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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紙)방으로 전통한지를 팔던 곳에 펼쳐진 부채. 그러나 왜 그런지 저 부채도 낯이 설다.
ⓒ 양지혜
인사동이 달라졌다고 했다. 인사동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고도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밀치고 들어온 많은 변화가 인사동을 어지럽힌다는 가담항설(街談巷說)도 알고 있었다. 그런 인사동을 어제(5일)는 찬찬히 들여다보고 걸어보았다. 그곳에서 '변화'라고 말하는 인사동의 현재를 만났다.

▲ 인사동 초입. 노점에 펼쳐진 중국 골동품들.
ⓒ 양지혜
예전부터 인사동은 햇차가 나오기 시작하는 이른 봄부터 이즈음이 가장 아름답고,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그러나 옛 기억처럼 허망한 것이 없다더니, 인사동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윽한 차 향이나 부담없이 들어설 수 있었던 자그마한 갤러리, 전통 수제종이와 붓, 고서화를 위한 표구점들, 시간의 유구함을 말하던 골동품들, 그리고 품위 있던 도자기와 그림을 받쳐주던 매력적인 액자점들이 인사동의 얼굴이고 속내였다.

인사동 거리는 발걸음을 옮겨가며 그 어디로 시선을 두어도 아름답고 고혹적인 풍경들이 눈을 즐겁게 했다. 그리고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던 인사동만이 가진 특별한 향기가 폴폴 나던 곳이었다. 그랬건만 어제 찾아 간 인사동의 모습은 낯설움과 알 수 없는 불쾌함만이 가득했다.

▲ 넘치도록 쌓여있는 많은 물품들은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 양지혜
예전에 인사동 거리를 오갈라치면 가끔씩 부딪치던 행인들 중에는 멋진 글을 썼던 고은 시인도 있었고, 먼 서울 길을 다니러 왔다가 차 한잔을 즐기시던 큰스님들의 모습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전시회를 열었다던 선배와 우연히 마주치는 행운도 있었으며, 다완 구경을 하며 공짜 차를 얻다 친해진 다도를 강의하던 선생님도 있었건만….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반가움이 없다.

그저 넘치는 인파에 떠밀리다시피 바쁜 걸음을 옮겨야 하는 번잡함만이 출렁였다. 묵직한 기품으로 자리한 도자기를 하루종일이라도 맘껏 감상할 수 있고, 전각된 낙관의 정교함에 속닥거리던 유리 안의 모습도 사라졌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으로 큰마음 먹고 붓을 마련해 보려고 들렀던 필방에서 이 붓 저 붓의 부드러움을 쓰다듬던 기억은 그저 박제된 나만의 추억이었을까?

▲ 작은 골목까지도 점령한 국적 불명의 골동품과 기념품들이 우리의 전통문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 양지혜
'변화'를 했다는 '전통문화의 거리' 인사동에 대한 지난날의 모습을 기억하며, 20년을 넘게 오가며 지켜본 인사동. 내 눈에는 '변화'가 아닌 충격적인 '전통의 파괴'와 '문화의 난장판'으로 보였다.

중국의 싸구려 잡화들이 골동품으로 둔갑해 있었고, 우리의 차향을 대신해 중국차가 비싼 값으로 판매되고 있었으며, 전통을 이어 온 도자와 서화를 밀어내고 국적불명의 유치한 모습의 돌들로 치장한 악세사리들이 난장을 폈다.

그 어디에도 이전 인사동의 기품 넘치던 문화는 없었다. 골목 어귀마다 다닥다닥 자리했던 전통 찻집대신, 진한 커피향이 넘치는 카페와 기름냄새 풀풀 나는 음식점들이 빼곡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전통문화거리' 인사동, 그 모습은 마치 한복에 하이힐을 신은 것처럼 내 기억 속의 인사동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천착된 문화이고, 전통과의 불협화음이었다.

▲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는 몇 곳 남지 않은 인사동의 터줏대감인 도자와 다기점.
ⓒ 양지혜
인사동을 방문할 때면 기념으로 하나씩 사던 찻잔. 이번에도 기념 찻잔 하나를 사려고 그나마 눈에 익은 다기집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전통다기만 있을 것이라 믿었던 그곳에도 중국다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장작가마에서 나온 것인지, 가스가마에서 생산된 것인지가 궁금증이었던 다기는 이제 '중국제가 아닌가'라는 물음으로 바뀐 현실이었다.

다기집 주인은 오랜만에 들른 까마득한 기억 속의 단골에게 씁쓸한 인사동의 현실을 전했다. "중국 다기 안 팔면 가게 유지를 못해요. 누가 요즘 비싼 장작가마 다기를 산다고…." 무슨 죄라도 지은 양, 변명처럼 말한 그는 사실 우리 제부(여동생 남편)의 옆 가게 친구였다.

마침 들어선 젊은 손님들은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그마한 중국다기 한 세트를 선생님 선물용이라고 흥정을 해댔다. 중국다기는 중국차를 마시는 사람에게나 필요한 것임을 그들은 알까? 불편한 마음과 손님과의 흥정을 깨뜨릴까 싶어 인사도 없이 나왔다.

▲ 퇴색되고 쇠락한 모습이 인사동의 전통문화의 현주소일까? 할머니의 모습 속에서 인사동이 보였다.
ⓒ 양지혜
무겁고 우울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향긋한 대추차 한잔을 마시기로 했다. 달라진 겉모습에 혹시 주인이 바뀐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며, 인사동에 올 때면 꼭 들르곤 했던 찻집으로 들어섰다. 다행이 주인은 그대로 찻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 집만의 특별한 대추차 한 잔을 마주한 채 세월 속 기억 저편의 얘기들로 잠시 인사동 추억을 더듬어 보며, 인사동의 탐탁치(?) 않은 '변화'에 대해 얘길 나눴다.

오히려 '전통 문화의 거리'로 인사동을 지정한 것이 '먹고 마시기'를 즐기게 하고, '저급한 국적불명의 벼룩시장' 되게 한 이유가 아닌지…. 푸념과 하소연 속에서 그녀는 이젠 몇 곳 남지 않은 인사동의 터줏대감들마저 곧 떠날 것이란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 제부가 경영했던 골동품과 다기를 팔던 곳. 간판만이 남아 있었다.
ⓒ 양지혜
그러나 이런 인사동은 내게는 개인적인 이유로 가깝고 정겨운 곳이기도 했고, 인사동을 조금 깊게 알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몇 달 전까지는 제부가 했던 골동품 가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제부의 가게가 어렵게 팔렸다는 소식은 얼마 전에 들었지만, 그간 정들었던 모습이 보고 싶고 궁금했다.

그렇게 찾아 간 가게. 하지만 이전 제부의 가게를 채웠던 골동품들은 흔적도 없고, 눈에 익은 간판만 남은 채 인사동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유리구슬과 반짝거리는 여자 액세서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달라진 모습에 알 수 없는 허탈감이 엄습했다. 그러한 '변화'는 비단 제부 가게만의 모습이 아니라 '인사동의 현실'이란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어지간하면 인사동을 떠나지 않겠다고 버텼던 제부. 그런 제부가 인사동의 가장 큰 문제인 비싼 임대료와 골동품 소비지의 강남이전, 차 수요의 급락 등의 이유로 몇 년을 경영난에 허덕이다가 어렵게 가게를 정리하고 아쉬움 속에 정든 인사동을 떠났다.

▲ '전통 문화의 거리' 표지가 어색하기만 한 이유는 무엇일까?
ⓒ 양지혜
더구나 골동품과 전통다기의 수요가 한정된 상황에서 IMF를 겪으면서 경제난에 처한다. 여기에다 잘못된 인식으로 전통차보다는 중국차의 소비가 늘어났고, 중국의 위조나 모조 골동품들이 난립했고, 더 나아가 골동품 수요자들이 해외에서 역구매를 했고, 보따리상들의 난무 등 불가피한 여러 가지 사정이 발생했다. 더 이상 인사동에서 골동품과 전통다기가 버티기를 어렵게 만든 이유였다.

이렇게 아쉬움 속에 현실적인 이유로 인사동을 떠난 이가 어디 제부뿐이겠는가. 전통과 문화를 가꾸며 인사동을 지켜냈던 그들의 떠남을 막아 볼 방법이 그저 허울뿐인 '전통문화의 거리'란 이름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리고 전통과 문화가 사라진 인사동을 어떻게 다시 복원을 할 수 있을까.

▲ 현대적인 모습으로 바뀐 갤러리가 그나마 인사동에 '문화의 향기'를 남기고 있다.
ⓒ 양지혜
이리저리 인사동 곳곳을 오랜만에 들여다보느라 약속 시간이 훌쩍 지났다. 서둘러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는 걸음 속에서 느껴지는 여전히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이국적인 풍경들. 그 사이로 의미를 상실한 채 외롭게 버티고 서 있는 '전통 문화의 거리'란 안내판 위로 어느 곳에서 흘러든 것인지도 모를 국적불명의 '전통과 문화'만이 술렁대고 있었다.

인사동 거리, 그 어디에 '문화와 전통'이 있다는 것인가? 코끝을 밀치고 후벼대며 들어오는 진한 커피향이 인사동의 전통인가? 형형색색 날카롭고 얄팍한 중국산 골동 소품들이 우리의 문화인가? 주렁주렁 매달린 동남아 싸구려 색돌들이 우리들의 인사동 전통거리의 주인인가?

▲ 인사동을 지켰던 이런 곳들은 이제 뒷골목 깊숙이 숨어 버렸다.
ⓒ 양지혜
못마땅함을 지닌 채 천착된 인사동의 모습을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에게 중국산 골동품(?)을 팔던 주인이 친절하게 말을 건다. "이거 중국이나 동남아 여행 때 샀다고 하지 말고, 유럽 여행 중 벼룩시장에서 샀다고 하세요∼."

기가 차 멍해진 나를 대신해 곁에서 바람잡이를 하는 아주머니는 더 친절하게 한마디 훈수를 더한다. "저 총각은 아쌀해. 중국산은 중국산이라고 미리 알려 주거든. 하나 사다 놔. 집에 오는 사람들이 중국산인지 우리 골동품인지 어떻게 알아?"

몰려오는 짜증스러움에 대꾸도 없이 서둘러 발길을 돌리는 나를 대신해 곁에서 구경을 하던 외국인은 중국산 연적 하나를 고르더니, 1만원짜리 지폐를 내민다. 화딱! 붉어지는 내 얼굴이 지는 노을 탓이었을까?

저 멀리서 지인이 환한 웃음을 날리며 다가온다. 인사동에는 문화와 전통 대신 지인의 미소만이 남았다. 다시는 들러 보고 싶지 않은, 전통과 문화가 없는 '전통문화의 거리' 인사동.

그러나 전통과 문화가 안내표지판만으로 존재하는 인사동 거리가 다시 '전통과 문화'의 거리로 태어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지인과의 아름다운 만남의 시간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여전히 인사동은 안타까운 모습으로 어둠 속으로 침잠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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