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세번째 손가락 마디가 저려온다. 글 쓴지 5분도 채 안 지났는데 말이다.

컴퓨터 기술이 발달하면서 몇 년째 이메일을 통해 카드나 신년 연하장을 보내고 받다가 이번에는 뭔가 좀 색다르게 아니 복고적인 방법으로 하고 싶었다. 직접 내 손으로 또박또박 써서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쓰려니 막막했다. 아는 사람 모두에게 보낼 순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열 명을 선정했다. (아 이 열명안에 들지 않았다고 해서 나를 욕하는 지인들 소리가 벌써부터 들린다)

집 근처 문구점에 들러 열 장의 연하장을 사서 집에 와서 쓰기 시작했다. 근데 두번째 카드를 쓰기 시작하는 중 세번째 손가락 마디가 아파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놈의 세번째 손가락마디, 필기구 쥐고 긴 글 써 본지 꽤 됐을 것이다. 요즘은 글을 쓰려고 해도 종이에 쓰지 않고 커서가 깜빡깜빡 기다리는 모니터 앞에 앉아 쓰니 말이다. (지금 이 글도 물론 컴퓨터로 작성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때 우리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영어단어 외우라고 하시면서 매일매일 8절지 종이 앞뒤로 빽빽하게 영어단어를 직접 볼펜으로 써서 제출하라고 하셨다.

친구들 몇몇은 잔꾀를 쓴다고 볼펜 여러 개를 고무줄로 묶고 한번에 두 세줄씩 써내기도 했지만 나는 그 당시 항상 세번째 손가락 마디가 아파 쉬었다 썼다를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열 장의 연하장을 이틀에 걸쳐서야 겨우 완성했다. 우체국에서 우표에 침을 듬뿍 발라 봉투에 붙여 보냈다. (풀이 옆에 있었지만 우표는 침으로 붙여야 제 맛이다.)

며칠 뒤 연하장을 받은 사람들이 정말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선배, 감동했어요"부터 시작해 몇 년만에 처음 사람의 손으로 쓴 편지를 받아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말과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연하장을 받는 데 대부분 아예 뜯어보지도 않고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개봉해 봐야 늘 그렇고 그런 인사에 컴퓨터로 서명이 된 카드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김 훈은 그의 저서에서 연필과 지우개가 없으면 글을 쓰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한겨레>에 근무할 때는 현장에서 기사를 컴퓨터로 송고한 것이 아니라 종이에 써서 팩스로 보내면 그 팩스를 본사 기자가 대신 타이핑 해 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직접 연필로 글을 쓸 때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자기가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고도 했다.

연하장을 쓰면서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20년쯤 지나면 사람들 손가락 근육이 거의 퇴화되어서 아예 직접 글 쓰기가 불가능 해지는 건 아닐까?

더 나아가 눈알이 휙휙 돌아가는 엄청난 속도의 기술 진보 시대에 살면서 진정 그 기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아예 잊고 살지나 않을까? 갑자기 내가 보낸 연하장 문구 중 일부분이 생각이 난다.

"..... 직접 글을 쓰다보니 손가락 근육이 아프더군요. 하도 오랫동안 쓰지 않다보니 근육마저 퇴화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늘 바쁜 생활 속에 묻혀 살다가 나중에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영혼의 근육마저 퇴화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