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칼럼'밸런타인데이 장미와 초콜릿. 방사선으로 찍으니 오! 아름다워라'
칼럼'밸런타인데이 장미와 초콜릿. 방사선으로 찍으니 오! 아름다워라' ⓒ 한겨레신문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나타나서 일부 청소년과 젊은 연인들 사이에서 소리 없이 퍼져나가던 밸런타인데이가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 정도로 확산된 것은 언론의 역할이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할 것이다. 도대체 언제인지도,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무심코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해마다 언제 언제가 밸런타인데이라고 일러주고 깨우쳐 주는 것은 늘 언론이다.

달력에 표기된 기념일도 아니고, 우리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그 뿌리를 찾을 수 없는 이 외래문화는 결국 제과산업과 언론이 야합하여 만들어 낸 천박한 소비문화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올해는 조류독감에 따른 육류파동이 겹치면서 언론은 '밸런치킨데이'라는 조잡한 새 낱말까지 만들어 냈는데 육류소비를 늘리기 위한 충정은 이해가 가지만 굳이 뿌리도 없는 외래문화인 밸런타인데이에 끼워 맞추는 태도도 이해하기 어렵고, 심각한 식품의 위기 상황을 일회성 행사로 몰고 가는 가벼움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진정 언론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그래도 대부분의 언론은 밸런타인데이 열풍을 소개하면서도 이를 미끼로 한 몫 하려는 제과업체의 상술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내기는 했다. 그런데 밸런타인데이를 바라보는 "한겨레는 달랐다". 한겨레는 정말 달랐다!

<한겨레신문>은 올해 밸런타인데이 열풍이 불기도 전에 일찌감치 밸런타인데이를 겨냥한 기획기사를 내보내더니 (한겨레신문, 2004년 2월 6일, 주말세상, '달콤한 내 사랑 녹여 틀 안에 함께 부어요'), 밸런타인데이를 목전에 둔 2월 11일에는 밸런타인데이 장미와 초콜릿을 방사선으로 찍은 사진과 함께 밸런타인데이의 기원과 초콜릿의 효능을 극찬하는 칼럼을 내보냈다(한겨레신문 2004년 2월 11일, 영상으로 잡은 이야기, '밸런타인데이 장미와 초콜릿. 방사선으로 찍으니 오! 아름다워라').

이 칼럼을 쓴 이는 초콜릿이란 음식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 인식을 최근의 연구결과를 들이대며 "초콜릿은 종합영양식품으로 재조명"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방사선을 실제 임상에서 환자의 진단이나 치료목적이 아닌 꽃이나 아름다운 사물을 방사선으로 촬영해보는, 방사선학자들의 취미생활쯤 되는 '플로랄 방사선' 기법을 소개하면서 "이런 방사선 모습은 또 다른 신비로움을 느끼게 해 준다"고 설명했다.

밸런타인데이 장미와 초콜릿은 '사랑'이란 의미에다가 "종합영양식품"에다 "신비로움"까지 곁들이게 되었으니 금상첨화라고 해야할까? 내년부터는 온갖 모양의 초콜릿에다 "신비로운" 방사선사진으로 포장한 제품까지 쏟아져 나오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2월 13일 금요일'밸런타인데이 선물사고 덤도 듬뿍 받아가세요'
2월 13일 금요일'밸런타인데이 선물사고 덤도 듬뿍 받아가세요' ⓒ 인터넷한겨레
그리고 밸런타인데이 하루 전인 2월 13일, 드디어 한겨레는 밸런타인데이 특수를 노리는 업체의 광고대행사임을 자임한 듯 유통업체가 제공하는 사진까지 곁들이며 밸런타인데이 열풍을 부추기고 나섰다(한겨레신문, 2004년 2월 13일, 주말세상, '밸런타인데이 선물사고 덤도 듬뿍 받아가세요'). 친절하게도 각 업체가 제공하는 경품을 받을 수 있는 시간과, 방법, 경품의 내용까지 낱낱이 소개하고 있다.

전국의 시민사회단체가 총선시민연대를 구성한 뒤 낙천대상자 명단을 발표했을 때 다른 일간지들과는 달리 한겨레만은 "대상자 선정에서 여러 단계를 거치며 노력한 점", "국민의 정서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2004 총선시민연대의 발표는 의미가 크고, 그래서 각 정당은 공천심사에 낙천대상을 반영하기를 촉구하는 사설(2004년 2월 6일, '공천심사에 낙천대상 반영해야')을 내보냈다. 그래서 한겨레신문은 "한겨레만은 달랐다"(오마이뉴스, 2004년 2월 7일자, '낙천명단 바라보는 일간지의 눈- 한겨레만 달랐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한겨레만큼은 다르기를 바라고 있다. 보수일색의 신문시장에서 한겨레만큼은 다른 목소리를 내주길 기대하고 있고, 여론에서 소외된 계층들의 의견들을 더 담아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달라주기를 기대하는 부분은 단순히 정치권력과 정치개혁에 대한 의견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숨통을 짓누르고 있는 것은 부패한 정치세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누드로 정신대 할머니들의 고통과 애환을 표현하고 일본의 만행에 "복수"하겠다는 발상이 가능토록 만든 것이 어찌 부패한 정치세력만의 문제이겠는가? "몸짱", "얼짱"의 신기루를 좇아가며 이 나라가 성형공화국으로 변해 가는 것에 대해 언론은 진정 책임이 없는 건가? 어린 청소년들이 집단으로 주술에 걸린 듯 떼지어 몰려다니며 초콜릿가게를 기웃거리도록 만든 것이 정녕 누구였던가?

우리는 그 대답을 한겨레에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겨레는 밸런타인데이가 전해주는 사랑에 취해 버렸는지 스스로 분별력을 잃어버린 채 독자들을 초콜릿 시장으로 내몰아 버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참언론 참소리 39>

참언론대구시민연대는 대구에서 처음으로 결성된 언론개혁운동단체다. 지역사회 민주주의가 안착되기 위해서는 법제도적 장치 마련과 더불어 지역사회를 정비하고 발전시킬 참언론의 존재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참언론 참소리>칼럼은 기존의 <참언론 대구시민연대 언론신경쓰기 칼럼>을 확대 개편했다. <참언론참소리>칼럼을 통해 개혁을 거부하고, 기득권층과 유착 그들만의 이해를 대변하는 언론의 그릇된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사회 주요 이슈에 대한 올바른 해법을 제공할 예정이다. 

김진국님은 신경과 전문의입니다.

자세한 문의 : 053-423-4315 / www.chammal.org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