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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 재경부에서 경제특구 내 영리법인 형태의 외국병원 설립을 허용키로 한 것에 대해 범의료계와 시민단체가 반대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지난 19일 영국의 주간 <옵저버>가 20년 전 세계 최고였던 미국인의 평균 수명이 최근 '후진국'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미국 여성의 평균 수명은 세계 19위, 남성의 수명은 브루나이와 동급인 28위에 불과한데, 전문가들은 이 원인으로 빈부 계층간 의료 서비스 격차와 사회에 만연한 비만을 지적했다.

빈부간 격차는, 위싱턴시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남성은 몇 블록 떨어진 부유층 지역에 사는 여성보다 평균 수명이 40년이나 짧다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이 연구는 미네소타 대학의 로런스 자콥스 교수와 로드아일랜드주 브라운 대학의 제임스 머론 교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번 연구는 미국 의료제도의 놀라운 불평등을 보여주는 결과의 하나다.

이 시점에서 왜 미국의 의료가 이렇게 불평등해졌는지, 그 결과 건강이 빈부에 따라 왜 이렇게 심각한 격차가 벌어졌는지를 비영리 위주인 캐나다와 영리 위주인 미국의 보건의료제도를 비교해 보는 것이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왜 우리나라에서 영리병원을 허용해서는 안 되는지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리병원 허용은 곧 전국민 의료보험을 뿌리째 흔드는 민간보험 도입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중앙일보>도 얼마 전 사설을 통해 영리병원 도입을 환영하며 아울러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할 것을 주장했다.

미국과 캐나다는 국경을 마주 하고 있으면서도 의료상황은 기막히게 서로 반대 상황인데, 미국이 OECD국가 중 유일하게 전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없는 반면에 캐나다는 전세계적으로도 완벽한 사회보건의료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두 나라 정부는 유사한 보건의료전달체계를 갖고 있지만 두 나라간 중요한 차이는 건강보험에 있다. 캐나다에서는 모든 시민들은 '캐나다건강법(Canada Health Act)'에 의해 보험에 가입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건강보험에 개인적-대부분 고용주가 부담한다-으로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미국 인구의 15%인 4500만명의 미국인이 어떠한 건강보험에도 가입되지 못하고 의료에서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2001년에 캐나다는 정부예산 중 16.2%를 보건의료비로 지출했고, 미국은 그 비율이 17.6% 였다. 이를 1인당 보건의료비로 환산해보면 미국은 캐나다보다 더 많은 보건의료비를 지출했음을 알 수가 있다. 2001년 캐나다는 1인당 1533달러를 쓴 반면 미국은 1인당 2168달러를 썼다.

미국 정부가 1인당 지출을 더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도 미국에서 보건의료비 지출이 더 많았다. 캐나다에서 평균 개인적으로 또는 사적보험회사(치과, 안과, 약제비에 대한)에 지출한 돈이 1년에 630달러인 데 반하여 미국에서는 그 금액이 2719달러였다. 2001년에 미국은 GDP의 13.6%를 보건의료비로 지출했고 캐나다는 단지 9.5%만을 지출했다.

미국에서 추가된 비용은 높은 임금을 받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들에게 들어가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의료수가가 주 정부와 의사단체간의 협상에 의해 정해진다. 미국에서는 수가가 자유로운(?) 시장에 의해 정해진다고 하지만 거대 보험사에 의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런 점이 미국에서의 고임금을 유발하고 있고 이는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미국에서의 또 다른 매우 비싼 비용은 처방약 값이다. 캐나다는 환자에게 부담을 적게 하도록 엄격하게 규정한 법을 갖고 있다. 성분명 처방도 곧 허용될 전망이다. 캐나다의 의약품시스템은 주정부가 시장에 대한 지배력을 갖고 약 가격을 인하하기 위해 원료를 구입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있다.

세 번째 중요한 다른 점은 미국에서는 거액 의료과실 소송이 유행이라는 것이다. 의사과실에 대해 환자에게 수백만달러를 지불하게 하는 재판이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이런 소송이 매우 적다. 캐나다 법에서는 미국에서라면 수백만달러의 보상을 줄 고통이나 손해에 대해 사실상 아무 보상도 해주지 않는다.

캐나다의 보건의료시스템은 매우 경제적인 반면 건강지수를 비교해보면 미국보다 더 좋은 상태다. 2002년 평균 수명은 미국이 캐나다보다 대략 2.5년이 적다. 캐나다의 평균수명이 79.8세인 데 반하여 미국은 77.3세였다. 영유아 사망률도 미국이 현저히 높다.

1997년 여러 암에 대한 사망률을 매년 10만명당 사망률 수치로 보면 캐나다가 약간 더 좋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 특기할 점은 같은 암 종류에 대해 미국 환자들이 캐나다보다 두 배의 비용을 더 쓰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미국인 중 가난한 하위 20%를 건강통계에서 뺀다면, 캐나다와 미국의 평균수명이나 영유아 사망률은 거의 비슷하다. 이러한 불일치는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의료혜택에 접근할 수 없어 건강상태가 매우 나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는 것은 그들의 나빠진 건강 상태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에 미국의 부자들은 캐나다 부자보다 더 건강해지고 있다. 소수의 좋은 건강상태는 사회경제적으로 보다 아래 계층의 수많은 사람들의 나빠진 건강상태를 결코 상쇄할 수는 없다.

가난한 미국인 중 1/4이 만성적인 건강 이상을 갖고 있는데 이는 캐나다와 비교해서 매우 높은 수치이다. 이 문제는 그들이 직업을 찾거나 그들의 경제적 상황을 향상시키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좋아진 건강은 사회적 유동성을 좋게 하여 미국에서보다 캐나다에서 사회적 신분 상승을 더 쉽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선거 때마다 보험이나 건강의료 관련 문제 등이 중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이제 의료시스템의 본격적인 전환 시기에 도래하고 있다. 처음 출발할 때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그 고통은 모두 우리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80% 이상을 민간에 의존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보건의료의 비영리 유지는 우리나라 보건의료 시스템의 출발부터 가장 중요한 주춧돌이 될 수 있다. 의료의 비영리는 국민의 최소한의 의식주 중 하나를 담보하는 길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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