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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야시장 전경
ⓒ 박재현
▲ 야시장 먹거리
ⓒ 박재현
지난 3월 초순의 어느날, 시골 본가(경남 창녕)에 가 보니 야시장이 열려 구경하러 갔습니다. 시골에서 자라신 분이나 나이 많이 드신 분들은 이 야시장을 잘 아실 겁니다.

야시장하면 생각 나는 것이 백열전구 불빛 아래의 번데기나 옥수수 같은 맛있는 간식거리들입니다. 어릴 때는 솜사탕과 번데기가 그리도 맛있었는데 지금은 그때의 향수만 남아 있네요.

야시장에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각설이'로, TV 말고는 다른 볼거리가 없던 시절에는 아주 흥겹고도 정말 재미있던 구경거리입니다.

▲ 각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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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이II(용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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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각설이를 거지패로만 알지만 그것만은 아닙니다. '각설이'와 비슷한 것으로 서양에는 'Gypsy', 'Beggar'가 있습니다. 이중 거지(Beggar)는 '큰소리로 말한다'는 뜻이고 '집시(Gypsy)'는 '이상하다'는 뜻이랍니다. 이 집시도 유목형과 거주형 두 부류로 나뉘는데 우리 각설이와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설이'의 유래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신라가 나당연합군을 만들어 백제를 쳐서 무너뜨릴 때 당시 지식인들은 신분을 숨기고 걸인이나 광인처럼 숨어 살았는데, 여기서 각설이가 유래했다고 합니다.

▲ 각설이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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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경꾼
ⓒ 박재현
각설이는 창을 잘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동쪽(전라도·충청도 부근) 사람들은 소리에 능했고 남부 지방(경상도·충청남도 부근) 사람들은 춤을 잘 추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근대의 각설이는 일제시대에 전라남도 목포 부근의 무안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무안(武安)은 전쟁이 나도 안전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 이름에 맞게 일제의 압박 속에 무안에 숨어 지내던 사람들이 각설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각설이는 단지 한푼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끼를 때우기 위한 밥 한 그릇을 위해서 소리를 하는 게 아니었답니다. 그들은 소리를 통해 내세 사상과 윤회설을 퍼뜨렸는데 각설이들의 구수한 소리는 많은 사람들을 감화 시키기도 했습니다.

각설이의 타령을 한번 살펴 볼까요.

얼씨구씨구 들어간다(얼의 씨가 몸안에 들어간다라는 뜻).
저얼씨구씨구 들어간다(네 얼의 씨도 몸안에 들어간다라는 뜻).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전생에 깨달았던 영은 죽지 않고 이생에 다시 태어난다는 뜻).


▲ 각설이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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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모습
ⓒ 박재현
올해는 춘삼월 추위가 유난한데 시골 야시장에서 만난 각설이들은 마치 한여름처럼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나출세 브라더스'.

각설이들의 주 수입원은 한 봉지 2천원하는 호박엿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공연만으로도 그 값어치를 충분히 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단순한 동냥처럼 보이지만 저는 그것이 공연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한푼 돈보다는 무대의 가수나 배우처럼 관중들의 박수와 환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공연장 전경
ⓒ 박재현
▲ 각설이 '나출세 브라더스'의 나출세
ⓒ 박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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