 왜 힘들게 사서 고생을 하냐? 러시아는 좀 위험하지 않아?"
"열차로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한다니…. 동서양을 한번에 만나볼 수 있겠네."

작년 봄, 내가 러시아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까지 가보겠다는 계획을 세웠을 때 주변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러시아라는 낯선 땅에 대한 두려움과 열차로 대륙 횡단에 대한 막연한 동경. 사실 동경보다는 두려움이 더 많았다. 하긴 출발하기 전에 나 역시 느꼈던 막막함을 생각해보자면, 그런 우려섞인 반응들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보다 훨씬 가까운, 고작 1000㎞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유라시아 대륙과 시베리아가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 벌판을 우리의 선조들이 호령했다는 이야기들은 굳이 역사책을 찾지 않더라도, 최근 넘쳐나는 TV사극드라마에서 충분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결국 나는 보따리를 쌌다. 무작정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열차를 타고 독일의 베를린까지 간 것이다. 그것은 한국에서 이탈리아 나폴리까지 한 석달 간의 내 여정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사건이었다.

낯선 땅 시베리아에서 기차타고 친구를 만들다

▲ 열차가 서는 정차역마다 노점이 펼쳐지는데 도시화가 많이 진행된 유러피안 러시아(우랄산맥 넘어 서쪽)로 가면 갈수록 이런 모습은 보기 어렵다.
ⓒ 강병구
▲ 기차에서 만난 사샤와 바샤 형제. 이 형제와 보드카 8병을 마시면서 바디랭귀지로 소통하는 법을 마스터했다.
ⓒ 강병구
블라디보스토크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상상했던 두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던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 깐깐한 입국심사부터 시내로 향하는 동안 두세 번은 받아야했던 검문까지, 낯선 외국인 여행객에게 '무시무시한 러시아'라는 선입견을 확신으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런 불편함은 러시아를 여행하는 내내 계속되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기차나 도시에서 점점 더 많은 시베리아와 러시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의 선입견은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기차가 잠시 서는 역에 급작스레 만들어지는 시골아낙들의 좌판은,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이야기로는 한번쯤 들었을 예전 우리모습과 너무 흡사했다. 또 도시들의 중심가는 우리나라의 여느 도시 같이 화려한 차림의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 독립운동의 성지 하바로프스크에서 바이칼의 도시 이르쿠츠크로 향하는 기차내의 60여 시간 동안 안드레이씨와 데마씨, 그리고 사샤와 바샤 형제를 만난 일이다.

시베리아 벨라고르스크에서 전기관련 계통의 일을 한다는 안드레이는 수줍음 많은 전형적인 러시아 청년이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였는데, 인도와 티베트 같은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아제르바이잔 사람인 데마씨는 말로만 들어왔던 카스피 해의 항구도시 바쿠 출신이라고 했다.

둘 모두 러시아어로만 소통이 가능한 탓에 깊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지만, 손짓·짓에 그림·숫자까지 사용하는 의사소통만으로도 서로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런 의사소통법이 통한다는 게 신기했다.

샤사·바샤 형제를 만났을 때는 좀더 자신감이 붙었다. 40대의 전형적인 러시아 아저씨들인 이 형제와 함께 한 시간은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기 전 8시간 정도였다. 시베리아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이들이 영어나 다른 언어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러시아어에 유창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독한 보드카가 한 잔 두 잔 돌면서 어느새 나는 두 형제의 가족사와 직업은 물론 왜 기차를 탔는지, 어디로 가는지 등을 알 수 있었다. 그들도 나의 신상정보를 알아들었고, 내 나라 '카레야(코리아)'의 역사적 비극을 이해했다. 나중엔 서로 주소를 주고받고 다시 만나자는, 너무나 한국 술자리적인 헤어짐도 경험할 수 있었다.

신기하다고 밖에 말할 수밖에 없는 이 경험은 내가 갖고 있던 러시아에 대한 편견 한 가지는 충분히 없애주었다. 그 곳은 '이상한' 곳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살고 있는 평범한 곳일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말과 언어는 소통을 하는 수단 중 한 가지일 뿐이라는 사실도.

나는 이 곳을 왜 이제야 알게 됐을까

▲ 열차를 타고 가다보면 하늘이 쨍쨍한 상태에서 일부지역에 비가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진은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기차에서 찍은 모습이다. 멀리 보이는 구름 아래로 비가 내리고 있다.
ⓒ 강병구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은, 그 광활한 대지와 넉넉한 시간이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대지는 지평선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기차가 달리는 곳은 맑은 날씨인데, 저 멀리 구름 아래로 비가 오고 있는 모습이나, 반 나절을 달려도 끝이 없는 자작나무 숲을 보면 희한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더불어 그리 느리지 않은 열차 속도에도 불구하고 60시간, 즉 2박3일을 달리는 열차를 타고 있노라면, 한국에서 대여섯 시간 기차를 타며 오래 걸린다고 투덜거렸던 것이 우스워진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가장 빠른 열차로 달려가도 5박 6일이 걸리는 이곳의 광활함에, 바쁜 도시적 시간개념은 떠오르지조차 않는다.

우리 선조가 이렇게 넓은 땅을 호령했다는 이야기도 그렇고, 멀지 않은 100여 년 전의 독립운동이나 그 후손들이 여전히 이 땅에서 고려인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이 곳이 우리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있는 곳은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아메리칸 스탠더드'가 곧 '글로벌 스탠더드'이고, 영어가 곧 세계 공용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의 세계인식으로 보자면, 이 곳은 또 다른 세계이다.

이 곳은 러시아어가 공용어로 쓰이고, 소련 시절 사회규칙이 아직도 통용되는 곳이다. 러시아 사람은 물론, 열차에서 만난 우즈베키스탄 사람·아제르바이잔 사람·몽골 사람·중국사람, 그리고 에스토니아에서 만난 발트3국의 유럽 사람들까지, 러시아어를 모르는 내가 불편했지, 그들이 불편해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들을 만나고 그 땅을 돌아다니며, 우리가 말로만 부르던 유라시아 대륙과 시베리아에 연결될 수 있었다. 역사책으로만 배우던 막연한 그 곳이 아닌 실재하는 그 곳에 말이다. 비행기를 타고 이 도시 저 도시를 이동하며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주요 관광지만 둘러보는 식으로 여행을 했더라면 이런 느낌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오! 대한민국!

▲ 반나절을 달려도 끝이 없는 자작나무 숲. 벌판에 끝도 없이 펼쳐진 자작나무 숲을 보고 있으면, 희한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 강병구
그러나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오니 다시 아득해진다.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일까?'라는 질문엔 다양한 대답이 가능할 것이다. 여러 가지 대답 중 지리적인 부분으로 범위를 좁혀본다면 '섬 아닌 섬'이라는 답도 가능하지 않을까?

분명 중고등학교 사회과목 교과서에는 유라시아 대륙에 위치한 한반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도 등장하고, 우리 민족의 역사적 사실들을 들어가며 대륙인으로서의 한국인을 설명하고 있다. 한데 정말 그럴까? 우리는 그것을 실감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3면은 그렇다 치더라도, 휴전선이라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북으로 막혀있는 현 상태에서 외국으로 나가기란 배나 비행기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어 있다면 분명 그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이 가능해야하지만, 현재 우리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부산에서 출발해서 고작 600여㎞만 올라가도 철조망과 총을 든 군인들이 막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섬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적어도 '지리적 위치로 인한 한국인의 대륙적 기상'이니 뭐니 하는 것은 사실상 거짓인 것이다. 그 표현의 옳고 그름은 둘째치더라도, 경험해 볼 수 없는 것을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오히려 그런 설명들은 현실과 비교되며 우리에게 더욱 심한 단절감을 주고 있다.

이런 사실상의 제약이 북한은 물론, 가까운 대륙을 머나먼 나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서울에서 파리로 향하는 열차를 탄다는 상상

▲ 빨강, 파랑, 흰색의 러시아 국기색으로 치장한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대표열차인 001번 라씨야(러시아)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가는 가장 빠른 열차이자, 가장 고급스런 열차다.
ⓒ 강병구
민족기상이니 대륙인이라느니 하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는 치워버리자. 그냥 다음과 같은 상상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2020년 6월의 어느 날, 여름방학을 맞은 대학 새내기 김대한 군이 유럽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목적지가 프랑스 파리인 그 여행의 출발지가 서울역이다. 김대한 군은 1달여의 기차여정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을 둘러보고, 파리에 도착해서 다음 1달 동안 유럽을 둘러볼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김대한군이 탈 열차는 어제 서울역에 도착했다. 파리에서 온 그 열차는 수많은 외국 사람들을 지난밤 서울역에 내려놓았다. 그 중엔 러시아와 프랑스·독일에서 한국을 찾은 대학생도 있고, 사업차 중국과 한국 일본을 차례로 방문하고 있는 핀란드의 사업가도 있다. 한 쪽엔 유럽으로 수출하기 위한 물건들을 가득 실은 화물객차가 출발을 기다리며 플랫폼에 서있다.

그냥 피식 하고 웃어넘길지 모르겠지만, 이미 블라디보스토크이나 이르쿠츠크에서 본 표정을 시간과 장소만 바꾼 것뿐이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적지 않은 여행객들이 아시아로 유럽으로 향하는 기차에 오르며, 수많은 상품과 자원이 그 철길을 따라 유럽으로 아시아로 운반되고 있다.

이런 거짓말 같은 상상이 2002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고, 올해 5월 시범 운행으로 조금씩 현실화되고 있다고 한다. 남북열차(한반도 종단철도) 연결은 러시아에서의 경험에 비춰봐도 엄청난 일이다. '섬 아닌 섬'의 이상한 대한민국 현실을 단번에 해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역사적 아픔으로 인해 기묘하게 막혀있는 우리의 현실이, 정상으로 돌아간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실현된다면 통일도 더 쉬워질 것이다. 또 말로만 배우던 유라시아 대륙인으로서의 한국인, 대륙과 연결된 대한민국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의 활동영역도 넓어질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전체가 막연한 외국이 아닌, 왕래가 익숙한 옆 동네 어디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실현되고 난 뒤에 우린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어휴, 이걸 왜 이제야 한 거야?"라고.

▲ 하바로프스크에서 이르쿠츠크로 가는 새벽에 찍은 열차의 모습. 시베리아의 칠흑같은 밤하늘과 길게 늘어선 열차를 보며, 어릴 적 본 은하철도 999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 강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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