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야당의 대통령 탄핵결의안 발의라는 일대 사건 때문에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져버렸지만 원래 이번 임시국회는 정치관계법을 의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선거법 개정안 중에 인터넷 실명제 조항이 신설되기로 되어 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인터넷 언론의 홈페이지는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실명확인을 거쳐야 하고 이를 어길 경우 1000만원의 과태료까지 물어야 한다. 인터넷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이 개정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실명제 도입을 주도한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의 주장은 이를 통해 인터넷의 악성 게시물을 없앰으로써 건전한 인터넷 문화를 정착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책의 정당성, 실현가능성, 그리고 효율성 측면에서 모두 합격점을 받기 어렵다.

먼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제4부인 언론에 이어 제5부로까지 불리며 주요한 커뮤니케이션의 장이자 생활공간이 된 인터넷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정책적 사안임에도 정작 네티즌들의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실명제 자체의 정당성도 인정받기 힘들다. 자유민주주의는 사상과 자본의 공개경쟁을 통해 성장하는 제도다. 사상의 자유경쟁이라고 할 때의 사상은 실명으로 표출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가 권력의 개입이나 다수의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익명의 자유까지 보장한다.

국회에서도 대통령 탄핵안 등 주요 의결안에 대해서는 무기명 비밀투표를 실시하도록 하는 이유를 국회의원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자유민주주의의 강점은 자유 경쟁을 통해 옥석이 가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많은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게시물에 대한 네티즌들의 선택행위 그 자체만으로도 악성 게시물은 사장되고 있다.

사실 이 개정안은 정책의 실현가능성 또한 희박하다. 이미 많은 인터넷 사이트는 실명제를 택하고 익명 게시판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자발적 규제의 노력이 있고 익명과 실명, 각각의 순기능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명제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미 예고된 것처럼 많은 인터넷 언론이나 시민단체들은 불복종 운동을 단행할 태세다. 또 주민등록번호 생성기 등을 통한 번호 도용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 뻔하다. 단속에도 불구하고 근절되지 않는 와레즈처럼 암암리에 익명으로 운영되는 사이트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것이며 이는 곧 기존 사이트들의 이용자 감소와 인터넷 문화전반의 위축과 음성화로 이어져 강제적인 실명제는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결국 법안이 의결된다 해도 정책의 효율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실명제를 강제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을 겪을 것이다. 또 광범위한 인터넷 사이트들이 실명확인을 위한 만만찮은 비용을 내야 하고 이는 결국 네티즌들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거기에 더해 위법 사이트를 적발하기 위한 감시와 처벌의 비용도 들 것이다. 문제는 예상되는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에도 불구하고 정작 인터넷 문화의 정화라는 본래의 목적은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자기 정화 기능에 맡겨보자. 어디 국회가 생중계된다고 우리 의원들의 막말과 헛짓거리가 줄어들던가? 최소한 우리 네티즌들의 양식과 지혜라면 인터넷 자유민주주의의 정화능력을 믿어도 좋다. 제발! 국회의원 그대들이 그렇게 입에 달고 다니는 그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해 달라!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