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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먹는 것보다 음식을 직접 만드는 것이 더 재미있다. 내가 요리 솜씨가 대단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요리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친구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잘 먹으면 기분이 엄청 좋다. 친구들이 맛없다고 해도 노력하는데 보람이 있으니까 전혀 실망하지 않는다.

ⓒ 현빈
난 아직 요리학원을 다녀 본 적 없고 요리 선생님 또한 없었다. 사람들이 어머니에게 요리를 배우고 어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은 이것은 모독(?)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어머니는 요리 솜씨가 좋은 편이 아니시다. 내가 어렸을 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우리 어머니는 탁월한 요리사가 아니다(우리 아버지는 다른 집안 일을 많이 하시지만 아예 요리를 안 하셔서 솜씨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다른 면에는 아주 좋은 어머니이지만 요리만은 잘 못하신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를 본받아서 요리를 배우는 것 아니고 오히려 우리 어머니의 요리 솜씨에 의존할 수 없어서 요리를 배웠던 것 같다. 게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우리 고향하고 좀 먼 데에서 대학교를 다녀(자동차를 타면 한 12시간 걸린다) 어쩔 수 없이 요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떨어져 살아서 요리를 계속 하고 있다.

나는 요리를 제대로 배웠던 것이 아니고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웠다. 게을러서 장 보기 싫어하는 나는 요리 책을 보고 부엌에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것만 만드는 경향이 있고 재료가 없으면 실험적으로 다른 걸 대신해서 쓸 때도 많다. 물론 성공적인 실험도 있고 완전히 실패한 실험도 있다.

ⓒ 현빈
2년 동안 한국에서 살면서 하숙을 했기 때문에 요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하숙집에서 아침과 저녁밥을 실컷 먹을 수 있으니 자기 밥그릇만 챙기면 된다. 요리하고 싶어도 부엌에 가서 눈치를 잘 봐야 했다. 아마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왜 내가 요리를 하는지 궁금하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주머니께서 자신의 요리를 내가 만족하지 않는지, 또는 먹어도 아직도 배고파서 요리를 한다고 생각하실까봐 였다.

그래서 하숙하면서 먹기만 했다. 다행히 우리 아주머니의 요리 솜씨는 대단하시다. 특히 우리 아주머니의 직접 담그신 고추장을 공장 하나 만들어서 판다면 아마 금방 백만 통이 팔려서 아주머니는 큰 부자가 되실 것 같다.

좀 아쉽지만 한국에서 살면서 아주 잘 먹었는데도 한국 요리를 못 배웠고 기본적인 요리 용어를 한국어로 몰랐다. 그래서 한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뉴욕에 돌아갔을 때 우리 하숙집 아주머니의 손맛을 그리워할까봐 한국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뉴욕에는 괜찮은 한국 식당이 꽤 있지만 한국보다 비싸고 우리 동네에는 많지 않아서 집에서 한국 음식을 만들 수 있으면 편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행히 우리 동네 근처에 한국 식품 가게가 있어서 거의 모든 재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선생님이 없으니까 그냥 요리법을 찾아서 따라 했다. 한국 요리책 영문판이 있기는 있지만 제대로 된 것을 원해서(아니면 내가 마조키스트라서 그런지…) 영문판을 피했다. 처음에는 인터넷 포탈 사이트에서 요리법을 찾았다. 한참 동안 '취미'란 카테고리에 찾았는데 요리법을 못 찾았다. 결국‘여성’이란 카테고리에서 찾고 말았다.

기가 막혔다. Y염색체가 있으면 요리를 못 한다는 말인가? 포탈 사이트 관리자도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믿는건가? 그리고 그 포탈 사이트에서 '남성'이란 카테고리를 만들고 거기서 '취직'과 '운전' 등등 관련된 웹사이트가 있다면 그건 말이 되나? 하여튼….

ⓒ 현빈
포탈 사이트에서 찾았던 요리법에 만족하지 못했다. 몇 단계가 빠진 것 같았다. 잘 하는 사람이 초보에게 뭐든지 설명하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잘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것이 당연한 일인 것 같아서 설명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초보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초보에게 어려운 기술을 한 문장으로 너무나 간단하게 요약해서 답답할 때도 많다.

결국 포탈 사이트를 포기하고 서점에 한국 요리 책을 몇 권 구했다. 내가 사진이 많고 제목에 '초보'나 '기본'이란 단어가 나오는 책을 선택했다. 사진이 많고 설명이 꼼꼼해서 모르는 단어를 사전에 많이 찾아야 했지만 따라 갈 수가 있었다. 하지만 요리책에 대해서 불편하고 아주 짜증나는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적당량'이란 단어이다. 이 말을 보기만 하면 울고 싶다. '적당량'은 도대체 뭐냐? 내가 '적당량'을 뭔지 알았다면 요리책은 아마 필요 없었을 것이다.

'살짝'도 싫어하는 단어이다. 너무 '살짝'하면 안 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너무 세게 하면 안 되니까 요리책에서 '살짝'을 보면 혈압이 높아지는 것 같다.

또 내가 모르는 단어를 잘못 번역해서 실수한 적이 많다. 특히 내가 비슷한 말을 보고 많이 헷갈려서 그렇다. 내가 아직도 '방금'과 '금방'을 많이 헷갈리고 '계단'과 '계란'도 비슷해서 내가 한번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계란으로 5층에 올라갔다'고 했다(사람들이 웃었고 내가 곡예사인지 물었다). '깜찍하다'와 '끔찍하다'를 헷갈려서 친구의 아기를 보고 '끔찍해!'라고 할 뻔 했다.

ⓒ 현빈
집에서 자장면을 만들려고 굴소스 대신 꿀을 넣었다. 한국말이 덜 익숙한 귀에 '굴'과 '꿀'은 비슷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물론 '꿀'로 만들었던 자장면은 맛이 없었다.

요리법을 꼼꼼하게 따라가다 오히려 실패한 적도 있다. 내가 만들었던 닭도리탕과 순두부가 왠지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맛이 없었다. 대부분 간단한 것이 잘 됐고 지금 내 레퍼토리에 간직하고 있다. 훌륭한 것이 아니지만 내가 만든 된장찌개, 김치찌개, 김밥, 김치전 그리고 여러 반찬들이 친척과 친구들에게 반응이 좋다.

음식도 사람처럼 아주 예쁘고 완전한 것보다 특성과 정성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완벽함을 너무 열심히 찾다보면 맛과 재미를 잃어버리기 쉽다. 배 고프면 그냥 핫도그에다가 볶은 김치와 치즈를 놓으면 참 맛있다. 퓨전 음식이라기 보다는 타락한 음식이랄 수도 있겠지만 내 입맛에 잘 맞다. 엄마의 손맛도 아니고 아주머니의 손맛도 아니지만 내가 만든 한국 요리를 먹으면 한국에 대한 정을 느낀다.

덧붙이는 글 | 마침내 한국에 돌아왔다. 서울에서 일자리를 잡아서 장기간 한국에 있을 것 같다. 앞으로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말을 더 공부하고 더 유창하고 생생한 기사를 올리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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