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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너지자전거순례 셋째 날(5월 26일)은 경남 사천시 곤명면 작팔리 '큰들문화예술연습실'에서 시작하여 국도 2번과 국도 20번을 타고 진양호, 남강, 낙동강을 만나서 우포늪이 위치한 경상남도 창녕까지 약 110km를 이동하는 일정이다. <필자 주>

아름다운 진주

▲ 아침, 저녁 모둠원이 만들어 먹는 식사시간
ⓒ 촬영팀
새벽 5시, 여지없이 기상 신호가 울렸다. 불편한 잠자리 때문에 어제(25일) 쌓인 피로를 모두 풀만큼 깊은 잠을 자지 못했지만 순례단원들은 훈련소의 이등병들처럼 불평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자리를 정리하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서 식사준비를 하는 동안 안전팀원들은 모든 자전거의 구동부와 브레이크, 공기압을 체크 하고 간단한 수리까지 마쳤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 앞 도로에 출발 대형으로 정열한 시간은 오전 6시 50분. 몸을 푸는 스트레칭을 꼼꼼하게 마치고 순례단장이 오늘 일정에 대해 설명했다. 모두 두려워하는 3일 차 진주~우포 간 110Km 구간이었다. 넘어야 할 고개가 많고 하나같이 만만치 않다는 설명에 순례단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렇지만 마음이 긴장하더라도 몸까지 굳으면 안 된다. 어려운 일일수록 더욱 그렇다.

힘차게 울려 퍼지는 호각소리와 함께 우리는 진주 시내를 향해 출발했다. 자동차들이 주로 다니는 4차선 도로에 올라 당당하게 차선 하나를 차지하고 달리는 순례단원들의 모습이 씩씩해 보였다. 더욱이 거의 자동차 전용으로 사용하는 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는 기분은 더없이 상쾌했다.

이렇게 좋은 길을 자동차만 사용하다니! 도시와 도시 사이를 잇는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광주에서, 부산에서 서울로 이어지고, 대구에서 광주로 이어지는 자전거 전용 도로!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그런 날이 언제 오려나 기다리거나, 누군가 불쑥 내밀어 줄 선물로만 생각한다면 영영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하는 건 어디에나 적용되는 진리이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다.

남강댐 밑에서 시작되는 자전거 도로에 접어들었다. 도시의 입지 조건으로 강이 필수라고 한다. 남강댐이 들어서면서 강변에 백사장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남강은 아름다웠다. 도시를 관통해 흐르는 강 중에서 보기 드물 만큼 아름다운 강이었다. 진주성 밑으로는 자전거 도로가 없어서 순례단은 천수교를 지나 건너편 강 둔치에 있는 자전거 도로로 들어섰다.

▲ 천수교를 지나 건너편 강둔치에 있는 자전거 도로를 지나는 순례단
ⓒ 촬영팀
강 건너에 우뚝한 진주성이며 촉석루를 바라보며 달리는 남강변의 자전거 도로는 정말 할 수 있다면 광주로 옮겨놓고 싶을 만큼 탐이 났다. 노면상태도 좋고 인도와 분리되어 있어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변에 자전거를 세우고 김석봉 진주환경운동연합 대표님으로부터 진주의 시민 자전거 운동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자전거 타기에 좋은 환경을 기다리지 말고 약간 불편하더라도 자전거를 타면서 좋은 환경을 요구해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자전거는 참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는 운동기구, 누구에게는 지구를 살리는 대안, 누구에게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도구이다. 어떤 사람은 자전거를 더 보급하기 위해 생활을 희생하며 활동하기도 한다.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부럽지만 남의 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살고 싶은 삶은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오를 때는 한 가지 생각뿐이고 내려갈 때는 아무 생각 안 난다

남강 강둑에 시원스레 뻗은 자전거 길을 달려 의령으로 가는 1013번 지방도로에 접어들었다. 자전거들 뒤로 자동차들이 점점 길게 늘어섰다. 적당한 곳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추월을 시킬 때마다 자동차 운전자들의 반응이 다양했다.

"죄송합니다"라고 외치며 꾸벅 인사를 하는 순례단의 안전팀에게 손을 흔들어 주는 운전자가 많았고, 무서운 눈으로 쏘아보며 입 모양만 봐도 내용을 알 수 있는 한마디를 내던지며 지나가는 운전자도 있었다. 그래도 열심히 인사를 하는 안전팀원들, 운전자들의 자전거에 대한 인상이 결정되는 순간일 것이다.

▲ 여기저기 공사로 대형트럭은 1차선에서도 무서운 속도와 매연, 경적을 울리면서 달린다.
ⓒ 촬영팀
고갯길이 시작되었다. 대형 트럭들이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오르내리는 고갯길은 자전거에게는 고행 길이었다.

햇살은 뜨겁고 고갯길은 길고 다리에는 힘이 빠진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시작하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더 뜨거운 땀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헉헉대며 페달을 밟았다. 근육이면 근육, 심장이면 심장, 폐면 폐, 어디 하나 힘들지 않은 곳이 없었다.

순례단원 중에서 자전거를 좀 타본 사람들은 쭉쭉 차고 올라가지만 자전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금세 뒤로 처졌다. 안전팀원들이 고함을 지르고 밀어올리기도 하지만 대열은 선두 그룹을 제외하고 길게 흩어져 버렸다.

하나씩 둘씩 점이 되어 도로에 흩어진 자전거들,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거침없이 추월하는 모습이 보였다. 자전거 여러 대가 한 몸을 이뤄 달릴 때는 그나마 자동차들이 신중하게 추월을 하더니 대열이 이래저래 흩어지자 자동차들은 빈공간으로 끼어들기, 추월하기 등 안전에 위협을 받는 순간이었다. 어렵고 힘들수록 함께 나가야 한다는 다소 식상한 한마디가 새로이 새겨진다.

페달을 굴려도 굴려도 고갯길은 끝나지 않았다. 걸어가는 속도와 다를 바 없는 자전거. 입에서 단내가 나고 땀방울이 흘러 눈가가 쓰라리다. 당장이라도 자전거에서 내려 걷고 싶지만 내려서는 안 된다. 느리게 가더라도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결국 끝까지 갈 수 있는 길이다.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다. '이 길이 언제 끝나나~'하는 생각. 하고 또 하고 또 했다. 손이 눈보다 부지런하다는 말이 있던데 지금 같으면 다리가 마음보다 부지런하다가 될 것이다.

결국 고갯마루가 보였다. 먼저 도착한 순례단원들이 뒤늦게 들어온 단원들을 박수로 격려했다. 자전거를 세우고 풀밭에 주저앉아 물 한 모금으로 잠시 숨을 돌렸다. 그리고 태초의 언약이 있었으니 올라온 사람에게는 반드시 내리막길이 주어진다는 것. 굽이진 내리막길을 신나게 달려 내려가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바람소리와 타이어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도시에서는 내보지 못할 속도에 다들 긴장하면서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당연했다. 오른 자의 권리니 말이다.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싶었던 내리막길은 짧게 끝나고 다시 새로운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다시 고개를 드는 생각 하나. '이 길은 과연 언제 끝날까?'

노력하는 인간은 발전한다

▲ 고갯길 언덕이 끝나고 물 한 모금
ⓒ 촬영팀
순례단장이 호위해준 경찰들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과감하게 가본 적 없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거리상으로는 약간 돌더라도 남은 고개들을 돌아갈 수 있는 길로 가기로 한 것이다.

선택은 적중했다. 서로 격려해가며 쉬지 않고 열심히 달린 결과 만만치 않은 고개 하나를 넘자 의령읍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남산 공원에서 식사를 마치고 잠깐 동안 휴식시간을 가졌다. 가장 힘들다는 코스를 예정보다 빠르게 주파한 만족감에 다들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물가에서 소주와 불고기를 즐기던 두 커플들이 자전거들에 둘러싸여 당황하기도 했지만 곧 웃음과 함께 볼이 넘치도록 듬뿍 상추에 싼 불고기를 순례단원 몇에게 먹여 주었다. 혀가 녹을 듯 맛있는 불고기 맛과 함께 되갚을 수 없는 친절함으로 의령을 기억할 것이다.

읍내를 지나 고개 하나를 더 넘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힘들어하던 낙오 단골들이 차차 힘을 내 자전거를 타고 고개를 넘었다. 속도는 늦지만 기어이 자전거를 타고 고개를 오른 것이었다. 고개가 낮았던 것이 아니었다. 다들 체력이 떨어지는 3일 차에 이들은 오히려 발전하고 있었다.

최후의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고갯마루에 올라서는 순간 순례단원들에게서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환성이 터졌다. 최후의 한 사람은 더이상 낙오자가 아니었다. 그저 조금 늦게 올라온 사람이었다. 과거 낙오 단골이던 순례원은 벌겋게 달아오른 땀투성이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이제껏 보아온 미안함과 자기에 대한 실망이 섞인 표정이 변하여 생긴 것이니만큼 보는 이들의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

오늘(26일) 최고 낮 기온이 30도가 넘었다. 정말 날은 더웠다. 여름이면 늘 일기예보에 나오는 합천 인근이어서 일 것이다. 지원팀의 간식공급이 늘어났다. 오이와 토마토, 영양갱, 아이스크림, 미숫가루, 얼음생수 등 전투력은 지원이 절반이었다.

멀어만 보였던 우포늪이 가까워질수록 페달을 밟는 발에 새로운 힘이 솟았다. 어디에 남은 힘이 숨어 있었는지 모두 기운차게 달렸다. 바람결에 얼핏 비릿하면서도 신선한 물 냄새가 묻어 왔다. 이정표에는 낙동강이라는 표지판이 보이면서 우리의 거리가 부쩍부쩍 줄어들었다.

▲ 경상남도 창녕에 낙동강 줄기인 적산교를 지나고 있는 순례단
ⓒ 촬영팀
야간주행을 고려해 준비한 라이트며 무전기, 경광봉을 써볼 기회도 없이 해가 상당히 남아 있을 때, 오늘 밤 숙소인 창녕군 이방면 안리 노인 경로당에 도착했다. 회관에 계시던 할머니들이 자리를 비켜주셨다. 미안한 마음에 할머니를 집까지 부축해드린 맏며느릿감 순례단원이 있었고, 인근 농가에서 햇마늘 단을 옮겨준 순례단원들이 있었다.

▲ 노인경로당에 자리를 비켜주시는 할머니를 집까지 부축하는 순례단
ⓒ 촬영팀
익숙한 솜씨로 저녁을 먹고 촛불을 밝힌 다음 돌아보면 짧게 느껴진 사흘 동안의 자전거 주행을 생각하며 소감을 발표했다.

다들 뭔가를 느끼고 뭔가를 마음에 담은 시간이었다. 땀이 빠져나간 자리에 채워지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피가 되고 살이 될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동안 촬영했던 사진들을 보고 비밀리에 서로 위해주었던 마니또 발표시간이 있었다.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 따뜻한 눈길, 마지막 밤을 위해 준비한 시원한 맥주. 아쉬움과 성취감과 사람을 알아가는 기쁨에 노인경로당의 밤은 젊은 열기로 가득했다. 일생에 몇 번 되지 않을 즐거운 밤이었다. 그래서 더욱 오랫동안 기억될 밤이었다.

#청년에너지자전거순례#자전거#진주#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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