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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씨가 죽은지 만 하루가 지나고, 지금도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는 촛불집회가 한창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김선일씨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지금, 아직도 누군가는 파병 의지를 굽히지 않고 국익을 운운하고 있다.

국익이 무엇일까. 국가의 이익. 그렇다. 그것이 국익이다. 국가의 이익이라는 것은 결코 정부의 이익이 아니며, 재정권을 쥐고 있는 부호들의 이익도 아니다. 국익은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익을 대변한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어떤 기호를 갖고 있는지를 잘 살필 필요가 있고, 이것이 자신의 정권 유지에 중요한 나침반이 된다.

9·11 테러 이후의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략 전쟁과 대를 이은 이라크 전쟁은 미국에게는 국익이다. 미국은 석유라는 국익을 앞세워 국민들에게 명분을 얻고 침략 전쟁을 강행했고, 지금도 강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9·11 테러라는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치료약이 되기도 한다.

지금 현재의 이라크 전쟁에 우리가 파병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국익일까. 우리는 이 파병으로 인해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고 미국과의 실용적 외교 노선을 견지할 수 있다. 또한 국제 사회에 내건 약속도 지킬 수 있으므로 국제 사회에서 신용도 얻을 수 있다.

아주 중요한 국익이 아닐 수 없다. 사대적 외교의 상징인 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여 경제, 군사력의 부분에서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움으로써 국제 사회에서의 위상을 드높이는 것. 국가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국익이다.

그러나 지난 50여년의 한미동맹은 우리와 미국의 관계를 심하게 공고히 했다. 여기서 더 공고히 한다면 그것은 한 마디로 '오버' 아닌가. 혈맹으로 맺어진 사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한미동맹은 냉전 체제하에서 보기 드문 성공적 사례로 자리 매김하고 있고, 그 불평등 관계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지금껏 '최고의 우방국'인 미국에게 큰소리 한 번 낸 적 없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쩌면 나의 친구일 수도 있는,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아들일지도 모르는 한 젊은이를 이라크라는, 전혀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나라에서 떠나보냈다.

우리 정부에게는 그를 살릴 수 있는 24시간이 주어졌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24시간 내내 시종일관 정부와 외교부가 내뱉은 말은 '테러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 파병의 강행'이었다.

이것도 국익인가. 국제사회에서 자존심을 세우겠다는 것인가. 테러범 따위에게 질 수 없다는 오기인가. 한 젊은이를 죽게 만든 것은 어떤 국익인가.

우리에게 돌아올 석유가 있는가. 우리가 군사 최강국이 될 수 있는가. 설사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이런 것들을 위해서 한 젊은이가 원하지 않는 죽음을 맞아야 하는가. 당최 얼마나 대단한 국익을 필요로 하길래 그를 희생시켰는가.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의원, 반기문 장관을 비롯한 이번 사건 관계자들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어떤 이익을 얻게 되었는지 말해달라.

자식은 부모를 섬기고 따라야 하지만 가끔 말을 듣지 않을 때도 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부모들은 결국 자식들에게 두 손, 두 발을 들기도 한다. 우리 정부는 지금 한국을 미국의 자식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만약 그렇다면 한번쯤 반항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진정 피를 나눈 사이라면 사랑으로 감싸줄 그들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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