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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이 있는 마을인 오조리 바닷가에서 본 성산일출봉
친정이 있는 마을인 오조리 바닷가에서 본 성산일출봉 ⓒ 오금숙
오조리는 성산일출봉 바로 옆 동네인지라 일출봉이 한눈에 내다보입니다. 아이들은 바다에 떠 있는 배들이랑 물속, 바다주변의 모습들을 구경하느라 신이 났습니다.

바닷가에 다다르자 아이들은 즐거워 탄성을 지른다. 아이들 뒤로 지미봉이 보인다.
바닷가에 다다르자 아이들은 즐거워 탄성을 지른다. 아이들 뒤로 지미봉이 보인다. ⓒ 오금숙
저는 우선 부모님이 어디 있나 두리번거렸습니다. 바닷가 방파제에 앉아 열심히 성게를 까고 계시더군요. 올해로 칠순을 맞으신 어머니는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바로 물질(해녀일을 제주말로 이렇게 부릅니다)을 시작하셨습니다.

올해 칠순이신 친정어머니는 아직도 해녀일을 하신다
올해 칠순이신 친정어머니는 아직도 해녀일을 하신다 ⓒ 오금숙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큰딸이었던 어머니는 외할머니를 도와 4명의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께 시집을 와서는 우리 다섯 형제를 낳아 키우면서 농사와 해녀일을 같이 하셨는데 칠순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녀일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닷일이 농사 짓는 것보다 돈 되는 거여. 자기 몸만 움직이면 되니까."

어머니가 아직까지 물질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논리 때문입니다. 부지런히 몸만 움직이면 바로 그날 돈이 되어 돌아오니까요. 이 일을 해야 자식들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마을 해녀들 중에 젊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사진기를 들이대자 해녀아주머니들은 고개를 숙입니다.

"뭐 할라고 찍어? 이 쭈굴대는 얼굴 찍어서 뭐할라고?"

마을 해녀분들이 성게를 가운데 두고 열심히 작업중이다. 끝내 카메라를 보시는분은 안계셨다.
마을 해녀분들이 성게를 가운데 두고 열심히 작업중이다. 끝내 카메라를 보시는분은 안계셨다. ⓒ 오금숙
그렇습니다. 고생이 덕지덕지 박힌 얼굴을 보여주기 싫어서였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아주 예쁜 얼굴들입니다. 힘든 물질을 하면서도 아이들 길러내고 시부모와 남편 공양하며 일생을 살아온 얼굴들입니다. 물속에 들어갔을 때 수압 때문에 항상 두통을 달고 사시는 분들입니다. 진통제 없이는 물에 못 들어간다는 해녀들이 수두룩합니다. 하지만 이 일을 놓지 못합니다. 아마 몸이 움직여지는 한 여든이 넘어도 하실 겁니다.

까여진 성게알. 하루종일 작업하면 1.5kg의 성게알을 얻는다. 약5만원어치다.
까여진 성게알. 하루종일 작업하면 1.5kg의 성게알을 얻는다. 약5만원어치다. ⓒ 오금숙
언젠가 어머니께 "어머니, 나도 물질 배워서 해녀일 할까?"라고 말씀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저는 사실 물속이 두렵습니다. 숨을 멈추고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적막한 고요 속에 가라앉는 경험이 저에겐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니었으니까요. 공포스러웠으니까요.
어머니는 제 말에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쓸데없는 생각 그만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50여년이 넘는 동안 이 일을 해 오셨습니다.

성게는 안에 있는 알만 먹는다. 작업이 끝나면 성게껍질이 수북이 쌓인다.
성게는 안에 있는 알만 먹는다. 작업이 끝나면 성게껍질이 수북이 쌓인다. ⓒ 오금숙
이날도 오전 8시 30분경에 집에서 나와 바닷일을 시작해, 잡아온 성게를 다 깐 시간은 오후 4시 40분경이었습니다. 점심은 드셨냐고 물었더니 빵과 수박을 먹었다고 합니다. 배 안 고프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굵어지고 거칠어진 손마디에 붉은 성게물이 들었다
굵어지고 거칠어진 손마디에 붉은 성게물이 들었다 ⓒ 오금숙
그러나 집에 돌아와 얼른 밥을 차려드렸더니 허겁지겁 맛있게 많이 드십니다. 그 모습이 짠합니다. 시집 간 딸들은 가끔 이렇게 찾아와 밥상 한 번 차려드리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달래기도 합니다. 이것만으론 택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말입니다.
#해녀#제주도#친정어머니#성산일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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