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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경남 남해군 창선면 오용리. 1916년생. 1943년 4월 17일 미쓰이 광산으로 강제 연행. 같은 달 8월 26일 사망. 사인 낙반.

엄복식.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락리. 1923년생. 1941년 5월 10일 미쓰비시 광업으로 강제 연행. 같은 달 6월 1일 재해 사망.


일제 강점기 일본 후쿠오카현에 끌려가 희생된 조선인들의 명단 중 일부가 정리됐다. 재일본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단(이하 조사단)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의 기록을 검토, 이 중 765명의 희생자 신원 명부를 정리했다고 밝혔다.

명부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후쿠오카에 강제 연행된 조선인 징용자는 모두 11만3061명. 이들은 미쓰비시 광업, 미쓰이 광산, 메이지 광업, 가이지마 광업, 스미토모 광업, 아소 광업 등 후쿠오카에 있는 41개 광업소에 배치돼 탄광, 토목 작업 등 노역에 시달렸다. 이번에 정리된 명단은 이 중 765명의 사망자의 것이다.

압사, 낙반, 가스 중독... 위험업무에 조선인 집중 배치

▲ 진상조사단이 정리한 765명의 희생자 명부. 대다수의 조선인들이 후쿠오카에 강제 연행된 지 1~2년 내에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만에 사고사한 조선인의 이름도 보인다.
ⓒ 재일본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단
희생자 명부에 기록된 내용은 충격적이다. 연행된 지 불과 20여일 만에 재해로 사망한 엄복식씨나 넉 달 만에 낙반으로 사망한 김연수씨의 경우처럼 대부분의 사망자들이 끌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 사인도 병사, 압사, 광차 사고, 낙반, 가스 중독, 폭사 등으로 광산의 위험한 노역에 조선인을 집중 배치했던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혹한 노동 조건 아래 도주를 감행하다 사망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희생자 출신지는 전국에 고루 분포해 일본의 무차별 강제 연행이 극심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17~20세의 나이에 사망한 희생자도 있었다. 자료에는 창씨 개명한 이름이 많았지만 한국 이름으로 남아 있는 희생자들도 눈에 띄었다.

식민 통치 시기 일본에 의한 강제 연행은 193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행정적으로는 모집(1939년 9월~ 1942년 1월)→관알선(1942년 2월~ 1944년 8월)→징용(1944년 9월→ 1945년 8월)이라는 3단계로 이뤄졌다. 당시 적어도 70만 명의 한국인이 강제 연행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납치, 사기 등 연행 행태도 다양했다.

조사단 홍상진 사무국장은 "후쿠오카 정식 문서에 의하면 17만1000여명의 조선인이 강제 연행됐는데 당시 후쿠오카현의 총 인구가 300만 명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라면서 "일본 전국에서 가장 많은 조선인 희생자가 나온 곳이 바로 이곳 후쿠오카"라고 말했다.

당시 일본은 강제 연행된 한인들에 대해 임금은 물론 하루 세끼 식사도 제대로 배급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국제노동기구(ILO)의 '강제노동에 관한 조약'(1930년 채택, 일본은 1932년 11월 비준)을 위반하는 행동이다. ILO 조약권고전문가위원회는 지난 1998년 "비참한 조건 하에서의 노동자 대량 강제 연행은 '강제노동' 조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일본 정부가 직접 자료 공개 나서야

한편 이번 자료 공개를 계기로 일본 정부가 직접 나서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9월부터 108개 기업에 대해 실태 조사를 했고 지난 5월 초 유골이 판명된 기업의 신고 내용을 한국 정부에게 전달했다. 또 6월 초부터는 일본 전국의 사원(寺院) 자치체도 조사대상으로 하고 했다. 그러나 이같은 일본 정부의 활동이 아직은 미진하다는 지적이다.

70년대부터 일본 각지서 강제징용자 명단 수집
재일본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단

진상조사단은 지난 1972년 일본 오키나와현에서 일본인 학자, 문화인, 법률가들과 조총련이 함께 결성한 단체로 식민지 시절 일본의 강제 연행에 대한 문헌, 현지조사, 증언 수집 등을 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25도도부현에 일본인과 교포가 함께 참여하고 있으며 일본측 400명, 교포들은 300여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북한과 일본의 우호와 화해를 위해 일본에서 조선인 강제 연행에 관한 자료와 명부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과 북한 유족의 증언을 일본 정부에 알리고 있다.

조사단은 1970년대부터 일본 각지의 기업을 꾸준히 찾아다니며 현재까지 약 42만 명의 희생자 명부를 수집해 왔다. 물론 협력적으로 자료를 공개하는 기업은 적었다. 그럴 때면 꾸준히 설득을 계속했으며 또 자료의 훼손이 심해 복사를 하지 못할 경우에는 일일이 손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오는 8월이면 현재 조사단이 갖고 있는 자료의 정리는 모두 끝나지만 전국에 흩어져 있는 명부 수집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할 예정이다.
홍 국장은 "일본 정부가 1946년에 6만6천명 명부를 분석한 결과 406개의 회사가 관여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면서 "현재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강제 연행자수가 66만 명이다. 이것 또한 충분한 통계라고 말할 수 없으나 따져 보면 4000개 회사가 관여했음을 추측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일본 정부가 조사한 108개라는 회사 숫자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적은 숫자"라고 말했다.

홍 국장은 이어 "지금 조사단이 하는 작업도 사실은 일본 정부에서 해야 한다"면서 "강제 연행의 책임을 모두 민간기업에게 돌리려고 하지 말고 이제라도 강제 연행 희생자의 통계, 명부 등 일본 정부가 갖고 있는 비공개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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