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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대학생 기자상 결선 참가자들은 지정기사와 자유기사 각 1편 이상을 출품해야 합니다. 지정기사 공통주제는 '빛나는 조연' 입니다. <편집자주>
▲ 춘천시 동면 장학리에 있는 연탄은행.
ⓒ 왕보영
"할머니, 연탄이 하나도 없네요. 연탄이 다 떨어지기 전에 전화 주셨어야죠. 추우셨을 텐데…."
"미안해서 그려."
"할머니, 연탄 없으면 불 꺼진 냉방에서 주무셔야 하잖아요."
"허허, 그래도 미안해서 그려."
"할머니, 앞으로는 미안해하시지 말고 30장 남았을 때, 그때 전화하세요. 아셨죠?"


오늘도 '춘천 연탄은행'(연탄은행) 자원봉사자들은 추운 방에서 홀로 지내고 있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연탄을 배달하러 간다. 2004년 10월 1일에 개원한 '춘천 연탄은행'이 지금까지 이웃들과 나눈 연탄만 21만 여장에 달한다.

연탄은행은 600여 가정을 겨울 추위로부터 지켜주는 방패막이다. 연탄은행은 화려하지도, 규모가 크지도 않다. 조립식으로 지어서인지지 성의 없어 보이고,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게다가 여기저기 까만 때가 얼룩덜룩 묻어있다. 이렇게 초라한 공간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작지만 큰 희망이 되고 있다. 감히 '보물창고'라고 말해도 될 듯싶다.

봉사활동이 이뤄지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 9시가 되면, 어느새 사람들이 하나둘씩 연탄은행으로 모여든다. 지난 23일에도 사람들은 어김없이 모였다.

"연탄이 이렇게 무거운 줄 몰랐어요"

▲ 연탄창고에서 차량으로 연탄을 옮기는 모습.
ⓒ 왕보영
요즘 날씨가 예년보다 포근하다고는 하지만, 아침이어서인지 차가운 겨울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 시리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나선 자원봉사자들이다.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이지만, 아마 같은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연탄은행 대표인 정해창(48·목사)씨를 비롯한 연탄은행 식구들이 그런 자원봉사자들을 반갑게 맞아줬다.

1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모였다. 모두 목장갑과 '연탄은행'이란 글귀가 적힌 조끼를 챙겨들고 출발준비를 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넓은 도로가 있는 곳도 아니고 그 흔한 슈퍼마켓 가까이 있는 곳도 아니다. 구불구불한 도로가 계속 이어지고,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만한 골목길이다. 따뜻한 기름보일러가 있는 곳에서 지내는 우리에겐 낯선 풍경이다.

그 좁은 골목길에 연탄차량을 세워놓자마자, 중학생부터 60,70대까지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분주해진다. 약속이라도 한 듯 일렬로 서서 손에서 손으로 연탄을 전달한다. '아름답다'는 말 외엔 적당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는다.

"연탄이 이렇게 무거운 줄 몰랐어요."

연탄은행을 처음 찾은 박용진(춘천·16) 학생의 말이다.

"저희 할머니도 연탄을 때시는데, 할머니에게 전해드린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나르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손이 아프긴 해도 기분은 좋네요."

박용진 학생은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연탄을 나르는 데 여념이 없다.

"작년엔 봉사자들 중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젊은이들이 많이 와줘서 일이 얼마나 수월한지 몰라요."

지난 겨울부터 연탄은행 차량 운전 봉사를 하는 화길홍(춘천·62)씨. 화씨도 연탄은행의 수급자다.

"여태껏 살면서 남에게 도움의 손길 같은 것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생활이 점점 힘들어지면서 시청을 통해 이곳에 문의했는데, 아무런 조건 없이 연탄을 주시더라고요. 그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적지 않은 나이지만 화씨는 남을 도울 수 있어 자부심도 생기고 오히려 즐겁다고 말한다.

아찔한 가스중독의 기억... "연탄, 원수같이 밉지만..."

▲ 일렬로 연탄을 나르는 자원봉사자들.
ⓒ 왕보영
연탄 100장을 거의 다 전했을 때쯤 김정순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오셨다. 병원에 다녀오시는지 손엔 약 봉지가 한가득 들려있다.

"아이고, 추운데 고생이 많어. 커피라도 타줄게. 마시고들 가."

300원이 없어 연탄사기도 힘든 살림살이인데도, 할머니는 고맙다며 10여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커피를 타주겠다고 야단이다.

매주 이곳에서 봉사하는 유영균(한림대 4학년)씨는 "이분들의 경제적 사정을 뻔히 아는데 올 때마다 커피며, 두유며 다 내주시려고 하시는 걸 보면 코끝이 찡하다"고 말한다.

"커피뿐만 아니라, 박암리에 혼자 사시는 할머님은 연탄배달 가면 항상 칼국수를 끓여주세요. 한편으론 연탄 말고도 이것저것 더 챙겨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우리가 더 죄송스럽죠."

▲ 연탄수급자인 김정순 할머니.
ⓒ 왕보영
연탄을 건네주는 일이 마냥 행복한 건 아니다. 배달을 간 그곳에서 홀로 사는 할머니에게 얼마 전 연탄가스를 마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혼자 살다보니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사람 살려요~, 사라~ 사리어~."

연탄가스를 마시고 점점 굳어가는 혀 때문에 발음도 제대로 할 수 없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다행스럽게도 아침에 놀러온 이웃이 쓰러져 있는 할머니를 보고 도와줬다고 한다.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끔찍해. 그래서 지금은 춥더라도 문을 좀 열어놓고 자. 연탄 때기 싫어. 그래도 어떡해. 돈이 없는 걸…. 저게 원수같이 미워도, 없으면 추워서 살 수가 없어."

이처럼 연탄 수급자들은 대부분 초라한 집에서 추위를 견디며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다. 단돈 300원이 없어서 추위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이들에게 연탄은행은 생명줄과도 같다. 연탄가스 중독 등 위험요소가 있지만, 이것마저 없으면 이들은 당장 이 추운 겨울을 지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웃들에게 연탄은행은 연탄뿐 아니라 마음도 전하고 있었다. "어디 편찮으신 데는 없으시죠?", "잘 지내셨어요?", "다음에 연탄 가지고 또 올게요" 등 진심어린 말 한마디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던 이들의 마음까지 녹여준다.

이곳저곳, 골목을 돌고 돌아 1600장의 연탄을 다 나르고 나면 어느새 해가 저문다. 몸은 고단하지만, 마음만큼은 까만 연탄에서 타오르는 불처럼 뜨겁다.

하루 동안 수고한 자원봉사자들은 고생이 많았다며 서로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다음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한다.

"작년엔 일손이 많이 부족했어요. 지금 이렇게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아 감사할 따름이죠."

정해창 목사는 "후원의 손길도 점점 많아져 기쁘고 좋지만, 한편으론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것이 자꾸 생겨나고 활성화되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하네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 1월 23일 연탄은행에 모인 자원봉사자들.
ⓒ 왕보영

태그:#연탄은행, #사랑의 연탄, #연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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