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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정통부 일부 관료와 산하기관 및 유관기관의 연구원, 교수들이 국책과제 수주와 관련한 각종 비리에 연루되어 검찰에 고발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 중에서 몇몇 건은 이미 2년 전에 일어난 사건으로 관련 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에트리) 내에서 이미 공공연히 알려져 있는 사항이었다. 그런데도 원장이 바뀌고 나서야 본격 감사에 돌입하여 이제서야 표면화되었으니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

이 사건은 이미 노조에서 여러 차례 문제 삼았으나 오랫동안 에트리 내에서 쉬쉬 하며 덮었고, 정통부에도 수차례 투서가 들어갔으나 거기서도 고의적으로 직무유기를 해 왔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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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통신연구원, '검은 뒷거래'로 얼룩진 연구현장

지난 7월 27일자 <오마이뉴스> 이승훈 기자는 에트리 연구원들이 대부분 석박사들이고 특정 기술에 지식이 있는 국내외 인력이 한정적이라는 점 때문에 연구 용역상의 각종 비리와 위탁과제 선정시에 그들만의 검은 고리를 만드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현 상황을 왜곡시킬 수 있다. 물론 전문인 집단이 폐쇄적인 성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학문적 전문성에서 비롯된 폐쇄적 성향은 반드시 검은 고리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식의 단정은 커다란 논리적 오류다. 그런 식이라면 법무비리, 의료비리, 건설비리 등등도 모두 동일한 논리의 적용을 받아야 할 것이다.

어느 집단이건 부정부패에 빠질 수 있는 유혹과 함정에 노출되며, 이런 위험성은 적절한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방지할 수 있다. 현 우리나라의 상황은 사회 전반이 총체적 비리와 부정부패에 물들어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정통부 산하 및 유관기관의 비리 사건은 이런 사회의 위기 상황의 한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국책연구과제 비리는 단지 전문가 집단인 과학 기술자들의 특수한 환경을 이용해서 저질러 졌다고 매도할 수만은 없다. 이번에 밝혀진 대부분의 사건은 사회 전반에 걸쳐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구태적 범죄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조직 범죄가 내로라 하는 국책 기관을 중심으로 벌어졌으며 은폐되어 온 것일까? 이는 우리 나라의 많은 연구소가 매우 후진적 시스템으로 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매우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조직 체계로 되어 있어 실제로 일하는 연구 개발자는 의사 결정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소수의 관료와 로비스트인 사업 책임자들이 밀실에서 과제를 만들고 그 구체적인 절차나 내용을 숨겨왔다. 그러므로써 조직 범죄가 가능했던 것이다.

비록 그것이 부정부패나 비리로 이행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부조리한 시스템에서 연구 개발자들은 의욕을 잃고 좌절하게 된다. 결국 이번에 드러난 바와 같은 일들이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모든 국책 과제가 직접 연구 개발에 참여할 연구자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로부터 나와서 상향식으로 결정되는 자율적이고 투명한 절차가 보장되어야 한다. 관료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조직 체계의 연구 기관에서 세계 일류 수준의 성과물이 나오길 바란다는 것은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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