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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어린 참깨모종을 돌보시는 친정아버지
ⓒ 김미옥
“뒤꼍에 심은 봄배추가 실하게 커서 김치 담갔다. 사위 쉬는 날 갖다 먹어라.”
“먼저 가져온 김치도 남았는걸요. 다음에 갈게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렴.”

지난 주 목요일 아침 친정어머니가 전화를 하셨습니다. 나는 먼저 고추 심는 날 내려가 가져온 김장김치가 아직 남아있고, 또 좁은 냉장고에 김치를 더 넣을 자리도 마땅치 않아서 다음에 가겠노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짐짓 서운한 눈치셨지만, 담담하게 대답을 하시고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영 개운하지가 않았습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들이 다 그러시듯, 친정어머니는 떨어져 사는 자식들이 늘 궁금하고 손자들이 보고 싶지만, 행여나 자식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조심스러워 하십니다. 그런 어머니가 전화를 걸기까지 고민을 많이 하셨을 터입니다. 큰 맘 먹고 김치 가져가라고 전화하셨을 텐데, 나는 그런 어머니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사양한 것입니다.

전화를 끊고도 편치 않던 마음은 이틀이 지나고도 그대로였습니다. 이대로 찜찜하게 지내느니 차라리 휑하니 다녀오자는 마음을 먹은 건 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일요일에도 일하는 남편이 나중에 같이 가자고 했지만, 서둘러 다녀올 작정으로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간단하게 차비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친정집 마을에 못 미쳐서 있는 이웃 동네를 지나가다 보니 길 한쪽에서 떡볶이, 어묵, 핫도그, 순대 등을 파는 트럭이 보였습니다. 도시에서 흔히 보던 분식집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습니다. 시골 치고는 면사무소가 있는 제법 큰 동네라 가끔 장도 선다고 하더니, 이젠 분식차도 등장한 것입니다.

‘시골 동넨데 과연 손님이 있을까?’

궁금해진 나는 차를 세워놓고 잠깐 구경을 하기로 했습니다. 잠시 뒤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띄엄띄엄이긴 했지만 꾸준히 손님들이 음식을 사러 왔습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꽤 많은 손님이 다녀갔습니다.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도, 이젠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도 기다렸다는 듯 분식차에 다녀가는 모습이 즐거워보였습니다.

“엄마, 우리도 떡볶이랑 순대 사 먹어요.”

작년까지만 해도 하루 건너 순대를 사 먹다시피 하던 딸아이는 신기한 듯 분식차를 바라보는 나를 졸랐습니다. 딸아이 등살에 못 이겨 분식차에 가까이 가보니 떡볶이는 벌써 다 팔린 뒤였습니다. 아쉬운 대로 순대 2인분을 사서 고향집으로 갔습니다.

▲ 싹이 이쁘게 났다며 흐뭇해하시는 친정어머니
ⓒ 김미옥
부모님이 들에 일을 나가셨는지, 친정집은 조용했습니다. 외양간에 있는 소 두 마리만이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우리들을 반겨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집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소들에게 먹이를 준다며 지푸라기를 들고 외양간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하지만 덩치 큰 소가 무서운지 손에 든 지푸라기를 내밀지 못하고 나를 부릅니다. 날름날름 받아먹는 것이 배가 고픈가 봅니다. 하기야 점심때가 지났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얼마 뒤 멀리서 귀에 익은 경운기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지우랑 찬우 왔구나.”
“날도 더운데 쉬엄쉬엄 하시지요.”
“다음에 온다더니….”
“맛있는 김치 가져가려고 왔지요.”

생각대로 친정어머니는 무척 반가워하셨습니다. 아버지도 말씀은 안 하셨지만 싱긋 웃으시는 게 기분이 좋으신가 봅니다. 땀 흐르는 얼굴과 손을 씻으신 후 어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미처 점심상을 봐 놓지 못한 나는 얼른 순대 봉지를 내밀었습니다.

“금방 상 차릴게요. 시장하실 텐데 순대 먼저 드시고 계세요.”

어머니는 들일 나갔다오면 바로 드실 수 있도록 아침에 점심밥까지 미리 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상 차리는 건 아주 간단했습니다. 부랴부랴 상을 봐서 마루로 내가니, 순대 한 접시가 벌써 바닥을 보였습니다.

“아버지가 원래 고기보다 순대를 더 달게 잡수신다.”
“그러셨어요? 몰랐네.”

남은 순대를 얼른 그릇에 담아 아버지 앞에 놔 드렸습니다. 정말 아버지는 반주 한 잔까지 곁들여 참으로 맛있게 드셨습니다.

“옆 동네에 가끔 차가 오는 것 같던데요. 자주 사 드세요.”
“어디 일하다 순대 사러 가게 되니?”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사실은 순대 값이 아까워 그러시는 게 틀림없습니다. 돈의 가치가 떨어져 아이들이 100원짜리도 우습게 보는 세상이라지만, 친정 부모님은 10원짜리 동전 하나도 소홀히 보시는 법이 없습니다. 오랫동안 땀 흘려 힘들게 농사지으면서 몸에 밴 절약하는 생활습관 때문이겠지요. 그러니 1인분에 천오백원하는 순대를 쉽게 사 드시지 못하는 겁니다.

“좀 더 사올까 봐요.”
“아니다. 나도 아버지도 시장하던 차에 잘 먹었는걸.”
“그래 됐다. 잘 먹었다.”

도통 말씀이 없으시던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손자들이 재롱을 피워도 여간해서는 말씀이 없을 정도로 무뚝뚝하신 분입니다. 그런 아버지가 겨우 순대 한 접시에 ‘고맙다’는 말씀을 다 하시네요.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딸아이 덕분에 본의 아니게 효도를 한 셈이 됐습니다.

상을 물리고 쉬시는가 싶더니 두 분은 어느새 밭으로 가셨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따라 나서보니 부모님은 참깨 밭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작년에는 참깨농사를 망쳤는데, 올해는 싹이 예쁘게 났다며 좋아하셨습니다. 여러 개 싹 중에서 튼튼한 것 한두 개만 남기고 뽑아낸 뒤 빈 자리를 흙으로 채워주는 작업이었는데 보기보다 일이 더뎠습니다.

그렇게 두어 시간 일을 했을까요? 부모님이 갑자기 집에 들어갈 채비를 하셨습니다. 일도 아직 덜 끝나고 해도 떨어지려면 멀었는데 말입니다.

"이거 오늘 다 안 해요?"
“응. 아버지가 저녁을 사 주신단다.”
“삼겹살 사 왔어요. 그거 구워 드릴게요.”
“아니다. 친목계 때 가 보셨다는데 아주 맛있게 한다는구나.”

부모님이 뜬금없이 저녁을 사주신다며 소매를 잡아끄시는 바람에 난데없는 외식을 했습니다. 차로 20여분 곳에 있는 음식점은 어머니 말씀대로 정말 맛있고 푸짐한 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이 좋아하는 순대를 사드린 것이 너무 고마우셨던 걸까요? 나는 미처 살펴드리지 못한 것이 오히려 죄송스러운데 하나를 드리고 열개를 돌려받은 꼴이 됐습니다.

자식에게는 대가없는 사랑을 한없이 주시다가도 어쩌다 자식이 드린 작은 사랑은 몇 배로 갚아주려고 하시는 친정 부모님! 친정 부모님은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내 인생을 지켜주시는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덧붙이는 글 | 내 인생의 <멘토>에 응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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