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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띄우기 위해 벗었다고? 장난하나?"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가 쓴 희곡 <크루서블>(시련)의 할리우드 버전은, 상큼한 사춘기 소녀들이 숲 속에서 벌이는 마녀놀이로 시작된다.

소녀들은 저마다의 짝사랑을 가슴에 품고 소원을 빌다가 흥에 겨워 옷까지 훌훌 벗어 던진다. 그 싱싱한 알몸들을 아무도 못 봤다면 소녀들의 퇴폐적 행위들은 그저 사적 공간의 프라이버시로 남았을 것이다.

헌데 이들의 '벗기' 액션을 지나가던 남자, 그것도 하필이면 목사가 목격하면서, 이들의 사적인 '치기'는 공적인 행위가 만다. 그리고 그 유명한 세일럼의 마녀 재판이 열리게 된다.

'사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문제의 그 장면. 이 '사고'를 빌미로 몇몇 매체들은 홍대와 인디밴드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
문제의 그 장면. 이 '사고'를 빌미로 몇몇 매체들은 홍대와 인디밴드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 ⓒ MBC 화면 캡처
MBC의 음악 프로그램 <생방송 음악캠프>의 7월 30일자 방송사고(이하 '사고', 우리는 여기서 벌어진 밴드 '카우치'의 노출 해프닝을 이 정도로 불러야 한다고 본다. 이는 명백히 단순 사고이며 해프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는 어쩌면 이 영화의 스토리를 다른 버전으로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때문에 이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은 삼복 더위에도 뒷골이 서늘해지고 일순 두렵기도 하다. 지금 무서운 거짓말과 엉뚱한 화풀이가 거대한 폭력이 되어 우리를 짓누르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번 '사고'는 법으로 꼼꼼히 따진다 해도 고작 '경범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공연음란죄와 업무방해죄를 적용하여 구속하긴 했지만, 성욕의 자극 또는 충족이라는 '경향'이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알몸노출이나 알몸질주(스트리킹, streaking) 등은 공연음란죄의 대상이 아니라 경범죄 처벌법의 대상이다.

공연음란죄는 사람의 성욕을 자극·흥분 시키는 것으로 보통인의 성적 수치심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 예컨대 동성·이성간의 성행위 또는 자위행위로 제한된다는 판례가 있는 만큼(알몸시위에 관련한 대법원 판례, 2001년 <법률신문>에 기고한 조국 교수의 글 인용) 유죄 인정까지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업무방해죄 역시 사전 모의가 확인되었다고 해도 그 의도가 명확하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에 논란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이 '사고'는 사회적 파장에 비해서 범죄성이나 공공의 손해는 그리 크지 않은, 그저 핫이슈였고, 토픽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마치 영화 <크루서블>의 한밤중 소녀들의 나체쇼 같은. 여기에 대한 어른다운 처사라면, 매섭게 꾸지람 한마디 해서 혼쭐을 내어 그런 짓을 앞으로 못하게끔 다짐해 두거나, 못내 분한 마음이면 뺨 한두 대쯤 갈기고 말 일이다.

언론의 마녀사냥과 토끼몰이, 논술교과서 오류 사례될 만한 비논리

그런데 <크루서블>에서는 이권과 계산에 지극히 민감한 목사님과 몇몇 어르신들은 소녀들을 마녀로 만들어 간다. 그 가운데 마을 전체에 이상한 공포가 감돌게 되고 사방에서 마녀와 귀신 들린 자들이 속출하게 된다. 서로를 마녀라고 몰아붙이고, 더욱 강력한 통제와 억압, 그리고 신령한 마녀 재판관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사고'가 벌어진 이후 대략 열흘간 마구 쏟아져 나온 '사고' 관련 우리 언론들의 기사들 중 일부는 그 선정성과 논리적 비약이 마녀사냥에 버금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방송사와 불편한 관계에 있던 유력 일간지들의 기사 제목 몇 개를 보면 '지상파 TV 끄고 싶다(동아일보)', '솜방망이 징계가 초대형 사고 불러(조선일보)', '온 가족 모여 TV 보기 겁난다(중앙일보)' 등으로 단순 방송 사고를 곧 방송사 전체의 문제로 비약 시켜 높고 비판을 하는, 논술 교과서 오류 부문에 사례가 될 만한 비논리적인 기사들이었다.

심지어 동아일보는 1일자 사설 <국민 모욕한 MBC 성기노출 방송>을 통해 '방송사의 게이트키핑 기능 약화와 시청률 지상주의가 초래한 인재'라는 결론을 내렸다. 게이트 키핑에 대한 학술적 오해는 차치하고라도 시청률 지상주의가 초래한 인재라는 결론은 문제가 된 코너의 성격조차 모르고 마구써 갈긴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 상식 이하의 사설이었다.

실제 사실과 다른 보도도 마구 쏟아졌는데 조선일보의 '방송사엔 아무 제재도 못해', 국민일보의 '알몸노출 사고… 출연자 성향 파악 안 해'라는 기사들이 그것이다. 또 기사 제목에서부터 선정적인 표현이 난무했는데, 거의 모든 신문이 '성기 노출'이라는 단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했으며 사설에도 '시청자 앞에서 바지 내린 MBC'(조선일보) 같은 지극히 논리적 비약과 선정성이 듬뿍 담긴 제목을 뽑기도 했다.

국민일보의 '홍익대 앞 클럽 공연 어떻길래…'로부터 촉발되기 시작하여 헤럴드경제의 '[긴급현장르포 上 홍대앞 '욕망의 해방구']아슬아슬 부비부비…쾌락만 흐느적' 등에서 극에 달한 지극히 주관적인 르포 기사들은 온갖 확인되지 않은 루머들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보도하여 선정보도와 추측보도의 전형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방송된 MBC 생방송 <음악캠프>에서 알몸을 노출시킨 사건과 관련해서 펑크밴드 '카우치'멤버 2명(얼굴을 가린 이들)과 인디밴드 '럭스'의 리더 원모씨(오른쪽)가 3일 오후 영등포경찰서에 재소환됐다.
지난달 30일 방송된 MBC 생방송 <음악캠프>에서 알몸을 노출시킨 사건과 관련해서 펑크밴드 '카우치'멤버 2명(얼굴을 가린 이들)과 인디밴드 '럭스'의 리더 원모씨(오른쪽)가 3일 오후 영등포경찰서에 재소환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알몸노출 사건 보도한 언론, 당신들이 더 음란하다

위 기사들은 사건의 객관적인 전달이나 대안에는 관심이 없고, 방송 코너 하나에서 벌어진 '사고'를 방송 프로그램 전체의 문제로, 나아가 모든 프로그램과 심지어 방송사 전체의 문제로 확대 시키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다.

선정적인 제목 뽑기와 사진, 동영상의 반복 편집 등은 가히 '사고' 자체보다 더 선정적이어서 '생방송 전라노출, 이를 보도한 '뉴스'가 더 선정적'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런 토끼몰이 와중에 이명박 서울시장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서 구청별로 단속을 강화하라고 지시했고, 경찰도 클럽들을 집중 단속하겠다고 나섰다. 또 열린우리당 신학용 의원은 방송 출연자의 음란, 폭력행위 등을 방송위원회가 고발 등의 제재 조치를 직접 할 수 있는 내용의 방송법 개정안을 낼 거라고 한다.

9일자 문화일보의 '가슴노출 6억 벌금… 성기노출은?'이라는 기사는 아예 카우치의 행동이 '공연음란죄에 해당한다는 것은 자명'하다고 판결 내리며 이들을 '건전한 성풍속을 침해하여 약간의(?) 물의를 일으키는 성도착증 환자 바바리맨 정도를 처벌하기 위한 규정'으로 벌하는 것은 지극히 형평성이 맞지 않기에 '이제라도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선동하고 있다. 이렇게 정해진 수순에 따라 진행되는 마녀 사냥의 결과는 무엇일까?

홍대가 음란한지 아닌지, 니들이 나가서 두 눈으로 확인하라

나들이 삼아 홍대 앞에 한 번 나가 보라.

홍대 일대의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인디밴드는 400여 팀에 달한다. 이들은 돈도 없고 빽도 없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또 뛰어난 녹음 기술이나 마케팅 등으로 음악을 포장할 수 없기에 연주 실력은 기본이다. 90년대 후반 '홍대'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 인디밴드들은 근래 들어 상업화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여전히 홍대를 아지트 삼아 성장하고 있다.

아는 사람은 안다. 지난 20년간 일부 대형 매니지먼트 회사와 음반 기획사, 방송사가 눈앞의 이익만 따지면서 우리 대중음악계와 음반산업을 지독한 기형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홍대의 인디밴드는 우리의 비천한 대중음악 현실에서 보석 같이 빛나는 존재들이다.

이제는 그만둬야만 한다. 이 의미 없는 마녀 사냥은 영화처럼 끔직한 결말로 치달을 뿐이다. 객기를 부린 친구들은 법적인 책임을 질 것이고, 그들과 무관했음에도 싸잡아 매도당했던 예술가들은 가슴에 상처는 남겠지만 여전히 가난한 예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방송은 적절한 자율적 장치를 마련하고 다수에게 긍정적이라 평가 받은 소수 문화를 아우르려는 노력을 계속 해 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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