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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고슴도치섬에 도깨비들이 나타났다. 혼자 밤길을 걷는 사람을 홀려 씨름 한판으로 괴력을 발휘한다는 그 도깨비가 아니다. (도)깨비는 지난달 27일부터 시작된 2007춘천마임축제의 자원봉사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 자원봉사자들은 총 6개 팀으로, 축제 개막 3개월 전부터 축제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35명의 '깨비짱'과 축제 2~3주 전에 선발된 109명의 '깨비'로 구성되어 있다. 국적과 지역, 세대를 뛰어넘어 젊음과 열정이라는 이름 하나로 모인 깨비들을 만나보자.

"한국과 일본의 다리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보람 느껴요"

▲ 이가진양이 일본 왕닌 분메이팀과 대화하고 있다
ⓒ 최명호
이가진(강원대학교 가정교육학과 2) 양은 이번 2007춘천마임축제의 공식초청공연팀인 일본 '왕닌 분메이' 팀의 통역을 맡고 있다. 그녀는 재일교포인 어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써 왔다.

"어머니가 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서 사용하세요. 그래서인지 일본어가 외국어 같지 않아요."

그녀는 통역동아리인 'CIA(춘천통역협의회)'를 통해 춘천마임축제 깨비 활동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 고등학교가 수학여행차 춘천을 방문했을 때 통역한 경험이 있지만, 국제적인 축제에서의 통역자원봉사활동은 이번이 처음이다.

왕닌 분메이 팀을 따라다니며 여러 가지 공연에 관련한 통역을 하지만, 때때로 그들에게 한국에 대한 설명도 열심히 해주고 있다. 공연 준비에 대한 통역을 하다보면 기술적인 용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이런 용어들은 너무 전문적이라서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럴 때면 전자사전을 찾아보거나 다른 통역 깨비, 혹은 어머니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요"

▲ 최연소 깨비인 홍윤호군(17)과 최고령 깨비인 임영근씨(33)의 다정한 모습
ⓒ 최명호
2007춘천마임축제 프레스센터를 드나들 때 마다 보였던 앳된 얼굴의 홍윤호(전인고등학교 1)군은 '슈퍼맨 깨비'라는 별칭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이번 춘천마임축제에서 일하는 깨비들 중 최연소 깨비다. 윤호군이 재학 중인 전인고등학교는 춘천 원창리에 위치한 대안고등학교다. 학교를 통해 이번 축제를 알게 되어 반 친구들과 함께 깨비를 지원했다.

며칠 전, 그는 커다란 인형 탈을 쓰고 명동 거리에 홍보를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185cm의 큰 키 때문에 인형 옷이 작아 몸을 구부린 채 걸어다녀야 했다. "인형 탈을 쓰고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어제 몸살에 걸렸어요. 그래도 공연을 보고 있으면 정말 재밌어요"라며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한다.

일본팀의 불쇼가 정말 인상 깊었다는 그는 공연의 감회가 아직도 이어지는 듯 상기된 표정을 보였다. 큰 키가 고민거리라는 윤호군은 배정남이라는 모델처럼 키도 지금보다 작고 얼굴도 작았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또 그는 앞으로 건축업을 하고 싶은데 대학 진학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고민도 털어놨다. 외모에 민감하고 진로를 걱정하는 영락없는 고등학생의 모습이었다.

"75년생입니다"라며 활짝 웃는 임영근씨는 2007춘천마임축제 깨비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깨비다. 9년간의 중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올해 4월 귀국한 그는, 뜻깊은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춘천마임축제 깨비에 지원하게 되었다.

공연팀에 속해서 메인 공연을 관람하러 오는 관객들을 주로 상대하고 있다. 즐겁게 일하고 있지만 가끔 기본적인 에티켓마저 지키지 않는 관객들이 있어 힘이 들기도 하다. "공연시간은 공연자와 관객의 무언의 약속이에요. 관객들이 공연시간을 잘 지켜주었으면 해요"라며 관객들에 대한 작은 바람을 내비쳤다.

'뒤뜨루 깨비'라는 별명을 사용하는 임영근씨. 뒤뜨루는 춘천시 후평동의 옛 지명이자 뒤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뒤뜰은 쉽게 소외당하는 공간이지만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그도 사람들에게 안식처 같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런 별명을 사용했다. 나이가 많아서 혹시 불편한 점은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오히려 후배들에게 배우기도 한다며 손사래를 친다.

대부분이 후배이지만 지금은 춘천마임축제의 동료로서 그들과 어울리고 소통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또, 다리를 조금 저는 불편함이 있어 다른 깨비, 깨비짱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그다.

"중국에 돌아가서도 평생 기억에 남을 축제가 될 것 같아요"

▲ 중국에서 온 깨비 주힐양(22)과 여희양(24)
ⓒ 최명호
주힐 양과 여희 양은 중국에서 온 외국인 깨비다. 한국에 온 지 이제 겨우 3개월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유창하게 우리말을 구사하는 주힐(중국 청도대학교 한국어과) 양은 강원대학교 경영학과에 교환학생 신분으로 지난 3월 한국에 왔다.

그녀는 우연히 한국인 친구가 일하는 카페에 갔다가 2007춘천마임축제의 홍보포스터를 보고 깨비를 지원하게 됐다고 한다. 현재 2007춘천마임축제 운영팀에서 공연 소품을 제작 중인 그녀는 "(일이) 힘들지만 같이 일하는 한국인 친구들의 웃음을 보면 보람을 느껴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여희(중국 연대대학교 한국어과) 양 역시 작년 8월 한림대학교 중국어과에 교환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왔다. 태어나서 한 번도 자원봉사 활동을 해보지 못했던 그녀는 한림대학교에서 열린 2007춘천마임축제 깨비 모집행사를 보고 망설임 없이 깨비를 지원했다고 한다.

주힐 양과는 같은 중국 제녕(濟寧) 출신으로 이번 마임축제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올해 8월 교환학생을 마치고 중국으로 귀국하는 그녀는 "이번 축제로 한국인 친구도 많이 사귀고 시야도 넓어지고 한국말도 늘었어요. 나중에 중국에 돌아가서도 잊지 못할… 평생 기억에 남는 축제가 될 것 같아요"라며 이번 축제에 대한 감회를 밝혔다.

많은 시민들의 관심 속에 성황리에 진행 중인 2007춘천마임축제는 깨비짱과 깨비들의 땀방울로 더욱 빛나는 축제로 거듭나고 있다. 마임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깨비들의 몸짓은 그 어떤 마이미스트의 몸짓보다도 아름답다. 2007춘천마임축제를 만들어 가는 또 하나의 숨은 일꾼, 깨비들의 힘찬 몸짓은 오늘도 계속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뉴스토피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공동취재 : 용환준, 장진희, 최명호, 이은두


#2007춘천마임축제#깨비#깨비짱#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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