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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문화재청 창경궁관리소에서 궁중혼례 행사가 있었다. 조선시대 궁중혼례 문화를 시민들에게 알린다는 취지였다. 행사 전에 재현이 아니라 궁궐 결혼식이라는 여론의 질타가 있었지만 무시한 채 진행한 행사였다.

문화재청이 의도한 바대로 시민참여의 고품격 궁중재현 행사가 되었을까? 우려했던 문화유산 관람환경의 피해는 없었을까? 지켜보니 문화재청의 의도는 완전히 빗나갔다. 우려한 대로 궁궐에서의 결혼식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궁궐은 결혼식까지 가능한 열린 마당(?)이 되어 궁궐이 지닌 사적지의 본질과 가치는 땅에 떨어진 것이다.

일제강점기 총독부와 박람회, 동물원, 식물원이 세워져 궁궐이 파괴되고 국가의 상징적인 의미도 훼손되었다. 일제의 궁극적인 의도는 외형 파괴보다 궁궐의 가치와 상징성을 훼손시키는데 주목적이 있었다. 현재 궁궐에선 역사적 상징성과 무관하게 음악회, 패션쇼, 만찬회, 결혼식 등이 끊임없이 열리고 있다. 목적과 의도가 다르지만 결과는 똑같을 것이다. 궁궐 복원으로 외형은 갖추었지만 빗나간 활용정책이 지속되어 우리 자신이 문화유산의 가치와 상징성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화재청에 묻고 싶다.

구체적인 창경궁 결혼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 - 궁중 혼례 중 '궁중무용' 을 보여주는 모습. 궁중혼례는 풍악없이 엄숙한 행사로 진행되는데, 창경궁 궁중혼례에서는 궁중무용과 풍악으로 재구성되어 행사 본질에 의문점이 든다
ⓒ (사)한국의재발견

▲ - '삼엄'이라고 소개한 '대북연주'. 삼엄은 행사 진행을 알려주는 북소리로서 창경궁 궁중혼례처럼 북으로 연주한다는 것은 없었다.
ⓒ (사)한국의재발견
궁중혼례는 가례(嘉禮)라고 해서 6가지 절차를 거쳐 진행된다. 창경궁 행사에서는 '친영'과 '동뢰연'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흥을 돋우기 위해서 '대북공연'과 '궁중무용'을 곁들여 재구성하였다. 재구성이라는 의도는 좋았지만 기본적으로 궁중 혼례는 경건한 마음으로 남녀와 집안이 하나가 되는 엄숙한 의식이었다. 따라서 엄격한 절차에 따라 풍악도 없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문화재청의 의도대로 재현 행사라면 엄숙히 거행되어야 하는데 대북연주와 궁중무용으로 하객들에게 이벤트를 보여주는 것은 지나친 행사임에 틀림없다. 어느 기록에 대북을 신나게 두드리고 박수치고 궁중무용을 보여주는 것이 '궁중가례'에 나오는지 궁금하며 또한 대북 연주를 삼엄(의식의 진행사항을 알려주는 북소리)에 비교하면서 조선전기부터 대북연주가 있었다는 사회자의 설명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 - 행사장 앞 축의금을 받는 모습. 행사장 오른편에서 축의금을 받고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 (사)한국의재발견
그리고 행사장(통명전) 앞에는 축의금을 받고 방명록을 기록하는 모습이 보였다. 관리소 측은 축의금을 제한한다고 홍보했지만 우리 결혼문화에서 축의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기본 상식을 거스르는 행위이기에 관리소 의도와는 다르게 통제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 - 결혼식 후 가족과 친지들의 기념촬영 모습. 궁중혼례 행사 후 1시간 가량 기념촬영이 이어졌다.
ⓒ (사)한국의재발견

▲ - 기념촬영으로 어수선한 통명전 앞. 재현행사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기념촬영이 진행되었다.
ⓒ (사)한국의재발견
결혼식이 끝나고 가족과 친지, 지인들의 기념촬영이 이어졌다. 약 1시간 가량 행사 관계자(무용수 등)와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일반 결혼식장처럼 부모님, 가족 순으로 촬영이 계속되었다. 통명전 앞은 기념촬영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일반 관람객의 문화 향유권은 무시되고 사적지로서 면모를 완전히 잃게 되었다. 문화재청에서 재현행사 목적이 뚜렷했다면 기념촬영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했다. 결혼식 기념촬영은 상례적인 것인데 재현행사로 막는 것도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일 것이다. 의도와 결과를 책임지지 못한 단적인 예이다.

결국 문화재청의 의도와 목적은 의욕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행사진행과 내용, 관리 등 다방면에서 궁중혼례 재현행사가 아니라 궁궐을 결혼식장으로 변질시키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또 다시 빗나간 문화재청 활용정책의 실패 사례이다.

문화재청은 음악회, 패션쇼, 만찬회, 결혼식 그리고 최근 '효종왕릉' 사례처럼 계속해서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문화유산 활용이라는 이름으로 의욕만을 앞세워 진정한 문화재현과 활용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못하고 이벤트 행사만을 양적으로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무분별하게 문화유산의 본질과 가치가 왜곡되고 파괴되고 있다.

'문화의 시대'를 외치는 이 때에 '문화의 위기'를 느끼게 한다. 앞으로 흔들린 문화재청의 위상과 방향성이 올바른 자리로 돌아와 진정한 문화유산의 가치를 위해서 애써주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는 '문화유산의 올바른 보존과 활용을 위한 시민모임(준)'의 의견을 종합한 내용입니다. 
- 참가단체 : (사)한국의재발견, 서울KYC, 궁궐산책


태그:#창경궁, #궁중혼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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