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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민 청소년 대안학교인 '셋넷학교' 모습.
ⓒ 셋넷학교

국내에 들어온 새터민이 올 1월 기준 1만 명이 넘었다. '북한 탈출, 남한 입국'은 더 이상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이제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한 부분이 되었다.

그러나 새터민들의 남한행이 봇물 터진 지 5년여가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섬' 같은 존재이다. 우리 사회의 배타성과 종교적인 목적의식성이 그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물론 새터민 스스로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해 적응을 못하고 엇나가는 경우들도 있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의 경우 문화·교육·취업 문제 등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언어, 생활습관, 가치관, 상식 등의 차이에서 오는 혼돈도 이들을 괴롭힌다. 올 1월 통일부 조사에 따르면 전체 새터민의 10.5%인 1000여명이 6~20세 청소년들인데 최근 '나홀로 탈북' 하는 청소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급증하는 이들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지금과 같은 편견과 무관심이 지속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이들이 설 자리는 별로 없다.

점점 늘어나는 '나홀로 탈북'

박영민씨(가명·25)는 요즘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꿈을 꾼다. 악몽이다. 꿈속에 두만강이 보이고 떠내려가는 시체가 보인다. 소스라쳐 깨어나면 꿈이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박씨의 뇌에 스멀스멀 찾아드는 악몽은 험난했던 그의 과거 때문이다.

함경북도 무산에서 태어난 그는 15살 때부터 식량을 구하러 친척집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1998년 겨울 엄동설한에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와 두만강을 건넜다.

박씨는 "북한에 있으면 굶어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는 생각으로 북한을 나왔다"라고 말했다. 중국에서 식량을 구걸하거나 일을 해서 돈을 벌어 두만강을 오가며 고향을 왕래하던 그는 참다 참다 못해 2001년 7월 굶주림에 지쳐 '해골만 남은' 동생을 업고 두만강을 건너 그해 11월 한국에 왔다. 엄마는 중국, 아버지는 북한에 사는 북한판 이산가족이 되었다.

박씨는 지금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어엿한 대학 4학년생이다. 성격이 원만해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그는 새터민 청소년 중에서 그래도 남한 사회에 잘 적응한 축에 든다. 남한 생활 5년째인 그에게서 '북한'의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강원도 사투리 비슷한 '북한 말투'가 엿보인다는 정도가 약간 이색적으로 느껴질 뿐이다.

온순한 그도 한국에 와서 겪은 일들을 털어놓을 때면 목소리가 높아졌다.

"2002년 3월 고등학교 2학년에 입학했다. 당시 20세였다. 나는 처음부터 북한에서 왔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학생들이 몰려와 '북한에도 껌이 있느냐', '볼펜이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어이가 없었다. 진짜로 몰라서 물어보는 것인지, 일부러 놀리려고 그러는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북한도 사람이 사는 곳 아닌가? 북한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온갖 질문이 쏟아지니 어느 순간부터 북한 출신이라는 것을 숨기고 싶어졌다."

북한에서 왔다면 사람들이 거리감을 느끼기 때문에 강원도에서 왔다거나 조선족이라고 말하는 새터민들도 많다. 박씨도 물건을 사러갔다가 말투에 주목한 가게 주인이 "어디서 왔냐"라고 물어 엉겁결에 "(자원봉사를 갔던)강원도 양양에서 왔다"라고 했는데 주인이 "나도 양양이 고향인데…"라고 말하는 바람에 황급히 가게를 뛰쳐나온 기억이 있다.

최근에도 친구들이 말하는 '픽업'(Pick up)이 무슨 뜻인지 몰라 집에 와 조용히 사전을 찾아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박씨는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한동안 길거리의 영어 간판과 친구들이 쓰는 외래어가 무슨 뜻인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남한 사람들이 영어를 너무 많이 쓴다"라고 말했다.

다음 학기에 그는 휴학할 예정이다. 졸업 이후의 미래에 대한 준비가 안 돼 있기 때문이다. 새터민 청소년들이 휴학하는 경우는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생활이 어려워서 또는 북한에 있는 부모님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서라고 박씨는 설명했다.

박씨에 비하면 김은희씨(가명·23)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부모님, 동생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14살 때인 1998년 평양 무용대학에서 무용을 공부하던 그녀는 "여행 가자"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나서 영영 고향을 떠났다. 중국에서 하루하루를 마음 졸이며 살던 그녀는 탈북 4년만인 2002년 한 목사의 도움을 얻어 한국에 왔다.

김씨는 "처음부터 남한에 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중국은 살 곳이 못 되고 북한에 갈 수도 없어 남한에 왔다, 아버지가 공대를 졸업한 기술자였고 어머니는 은행에 다녔기 때문에 굶어죽을 염려는 없었지만 사상적인 이유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2002년 김씨는 대구에 있는 가톨릭계 한 여고 2학년에 편입했는데 등교 첫 날을 잊지 못한다.

"신부님이 교복을 사 가지고 나를 데리러 오셨다. 교문에 들어서는데 창문에 학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날 하루 학교 수업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쉬는 시간만 되면 학생들이 몰려와 나를 구경하며 온갖 질문을 쏟아냈다. '북한에서는 어떤 생리대를 쓰느냐', '남자 친구는 언제 어떻게 사귀냐'는 따위의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새터민에겐 높기만한 현실적인 벽

웬만한 탤런트 뺨칠 만큼 빼어난 외모를 지닌 그녀는 지금 서울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영화학을 전공하고 있다. 하지만 졸업하기 위해서는 다큐멘터리나 영화를 찍어야 하는 등 갈수록 돈이 많이 들어 요즘은 전공을 바꿀까 고민하고 있다. 2년 동안 휴학하고 연기 현장에서 실습하며 실전 경험도 쌓았지만, 현실의 벽이 그녀에게는 여전히 높기만 하다.

"남한은 물질만능주의다. 돈이 중심이다. 돈 나고 사람 났나, 사람 나고 돈 났지. 이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없어질 것 같다. 없는 사람은 없는 삶을 살 것 같다. 북한에서는 토론을 많이 했는데 남한은 거의 주입식 교육을 하고 있다. 국내보다도 외국에 나가서 학위 따오면 대우 받는다. 이것은 아니다. 남한은 또 영어에 미쳐 있다. 엄마들은 외국인 강사라면 몹시 흥분한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한때 원대한 꿈을 꾸기도 했던 그녀는 직장을 얻어 좋은 남자 만나 평범하게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겪은 혼란과 고통을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에 살짝 이슬이 맺혔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한국에 온 지 1년 된 박민수씨(23)는 '새내기 새터민'이다. 2001년 탈북해 중국에 있는 음식점에서 배달을 하며 5년간 머물다가 한국에 와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대학에 입학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북한에 부모님을 두고 홀로 탈북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는 새터민 청소년 대안학교인 '셋넷학교'에 다니는 박씨는 "중국에서 TV나 인터넷을 통해 한국을 미리 접했다. 그때는 어렵게 산다고 생각했다. 남한에 들어와 하나원에서 교육 받을 때도 남한은 자본주의여서 인심이 없고 사람들도 탈북자를 싫어한다는 따위 무서운 이야기만 들었다. 자유가 있어서 좋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하니 부담스럽기도 하다. 자란 환경이 너무 틀려 친구들이 팝송이나 만화영화 등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웬만한 질문에는 "아직 잘 몰라 대답하기 곤란하다"라며 조심스러워했다.

이들 외에도 새터민 청소년들은 공통적으로 우리 사회의 배타성과 소외를 이야기했다.

"바라보는 시선마다 색안경을 끼고 보았다. 그런 시선 때문에 편견과 두려움이 생겼다. 또 한국 사회는 너무 대립적이고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다. 이념으로 인한 진보와 보수의 싸움이 대한민국 전체의 대립과 싸움으로 번져 있는 것 같다."(자강도 성간 출신 최아무개씨·대학생)

"사람들은 북한 사람이라고 하면 무슨 신기한 인형처럼 본다. 나는 그 시선이 싫다. 그냥 같은 사람인데 왜 다르게 보는지. 언젠가는 북한 남한이 아닌 같은 나라,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함경북도 함주 출신 김아무개씨·고등학생)

새터민 청소년들의 경우 아무래도 교육 문제가 중요하다. 하지만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새터민 청소년들의 중학교 취학률은 57.9%이고 고등학교 취학률은 10.9%에 불과하다. 남한 학생들의 경우 고등학교 취학률이 98%에 달하는 것과 비교된다. 게다가 학교를 자퇴하는 경우도 남한 학생들의 10배에 달한다. 남한 학생들보다 보통 세 살 정도 나이가 많은 반면 체격은 작고, 공부를 못 따라가기 때문에 갈등을 겪다 자퇴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새터민 청소년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북한에서 몇 학년까지 학교를 다녔는지에 따라 남한에서 학년을 배정받는다. 북한에서 기근에 시달린 새터민 청소년들은 남한 아이들에 비해 키가 보통 20~30cm 정도 작다.

한 번 생각해보자. 19살 새터민이 초등학교에서 체격이 비슷한 '동생'들과 공부하면서 성적이 하위권을 맴돈다면 기분이 어떨까. 기본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긴 호흡으로 교육해야 할 것 같고, 대안학교 등 일정한 교육기관을 거치면 나이에 맞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쪽으로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새터민 청소년들의 생활공동체인 다리공동체 마석훈 사무국장은 "통일은 같이 사는 것인데 이미 1만 명이나 왔다. 통일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남한이 아직 북한 사람들을 받을 준비가 안돼 있다. 배타적이다. 새터민들을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하면서 근거 없는 선입견과 차별적 대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귀순용사라고 추켜세우다 무능력하고 귀찮은 생활보호대상자로 대하는 남한 사회를 접한 새터민들은 냉혹함에 치를 떨곤 한다. 북한에서 왔다면 취직이 안 돼 연변에서 왔다고 둘러대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

국가청소년위원회 산하 무지개청소년센터 이수정 부소장은 "다른 경험과 색깔을 가진 청소년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실패가 아니라 한국 사회 주류의 실패다. 이런 측면에서 새터민 청소년들의 현실과 요구를 파악해서 그에 맞는 정책을 내오는 문제는 한국 사회의 과제라고 할 수 있다"라고 진단했다.

새터민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망 마련해야

문화적인 이질감은 물론 학력, 건강, 경제적 측면 등에서 새터민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망이 갖춰지지 못한 현실은 일종의 '사회적 배제'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셋넷학교 박상영 대표교사는 "탈북 과정보다 남한에 와서 더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하는 새터민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빨갱이 자식', '사람 고기 먹어봤냐'는 식의 물음이 이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박 교사는 "이들은 우리가 도시화되면서 잊어버린 순수한 정서와 감수성을 갖고 있다. 우리가 잊어버린 것을 되찾을 수 있는 최고의 스승들이 온 것이다. 이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식이 아니라 우리가 이들로부터 배운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사람들은 범죄에 연루되는 것 등을 예로 들어 새터민 청소년들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탈북한 이후에는 혹여 체포될까 마음 졸이며 평균 3년간 중국 등지에서 유랑 생활을 한 '특별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남한 아이들과 정상적으로 생활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 모른다.

다리공동체 마석훈 사무국장은 "내가 만난 아이들 가운데 '정상'인 경우가 드물 정도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저마다 커다란 고통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두만강을 건너다 머리를 다친 아이, 극심한 영양실조로 눈이 먼 아이, 눈 앞에서 온 가족이 북송되는 것을 목격한 아이. 이 때문에 새터민 청소년들 가운데는 천재지변, 전쟁, 사고 등의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아이들이 많다.

새터민 청소년들과 관련해 최근에는 새삼 '종교'가 부각되고 있다. 외롭고 의지할 곳 없는 새터민 청소년들에게 교회가 큰 의지인 것은 사실이다. 이들 대부분이 남한에 오는 과정에서, 또 남한에 온 뒤에 교회와 깊은 인연을 맺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을 봐야 한다는 지적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새터민 청소년들을 돕고 있는 한 관계자는 "새터민 가운데 종교를 가진 사람의 90%가 기독교를 믿는다. 심지어 어떤 교회는 새터민 청소년에게 한 달에 교회에 네 번 나오면 30만원을 준다고 소개하기도 있다. 새터민들을 일종의 '돈의 노예'로 만들어 북한 선교의 전초병으로 삼고자 하는 분위기마저 풍긴다.

또 다른 관계자도 "새터민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곳으로 교회 만한 곳이 없다. 그러나 일부 교회는 이들을 내세워 간증이나 부흥회를 하는 등 홍보수단으로 쓰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가 다양한 가치와 문화를 존중하는 열린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새터민 청소년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는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또 청소년 문제가 사회·가정 문제와 깊이 연관돼 있는 만큼 새터민 부모를 대상으로 한 각종 교육을 강화하는 등 보다 체계적이며 장기적인 사회적 지원망을 구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이 원고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한 <인권>잡지 5,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을 쓰신 소종섭 님은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기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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