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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의 비장함과 설레임으로 로체남벽 정상등정을 위하여 베이스캠프를 출발하는 대원들과 셀파들.
ⓒ 한국산악재단
12월 18일, 전 대원과 셀파들, 현지 주방장이 모두 나와서 정상등정을 위하여 출발하는 대원들에게 안전하고 성공적인 등반을 기원하며 서로 포옹을 하고 굳은 악수로써 배웅을 하였다.

산악인들에게 이러한 순간의 인사의식이 영겁의 세월동안 다시 볼 수 없는 마지막 이별이 될지도 모른다. 출발하는 대원이나 베이스캠프에 남아 있는 대원들은 마음 속으로 다 그렇게 착잡한 생각을 하지만 가급적이면 그런 것을 애써 외면하려고 대원들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길을 떠난다.

강기석 대원은 최준열(아웃도어 사진작가)대원에게 약간 남은 햄으로 계란말이를 준비해 하나도 손대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다.

정상 공격을 위해 베이스에서 캠프1로 향하는 대원들은 약간의 비장함과 설레임으로 발길은 여유가 있는 편이다. 오전 10시 30분, 짐을 챙기고 베이스캠프를 출발했다. 식량은 각자의 간식과 K2 1리터 물통에 김치를 가득 채워 가져갔다.

그리고 약간의 즉석 햇반과 즉석 쌀, 김 한 봉지. 우리가 정상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는 날까지 먹을 식량 전부다. 짐의 무게만큼 영양은 보충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체력이 소모되므로 무게를 최대한 줄였다.

순간의 인사의식이 주는 무게

▲ 이번 원정에서 기록과 촬영, 통역, 정보 분석 등 로체남벽 등반의 지원팀장 역할을 한 최준열 대원
ⓒ 한국산악재단
베이스캠프에서 30분 정도 모래인 지대를 통과하면 3인용 텐트의 임시 캠프가 나온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한 후 장비를 착용하고 출발한다. 여기서부터는 여기 저기 크레바스를 건너고 얼음 지대를 걷는데 1시간 정도 오르면 고정로프가 있는 지점에 도착한다.

오르는 중간에 4m 폭 정도 되는 얼음이 균열된 틈(크레바스)이 있는데 다행히 여름에 녹았는지 속은 얼음으로 메워져서 조심스럽게 건널 수 있었다. 하지만 올라갈수록 조금씩 갈라지는 설빙(雪氷) 구간은 힘껏 건너뛰어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고정로프가 시작되는 구간부터 공포의 낙석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아니 이제부터 저승사자 같은 낙석이 떨어지는 지대로 우리가 입장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본격적인 등반 지대로 들어가는데 이번엔 제법 큰 수박만한 크기의 낙석이 불길하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안치영 대원이 아래쪽에서 오르는 강기석 대원을 향해 "낙석!"이라고 외치며 피하라고 했으나 낙석은 우리를 조롱이라도 하듯이 바람을 타고 반대방향으로 질주하였다.

이번 로체남벽 등반에서 제일 힘들었던 요인 중에 하나는 폭포수 같이 쏟아지는 낙석이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낙석은 사방에서 강속구 소리를 내며 바위벽에 잔인하게 부딪친다. 이곳 낙석의 대부분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보통 참외만하거나 양손바닥 크기의 평판 낙석이 8천m, 7천m에서 시작되어 허공을 날으는 그 소름끼치는 소리만 들어도 등반 의욕을 상실케 만든다.

일본팀 셀파 2명은 단두대 칼날처럼 평판 낙석을 이마 위에서 얼굴 아래로 맞아 턱까지 날아가서 얼굴의 형상이 없어지는 끔찍한 일이 있었다. 8천, 7천m 위에서 떨어지는 낙석이었지만 다행히 목숨을 부지했는데 상처 부위가 혹한의 동상으로 다시 악화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2003년에는 등반하던 일본팀 대원1명이 낙석을 맞아 헬기로 긴급후송되는 일이 있었다.

캠프 1까지는 고정로프가 2동이 설치되어 있다. 일본대와 한국대가 따로 설치했다.
일본대 캠프는 커다란 바위 밑에 설치했는데 중앙에 빙벽이 형성되어 있다.

일명 비너스 허리라고 불리는 바위의 오른쪽 편에 텐트 4동을 설치를 했고 우리는 빙벽 왼쪽 편으로 텐트3동을 자리 잡았다. 일본대는 여러 명의 셀파들과 센다상과 겐모지상이 올라와 있다. 센다 대원은 안치영 대원과 파트너가 되어 여러 차례 정상으로 이르는 루트 개척을 같이 한 기량이 뛰어난 고산거벽 등반가이다.

▲ 5900m 캠프1, 직벽 아래에 비좁은 지점에 간신히 텐트 2동을 설치하고 강풍에 날아가지 않게 로프로 고정하였다. 텐트 앞뒤와 위쪽은 암벽이고 좌측 아래는 설벽이다.
ⓒ 한국산악재단
내일 캠프2로 향하는 일본대의 출발시각은 새벽 3시. 셀파들이 출발하고 대원들은 새벽3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한다.

한국대는 새벽 4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앞서가는 등반자가 가까이 있으면 무수히 많은 낙빙(落氷)과 낙석이 떨어진다. 그래서 대원들간 30분의 간격을 두고 출발을 결정했다.

캠프 1에서 압축쌀과 연료, 산소, 암벽용과 설벽에 사용할 장비를 챙겨 놓고 저녁 7시 잠을 청했다. 로체샬 남벽 쪽에서는 굉음을 내며 눈덩이가 계속 쏟아져 내린다. 안치영 대원은 8개월 전에 바로 옆의 로체샤르 봉 8200m까지 다른 정상공격조가 등정을 하도록 선두에서 루트개척 작업을 하였다.

사나운 꿈자리

▲ 캠프1의 눈사태 장면. 로체남벽의 눈사태는 낙석과 함께 쏟아지며 여진으로 주변의 암벽과 설벽의 지형을 불안정하게 바꾸어 놓는다.
ⓒ 한국산악재단
19일 새벽 2시30분 눈을 떴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강풍으로 잠자리가 불편해서 그런지 꿈자리가 사납다. 그러나 이런 긴박한 조건에서 그런 꿈은 한가한 비현실일 뿐이다. 현실에서 당장에 살아남는 게 가장 중요한 이 치열한 등반에서는 장애가 될 수 없었다.

각자 텐트 1동씩 들어가 눈을 붙이고 있어서 안치영 대원은 텐트 안에서 크게 옆의 강기석 대원의 이름을 불렀다. 웅웅거리는 강풍 소리에 잘 들리지 않았는지 한참을 부르니 일어나 부스럭부스럭 짐을 정리하고, 안치영 대원은 뜨거운 물을 부어서 만든 즉석식 아침 준비를 했다. 새벽 3시쯤 되자 일본팀 셀파들이 바위구간을 아이젠 긁는 소리를 내며 등반하느라 분주하다. 새벽 4시에 우리는 캠프2를 향해 출발했다.

▲ 직벽의 비너스 허리 구간을 지나 7100m의 캠프2로 올라가고 있는 대원들. 로체남벽의 모든 낙석들이 모여드는 통로이다.
ⓒ 한국산악재단
캠프1과 캠프2의 거리는 아득히 멀다. 1100m 고도를 하루에 올라야 한다. 중간지대가 낙석이 쏟아지는 루트이고 마땅히 캠프를 설치할 공간도 없는 경사도가 높은 구간이다. 고소적응이 안된 상태에서는 12시간 정도 등반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다. 경사 80도 이상의 위협적인 암벽구간은 한국대 로프와 일본대 로프가 별도로 고정되어 있다.

기존에 있던 고정로프들은 낡아서 전부 철수했다. 그리고 가벼우면서 인장강도가 높은 소재근 로프 8mm와 10mm를 설치했다. 그리고 바위에 박힌 기존의 확보지점을 견고하게 재정비하였다. 여기 암벽구간은 역층으로 층층이 된 경사벽이 많고 바위가 날카롭게 각이 져 로프가 빨리 마모되고 상한다.

얼마 전에는 우리팀의 셀파 1명이 등반을 끝마치고 여기서 하강하다 로프가 끊어져 6~7m 정도 추락하다가 확보물에 걸리는 사고가 있었다. 다행히 배낭을 메고 있고 다른 로프에 간이 보조 로프를 걸고 하강해서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목숨을 잃을 뻔한 사고였다.

새벽의 캄캄한 벽 밑으로 아이젠이 바위에 긁히는 소리가 들리고 헤드랜턴 불빛이 반짝인다. 이 비너스 허리 구간을 지나서 설빙 구간이 펼쳐진다. 여기엔 낙석이 우리에게 잠시도 쉴 틈을 안주고 쏟아붓는 편이다. 특히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눈가루 날리듯이 낙석이 날아다닌다. 이 구간을 오를 땐 항상 위를 보고 떨어지는 낙석을 피하려고 준비를 하여 등반을 한다.

오늘은 고소포터인 파상보티가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인다. 오르는 동안 자주 쉬면서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힘들어 보인다. 무리하지 말고 내려가라고 했더니 계속 등반하겠다고 주장한다. 안치영 대원은 낙석이 쏟아지는 거대한 암벽에서 혼자 오르는 것 보다 동행이 필요했다. 그러나 사고시를 대비하면 오히려 부담스럽다.

로체남벽 같은 고산거벽에서 사고시 구조란 거의 불가능하다. 단신으로 자신의 힘으로 버텨내기도 힘든 극한 상황에선 남을 돕는다는 것은 같이 죽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스스로 살아남는 것이 남을 도와주는 것이다.

▲ 낙석을 맞아 20일간 요양을 한 다음 바로 3천여m의 거벽을 1박2일만에 등반한 강력한 탱크엔진 강기석 대원, 베이스켐프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로체남벽의 등반대원들을 관찰하고 있다.
ⓒ 한국산악재단
설릉(雪陵)이 끝나는 암벽 밑에 도착했을 때 밑으로 강기석 대원이 올라오고 있다. 강기석 대원의 체력은 강력한 탱크 엔진이다. 낙석으로 팔에 중상을 입고 20일 넘게 베이스캠프에서 요양을 해 고소적응이 안 되었음에도 저돌적으로 등반을 밀어붙인다.

여기서부터는 암벽 밑으로 돌아 횡단한 후 까마득한 빙벽구간이 시작된다. 험악한 구간의 고비를 한번 넘으면 더 용이한 상황이 펼쳐지리라 희망하지만 또 다시 억센 고비가 시작되었다. 체념하지 않고 그렇게 집념으로 꾸준히 오르는 것이 등반인가 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의 기록은 안치영 대원이 맡았습니다. 'invincible 난공불락' 한국 로체남벽 원정대 홈페이지는 www.invincible.or.kr 입니다.


#로체남벽#로체원정대#청소년챌린저원정대#챌린저원정대#난공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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