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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가 끝난 창평 들녘 풍경입니다.
모내기가 끝난 창평 들녘 풍경입니다. ⓒ 고병하
친정 엄마 화순댁은 신발이 닳도록 광주에서 담양 창평을 오가며 일을 하십니다. 매일매일을 하루같이 일을 하십니다. 엄마를 생각하는 이 딸의 가슴이 서글픔으로 내려앉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평생을 농사를 지으시며 사셨습니다. 한눈 팔지 않고 오직 땅만 팠고, 그 길만이 살 길이라는 소신을 가지고 살아오셨습니다.

몇 년 전부터 뇌졸중으로, 당뇨로 고생하시던 친정 아버지는 올 봄 대장암 4기, 폐암 초기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저는 자식들 대표로 항암치료에 사인을 해야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앞으로 9개월 남았다는 선고를 받았고, 안 좋으면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화순 전대 병원에서 광주로 넘어오려면 너릿재가 있습니다. 저는 살면서 화순 너릿재를 이렇게 슬프게 울면서 넘을 줄은 몰랐습니다. 동생들에게 연락을 했고 멀리서 다들 달려왔습니다.

올해 친정 아버지는 칠순이십니다. 칠순을 맞이하여 창평 용운동 어르신들께 식사 대접을 하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이런 일이 생긴 겁니다. 대장암 말기라서 수술은 안 되고 항암치료만 가능하다는 말에 절망을 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되도록 몰랐단 말인가.

얼마 후 동생들이 다 모인 날에 미리 친정 아버지 생신을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었고 힘들어 하셨지만 잠시 앉아서 같이 식사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에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 가셨고 상황이 위급해졌습니다. 놀란 엄마는 느그 아빠 다 죽어간다고 알려왔고 우린 맨발로 전대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조금 전까지 같이 식사를 하시던 분이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을까, 절망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바로 다음날 화순 전대병원에서 수술을 했습니다. 네 시간에 걸쳐 수술을 하셨고, 녹초가 되어 나오신 아버지는 기력을 얼른 찾지 못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늘에서 쉬라고 하시며 엄마는 저렇게 깨밭에서 땅의 일부가 되어 일을 하십니다.
아버지는 그늘에서 쉬라고 하시며 엄마는 저렇게 깨밭에서 땅의 일부가 되어 일을 하십니다. ⓒ 고병하
그렇게 화순댁 화순양반의 고단한 병원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수술 후 퇴원을 하셨고 다시 일주일만에 병원에 가셔서 입원 날짜를 예약하고 정해진 날에 입원하여 항암제를 맞는 것입니다. 항암제를 3박 4일간 맞고 퇴원을 하시면 기운이 없어서 살고 싶지 않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고 짜증을 내시기도 합니다.

그런 아버지를 모시고 고향 창평에 나들이를 갔습니다. 벌써 세 번째입니다. 동네분들이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 모릅니다. 손을 잡고 막 뛰십니다. "화순양반 오셨소~" 하시며 눈시울을 적십니다.

엄마는 마음이 바쁩니다. 내일 입원을 하게 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일을 마무리 지어놓고 가려고 그러는 겁니다. 고추는 비가 안 와서 그런지 별로 탐스럽지 못합니다. 깨도 곳곳에 빈자리가 있어서 물으니 산새들이 와서 다 파먹어버린다고 합니다. 새들 때문에 밭농사를 못짓겠다고 하십니다.

깨가 건강하게 자라게 하려면 솎아내야 한답니다. 엄마는 한구멍에 깨를 두세개 정도만 놔두고 다 뽑아버립니다.
깨가 건강하게 자라게 하려면 솎아내야 한답니다. 엄마는 한구멍에 깨를 두세개 정도만 놔두고 다 뽑아버립니다. ⓒ 고병하


자연이가 할머니를 도와서 같이 솎아 내고 있습니다.
자연이가 할머니를 도와서 같이 솎아 내고 있습니다. ⓒ 고병하
"오메~ 자연이가 에미보다 낫네~"

저는 엄마가 일을 하시는데 얼른 돕지 않고 사진을 찍고 있고, 자연이는 호기심에 이것저것 물으며 할머니를 돕고 있습니다. 창평에 자주 가지만 엄마 일을 얼른 거들지 않는 딸에게 한 마디 하시는 겁니다.

고추밭에 농약을 하고 계십니다.
고추밭에 농약을 하고 계십니다. ⓒ 고병하
엄마 마음이 바쁩니다. 아버지 입원 기간 동안 고추에 병이 오면 안 되기에 미리 약을 좀 해놓고 가시려는 겁니다. "올해는 논농사도 안 짓는데, 뭔 일이 이렇게 많은지 몰라야~" 하십니다. 아버지 병환으로 인해 평생 지으시던 논농사를 남에게 내놓고, 그 논에 모가 심어진 모습을 보고 눈시울을 적시며 "내년에는 웬만하면 지을란다~" 하신 분입니다.

친정 아버지 화순양반이십니다.
친정 아버지 화순양반이십니다. ⓒ 고병하
세번째 고향 나들이에 얼굴이 밝으십니다. 마을분들도 환자 같지 않다고 한 마디씩 하십니다. 엄마가 일하시는 곳으로 가보고 싶으신가 봅니다.

용운동에 있는 달뫼 갤러리입니다.
용운동에 있는 달뫼 갤러리입니다. ⓒ 고병하
아버지 모시고 전시 작품을 보러 갔으나 시간이 너무 늦어서 이미 폐관되어 못봤습니다. 아쉽지만 다음에는 꼭 보여드려야 겠어요.

매화를 대나무로 쳐서 수확하는 모습입니다.
매화를 대나무로 쳐서 수확하는 모습입니다. ⓒ 고병하
동네 어르신이 대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매화나무를 때립니다. 그러면 우수수 매화가 땅에 떨어집니다. 모내기를 끝내놓고 매화를 따시나 봅니다.

우리집 장독대입니다.
우리집 장독대입니다. ⓒ 고병하
엄마가 논에서 급한 일을 다 마무리 지으시고 집으로 왔습니다. 된장이 맛있다며 한 통 담으시네요.

감꽃이 지더니 이렇게 감이 예쁘게 열렸습니다. 장독대 옆에 서 있는 감나무에 감이 탐스럽게 자라고 있습니다.
감꽃이 지더니 이렇게 감이 예쁘게 열렸습니다. 장독대 옆에 서 있는 감나무에 감이 탐스럽게 자라고 있습니다. ⓒ 고병하
화순양반인 아버지는 고향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시고 들에도 나가 보시고 활력을 얻으신 듯합니다. 시골 바람을 쐬고 오셨으니 더욱 힘이 나시리라 믿습니다. 다만 오늘 입원 예정이었는데, 병실 관계로 연기되었습니다.

앞으로 계속될 항암 치료에도 아버지가 끄떡없이 잘 버티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리고 내년에 우리 논에 모내기를 같이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대장암#고향#창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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