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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린치 전 일병과 린디 잉글랜드 일병은 공교롭게도 비교할 점이 많다. 그들의 차이점은 '영웅'과 '악녀'라는 상반된 이름을 부여받았다는 점이고 공통점은 전세계에 알려졌다는 점, 동갑내기라는 점, 출신이 비슷하다는 점(웨스트버지니아주), 고교 졸업 후 입대해 군인이 됐다는 점, 이라크전에 참전했다는 점 등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을 든다면 이들을 통해 미국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린치 일병은 지난 해 3월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에서 이라크군에 포로로 붙잡혔다 일주일만에 구출됐다. 이 사건은 가해자로만 비춰지던 미국에게 호기로 작용했고, 미국은 그녀를 '전쟁 영웅'으로 만들면서 호기를 놓치지 않았다.

잉글랜드 일병은 영국의 한 일간지가 포로 학대 사진을 공개하면서 '추악한 미군'의 대명사가 되었고 미 당국은 자신들에게로 쏠릴 손가락질을 힘없는 미군 병사에게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이런 미국의 행위로 인해 잉글랜드 일병의 포로 학대 사실이 용서될 순 없지만 미국이 '마녀사냥'식으로 그녀를 대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렇게 두 미군 병사는 이라크전을 통해 삶의 갈림길에서 완전히 다른 길로 가게 됐다. 그들의 개인적인 진로는 이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지만 그들에게 미국은 비겁하고 자기 합리적인 자세로 일관해 왔다.

린치 일병이 병상에서 일어나 "나는 영웅이 아니다. 떠도는 얘기들은 미 국방부가 의도적으로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했던 말은 이미 '영웅'이 돼버린 미국 시민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다. 잉글랜드 일병의 가족들 역시 "상부의 지침이었다"는 식의 발표를 했지만 이것 역시 미국에겐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될 공산이 크다. 이미 그녀는 전체 이라크 파병 미군의 정서와는 반대되는 '악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평소 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고 떠드는 미국이지만 이쯤 되면 그들이 말하는 인권이 무엇인지 헷갈릴 따름이다. 이라크전을 통해 보여준 미국의 인권에 대한 태도는 실망스러움을 떠나 그냥 '애초에 그런(인권에 대한 태도) 건 없었다'고 하는 게 낫겠다. 군인 하나쯤은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것이 또 미국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라크 전쟁은 아무런 명분이 없었고 철저히 이기주의적인 침략 전쟁에 불과했다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 되고 말았다. 끝내 발견하지 못한 대량살상무기의 존재가 그러했고, 이라크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미국의 오만함이 그러하다.

두 미군의 상반된 현재의 처지는 이러한 미국의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TV 영화로 만들어지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이른바 스타가 된 린치 일병이나 상병에서 일병으로 강등된 채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브래그에 구금돼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잉글랜드 일병 모두 미국의 야욕이 만들어 낸 슬픈 군상일 뿐이다.

우리의 자이툰 병사들이 최상위 부대가 될 미군 또는 미국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리라 누가 보장할 것인가. 자이툰의 병사 중에 제2, 제3의 린치와 잉글랜드들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 누가 장담한단 말인가. 만약에 이런 일이 우리 군에 있게 된다면 미국의 태도는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전쟁은 인간의 광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행위이다. 현대사의 굵직한 전쟁을 두 번이나 치르고, 일제의 잔학성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우리가 광기의 행렬에 동참하는 건 아이러니다. 어떠한 정치적 이유도 이것을 설명할 수 없다. 이미 전쟁의 광기는 알다시피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무고한 사람들에 피해를 입혔고, 입히고 있다.

여러 가지 파병의 비합리성에 대한 얘기에 또 하나의 사족이 될지 모르지만 파병은 철회돼야 한다. 그래서 포로 학대 사진 파문에서 우리가 봐야할 것은 단순히 전쟁을 통한 인간의 광기가 아니라 그 어떠한 것도 합리화시키는 미국산 광기의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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